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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by 분당교회 2014. 4. 21.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20일 부활주일 설교 말씀)


25년 전, 아카시아 향내가 산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오월에 강화도 농촌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처음 목회지에 도착한 마음은 참으로 낭만적이었습니다. 이 평화로운 농촌에서 그래도 신앙적 계몽자로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을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농촌 사회에 희망을 주리라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어리석으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교만한 우월주의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목표는 한 사건에 의해서 여지없이 그 허망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이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시골에서 여름방학에 열리는 성경학교는 마을 어린이들에게 축제였습니다. 더군다나 풀장으로 물놀이 하러 가는 소풍은 꼬마 아이들의 가슴을 설레도록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풍가기 전 날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5살짜리 남자 아이가 길 건너 가게에 과자 사러 가다가 그만 트럭에 치어 식물인간이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이 앞에서, 그리고 굵은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는 아이의 아버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외치는 ‘하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느님은 왜 이 죄 없는 아이를 이렇게 데려갑니까?’ 라는 절규의 흐느낌은 나를 벼랑 끝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쥐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신앙은 무엇인가?’ 나름 신학 공부를 했답시고 아는 체도 하고, 남들에게 가르치려 드는 직업병의 초기증세가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터에 그 모든 뿌리를 뒤흔들어 뽑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 안톤 반 테이크)

그런 어느 날. 방에 누워 물끄러미 바라보는 십자가가 달라보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이 그 아이를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고 아픈 상처를 씻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조롱당하고 창에 찔리신 예수님만이 그 순박한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결국 아이의 숨은 멈추었고 하얀 유해를 바람에 날리면서 그 아이가 하늘의 천사가 될 것을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요즘 기독교의 믿음이 없는 사람을 포함한 온 국민이 부활을 믿고 싶어 하는 심정입니다. 참담한 사고로 인해서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어 버린 진도 앞바다의 대참사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기적을 기원합니다.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고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를 온 몸으로 보여준 선장과 종사자들은 버젓이 살아 있는 이 모순 앞에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의로우신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신지...

작가 박완서 선생은 삿대질을 하고 따져들 하느님이라도 필요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마음을 위로할 이는 하느님밖에 없음을 상처가 아물면서 깨닫게 됩니다.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는 매우 비통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벽 앞에서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아마도 살아계신 예수께서 비통해 하는 국민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리라 믿습니다.

부디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영혼들을 영원히 품어 주시고 가족들의 상처를 씻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한 후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족쇄가 되어버린 안전띠. 배가 기울어 물이 차오르는데도 그 안전띠를 매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소리에 잠자코 순종했던 그 순진한 영혼들이 이제는 영원히 속박 없는 세계로 갔습니다. 어른들을 대신해서...

청소년들을 묶은 것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의 고유의 꿈과 자유와 패기를 꽁꽁 묶는 것들을 풀어 주어서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해...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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