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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436

길과 진리와 생명 길과 진리와 생명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이라는 양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먹으면서 평화롭게 행렬을 이루어가지만 앞에 가는 양들이 풀을 뜯어먹어서 먹을 풀이 점점 없어지자 뒤따르는 양들이 서로 앞서겠다고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그래서 양들의 대열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뒤쪽의 양들이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오기 때문에 앞쪽은 선두를 지키기 위해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모든 양떼가 전속력으로 앞으로 내달리다가 달려가는 힘에 의해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버린답니다. 미련한 짐승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도 나도 빨리 달리기는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흔히 비유하기.. 2014. 5. 19.
착한 목자 착한 목자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사람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상품을 파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소비대상’으로 보고, 교육자들은 학생들을 ‘교육대상’으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을 무슨 무슨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제일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선거철마다 ‘공략대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연령별, 지역별, 계층별로 표심을 얻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이 대상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상화’의 문제점은 무슨 대상으로서의 목적이 사라지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이해관계로만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그 자체의 존엄성과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2014. 5. 13.
나그네의 희망 나그네의 희망 “밀가루를 싣고 빵 공장에 가는 트럭과 시멘트를 싣고 벽돌 공장에 가는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서 멈췄습니다. 트럭 운전수들은 화장실에 갔다 와서 트럭을 탔는데 그만 서로 바꿔 타고 말았습니다. 두 운전수는 똑 같이 ‘알게 뭐야’라고 생각하며 차를 몰아 목적지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 공장으로,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으로 간 것이지요. 공장 기술자도 ‘알게 뭐야’를 외치며 빵 반죽에다 시멘트를 쏟아 붓고, 벽돌 반죽에다 밀가루를 쏟아 부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빵이 가정에 배달되고 벽돌은 집 짓는 곳에 옮겨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이빨이 다친 채 배를 움켜쥐어야 했습니다.” (이현주 목사의 동화에서)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 2014. 5. 10.
주님의 평화 주님의 평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27일 부활 2주일 설교 말씀) 예수님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듯이 자신들도 그렇게 죽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에 가득 찬 유다인들은 훗날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이고, 헤로데 왕이 야고보를 참수하자 환호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제자들이 겁을 먹을 만도 합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무지에서 온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면 암 진단, 채무 독촉, 법원의 출두 명령서 등을 받아놓고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를 잘 알면 두려움은.. 2014. 4. 29.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20일 부활주일 설교 말씀) 25년 전, 아카시아 향내가 산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오월에 강화도 농촌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처음 목회지에 도착한 마음은 참으로 낭만적이었습니다. 이 평화로운 농촌에서 그래도 신앙적 계몽자로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을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농촌 사회에 희망을 주리라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어리석으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교만한 우월주의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목표는 한 사건에 의해서 여지없이 그 허망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이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시골에서 여름방학.. 2014. 4. 21.
어톤먼트(atonement, 속죄) 어톤먼트(atonement, 속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13일 고난주일 설교 말씀) 화려하게 피었던 봄꽃들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일제히 피어나고 일제히 사라지는 꽃들이 조금은 허망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꽃이 사라진 나뭇가지에는 다시 열매를 맺을 꿈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꽃이 그대로 남아있는다면 아마도 열매에 대한 꿈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 자연의 준엄한 법칙 속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결단하는 고난주일입니다. 마태오가 전하는 수난복음은 은전 서른 닢으로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후의 만찬, 예수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베드로의 장담, 예수께서 외.. 2014. 4. 21.
라자로야, 나오너라! 라자로야, 나오너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6일 사순 5주일 설교 말씀) 화사한 봄꽃들이 일제히 피었습니다. 저 남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면서 피는 것도 아니고, 이 꽃이 피고지면 저 꽃이 피고... 이런 순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국적 동시다발로 피었습니다. 언제 꽃이 피나... 하는 기다림도, 새록새록 살며시 돋아나는 그 신비로운 모습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마음도 무색하게 전국적인 꽃들의 반란이 일어난 듯합니다. 인간의 지배에 더 이상 못살겠다는 아우성 같아서 현란하게 피었다 지는 꽃들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집니다.꽃들은 언제 죽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길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꽃잎들을 보면서, 저 꽃들은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 밝은 미소와 고운 빛.. 2014. 4. 17.
볼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는 사람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30일 사순 4주일 설교 말씀)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소경이며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라는 3중의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 선생의 평생에 걸친 눈물겨운 사랑과 교육으로 그는 당대의 문필가이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일생과 흔적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그가 남긴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녀의 인자.. 2014. 4. 4.
황홀한 재생 황홀한 재생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3일 사순 3주일 설교 말씀) 사람들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차별’과 ‘냉대’는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 밤잠을 못 자면서 괴로워하며 좌절하고 극단적으로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소위 ‘왕따’로 인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은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된 모양입니다. 사마리아는 일찍이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여 통치를 받았습니다. 앗시리아는 사마리아를 통치하면서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 2014. 3. 25.
숨어있는 제자 숨어있는 제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16일 사순 2주일 설교 말씀)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는 매우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주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숨어있는 제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바리사이파 중의 한 사람이며 당시의 의회의원인 고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대부분 당시 사회의 밑바닥 층 사람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니고데모는 그들과 어울리기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리마태아 요셉과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인물입니다.(요한 19:39)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제자들은 다들 도망갔습니.. 2014. 3. 17.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일 연중 8주일 설교 말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 ‘유로지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스러운 바보, 또는 광신도를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은 죽은 나무에 여러 해 동안 물을 주어 싹이 나게 했다는 수도사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바보이지만 신에게는 성스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로 세상에서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유로지비’를 등장시켰습니다. 때로는 ‘백치’로, 조시마 장로처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자로서 존경하는 인물로서(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쏘냐(죄와 벌)와 같은 인물로서 나타냈습니다. 쏘냐는 주정뱅이 아버지와 병든 계모,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서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4. 3. 5.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23일 연중 7주일 설교 말씀)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이 포로로 잡히자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무차별 폭격했습니다. 한 소년의 집이 박살나고 가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간 소년은 치료도, 식사도 거부합니다. 그러자 노르웨이에서 자원 봉사 온 의사가 말합니다. “얘야 왼 손으로도 총은 쏠 수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다시 힘을 내어 치료에 나섰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이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는지 매우 심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왼 손으로도 총을 쏠 수가 없으면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서지나 않을지... 그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을.. 2014.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