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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436

불안한 세상에서 평안하기 불안한 세상에서 평안하기 어느 등산객이 산에서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나뭇가지를 잡아 구사일생으로 살았습니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린 그는 외쳤습니다.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어요?’ 계속해서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했으나 지나치는 사람이 없어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팔은 점점 아파오고 힘은 빠져서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기에 그는 살려달라는 외침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느님께 기원했습니다. 정말 간절하게 ‘하느님! 주여! 저 좀 살려주십시오!’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살려 주마. 살고 싶으면 나뭇가지를 잡은 그 손을 놓아라!’ 이 등산객은 손을 놓을까 생각하다가 저 밑을 .. 2014. 8. 13.
보낼 것 없이 너희가 주어라 ‘보낼 것 없이 너희가 주어라.’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는데 그곳까지 사람들이 쫓아왔습니다.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어서 제자들은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도록 할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든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예수님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군중들이 남자만 오천 명 가량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를 존중했습니다. 제자들은 물질의 부족을 생각했지만 예수께서는 사랑의 힘을 믿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풍요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듯이 .. 2014. 8. 4.
겨자씨의 기적 겨자씨의 기적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축복’과 ‘소원성취’를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과 소원성취는 하느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야 말로 신앙생활의 핵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성서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첫째, 하느님의 법과 질서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말합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진리와 법에 순종하는 사람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론이나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받아들여서 하느님과 개인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서 천국의.. 2014. 7. 28.
종교가 사악해 질 때 종교가 사악해 질 때 최근 인도의 불교 성지에서 한국에서 온 개신교 신자들이 기타를 치며 찬송을 부르고 통성기도를 하는 영상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곳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불교 최고의 성지인 사원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찬송가와 통성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마침 그곳에서 몇 달 동안 묵언수행 중이던 한국인 스님이 할 수 없이 수행을 중단하고 제지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느님만이 오직 구원’이라며 대들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한국에 알리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사원을 나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개신교인들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와 전도활동 사례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지역에서 수 천 명이 모인 강당에서 선교대회를 하는 중에 .. 2014. 7. 26.
영혼의 현주소 영혼의 현주소 초행길에 찾아가야 할 곳을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전화로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에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고 되묻습니다. 그런데 설명하기가 난감합니다. 큰 건물이 있거나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무슨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정말 어렵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설명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갈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현주소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는데 첫걸음은 영혼의 현주소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만 있다면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이 그다지 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의 현주소는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혼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상상으로는.. 2014. 7. 22.
무거운 짐 줄이기 무거운 짐 줄이기 이솝 우화에 꾀 많은 당나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나귀 등에 소금 짐을 실었습니다. 당나귀는 소금 짐을 무겁게 지고 길을 가다가 개울이 나타났습니다. 당나귀가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에 넘어졌습니다. 일어나서 다시 길을 가는데 소금 짐이 훨씬 가벼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금이 물에 녹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당나귀는 ‘아하, 이거 잘 됐다!’ 생각하고 그때부터 개울만 만나면 쓰러져서 소금 무게를 줄였습니다. 나중에는 등에 빈 자루만 남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당나귀가 꾀를 쓴 것을 알고는 혼을 내어주기로 작정했습니다. 다음 날 주인은 당나귀 등에 솜뭉치를 실었습니다. 당나귀는 짐이 가벼웠으나 그 짐도 꾀를 써서 좀 가볍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냐! 개울만 나와라. 또 넘어져서.. 2014. 7. 12.
베드로와 바울로 베드로와 바울로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은 ‘내가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표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립니다. 인간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자각함으로서 생성되는 소명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지옥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각한 사람이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뛰어넘어서 고귀한 가치와 사랑을 실천합니다. 역사는 바로 이 불타는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은 .. 2014. 7. 12.
죽으면 살리라! 죽으면 살리라! 중국에서 선불교를 일으킨 달마대사가 9년 동안이나 면벽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밖에 신광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도를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달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신광은 문밖에서 밤을 새우며 선 채로 기다렸습니다. 눈은 펑펑 쏟아져서 무릎까지 쌓였습니다. 신광은 죽을 각오로 왼쪽 팔을 베어서 달마에게 내밀면서 굳은 결의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습니다. ‘무엇을 구하려는가?’ ‘마음이 불안해서 평안을 얻고자 합니다.’ 신광은 학문에는 조예가 깊었으나 항상 마음속에 번뇌가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달마는 ‘마음을 가져오너라. 평안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광은 마음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신광은 당황했습니다. 항상 자.. 2014. 6. 27.
복음화의 사명 복음화의 사명 한 사람의 유언은 그 사람의 일생을 대변합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를 하는 것이 유언이니까요. 그래서 유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떤 가치관과 소망을 안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재산과 권력을 승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유언의 가치를 오로지 법적인 기준으로만 볼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유언이라면 반드시 이생을 바쳐서 이루어야 할 가치와 소망을 담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남기는 유언도 스승의 유언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언을 두 번 하신 분입니다. 첫 번째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베풀 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기억하라!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 2014. 6. 20.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신앙에서 가장 신비롭고 달콤한 것은 성령의 강림과 인도하심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에게 임하시어 세속에서 얻을 수 없는 가장 기쁘고 평화로운 상태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어도 이런 것들을 교육과 수련으로서 인격적으로 갖출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덕목들을 자랑하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루어주시는 열매로서의 이런 덕목들은 자신 안에 담겨있는 영원한 신성의 깨어남으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입니다.. 2014. 6. 14.
하늘과 땅의 소통 하늘과 땅의 소통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높고 거룩한 보좌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감시하고 조종하시지 아니하고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받은 병자, 세리, 창녀, 어부 등과 같은 낮은 사람들, 작은 사람들을 섬기고 존중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땅을 섬기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 승천하신 것은 땅이 하늘로 올라간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죽음과 죄에 사로잡힌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직접 하늘 문을 열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동양의 고전인 주역은 우주의 운.. 2014. 6. 6.
희생자들이여, 역사에서 부활하라! 희생자들이여, 역사에서 부활하라! ‘망각은 노예의 길이요, 기억은 구원의 신비이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새겨진 경구라고 합니다. 유태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치스에게 학살당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구원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히틀러에게 당한 학살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배척과 소외 그리고 학살을 당해 왔습니다. 그들이 그런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은 절대적인 국민적 사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모진 고초를 당하셨던 할머니들을 뵈면 두 가지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입니다. 다들 연세가 높으셔서 사실 날이 얼마.. 2014.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