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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용신부169

장기용 요한 신부 이임식 지난 4년간 분당교회와 함께 사목을 펼치신 장기용 요한 신부님이 서울교구 교무국장으로 발령받아 2월 12일 마지막 이임 예배를 가졌습니다. 성공회 대학에서 처음 부임 하신 후 고생 끝에 분당교회를 좀 더 쾌적한 환경으로 이전하는데 큰 힘을 쓰셨고, 분당교회의 보배였던 지금식 안드레 교우님의 장례 예배를 집전해주시는 등 교회의 발전과 교우님들의 믿음 생활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공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분당교회를 떠나셔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주님의 함께 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지난 4년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2017. 2. 12.
기독교인의 윤리적 이상 마태오 복음 5장 1절부터 7장까지를 보통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는 이 설교는 ‘성서중의 성서’라고도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생활 윤리의 규범이자 영성생활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고, 인간의 품위와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스승들은 한 결 같이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요시했고 또 몸소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령 인도의 간디는 크리스천이 아니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 특히 이 산상수훈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간디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훌륭하나 크리스천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2017. 2. 12.
세상의 빛과 소금 꽉 막힌 독 안에 쥐를 집어넣었더니 3분을 못 견디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독 속에 한 가닥 빛을 비추고 쥐들을 넣었더니 36시간을 살아 있더랍니다. 캄캄한 독 안에서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쥐들은 체력이 다했거나 산소가 부족해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망해서 죽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우리의 삶을 절망의 어둠 속에서 살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희망의 빛이 어디선가 나를 비추고 있다고 하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캄캄한 어둠에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태양이 나를 비추듯이 하느님의 도우심이 항상 나를 향해 오고 있다고 하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희망의 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2017. 2. 5.
행복의 심법(心法)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이나 새해가 되면 누구나 이렇게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복’에 대한 갈망이 커서 그런지 이불이나, 숟가락, 담벼락, 복 주머니 등등에 복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 건강과 재물, 출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현세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묘 자리를 잘 쓰고 제사를 지내는 등 돌아가신 조상을 잘 섬기는 것도 후손들의 복락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외적의 침략과 기득권층의 가렴주구가 극심했던 역사 속에서 백성들 안에는 현재적인 복락을 추구하는 심성과 가치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고 오늘을 고단하게 살아야만 했던 가난한 백성들의 현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각박함.. 2017. 1. 30.
메시아를 만났소! 삼국지는 세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잔을 기울이며 뜻을 모았다고 해서 도원결의라고 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자고 비장한 결의를 하면서 의형제를 맺습니다. 정의로운 태평성대를 이루는 새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그 뜻을 변치 않기로 합니다. 개인적인 안위와 권세를 위해 패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와 백성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원대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가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이 만남으로서 새로운 운명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 사람의 결의는 나라의 운명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선교 사역을 하면서 처음 하신 일도 .. 2017. 1. 15.
홀연히 열린 하늘 문 기독교인들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으로부터 육신을 받아 태어나고, 두 번째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탄생은 신앙이 성장해서 하느님의 소명을 깨달아 복음을 실천하는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빠른 사람이 있고 늦는 사람이 있겠지만 원리는 비슷합니다. 이렇듯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것이지 자기의 본성과 낡은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겉으로만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장식물로 포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몇 세대를 걸쳐 교인의 문패를 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듭남의 체험과 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신자라고 말하기가 .. 2017. 1. 8.
이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여 주인공 스카렛 오하라가 마지막에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말합니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내비칩니다. 매일 떠오르는 해가 다를 수는 없지만 희망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병신년’이라는 어감도 이상했던 2016년도 해가 기울고 2017년도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작년은 정말 다사다난 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이 안 될 만큼 엄청난 사건과 변화를 겪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의 이름이 매일 뉴스에 등장하면서 매일 충격과 반전 속에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름들은 어둠의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을 움켜쥐고 국가와 .. 2017. 1. 1.
요셉의 꿈 요셉의 꿈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오고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그 어떤 한 곳에 머물러 계셔서 우리가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신가 봅니다. 또는 다른 세상에 계셔서 늘 우리를 감시하고 심판하시는 하느님이 아니고 언제나 ‘이 세상 속으로’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성서에서 하느님은 항상 당신의 뜻이 있으실 때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요셉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꿈속에서 나타나셔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사건은 그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환상이나 천사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말씀하신 것을 넘어서서 인간의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지금’, ‘여기에서’ .. 2016. 12. 18.
장기용 신부님, 은경축 축하드립니다 ^^ 대한성공회 분당교회장기용 요한 신부님이 은경축을 맞이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 (예쁜 케익은 조모니카 님이 직접 만들어주셨습니다.) 2016. 12. 4.
광야의 외침 광야의 외침 성서에서 광야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과거의 낡은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에 광야가 있었습니다. 곧바로 가면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길임에도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방황했습니다. 낡은 종살이의 노예근성과 죄를 씻는데 40년이라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걸핏하면 하느님과 모세를 배반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때로는 이집트 종살이가 차라리 낫다고 하면서 왜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내 왔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예근성이 뿌리째 뽑히고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율법에 따라 새 삶을 살게 되기까지 40년의 광야의 훈련이 필요했.. 2016. 12. 4.
기다림의 기쁨 기다림의 기쁨 영성생활에서 기다림은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고 만남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사순절에는 예수님의 승리의 날을 기다립니다. 부활절이 지나면 성령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에는 영광 속에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일 년 사시사철 우리 삶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버스나 전철이 오기를 기다린다거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거나 또는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은 지금도 오고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표적을 발견하기 위해서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농.. 2016. 11. 28.
십자가에 달리신 '왕' 십자가에 달리신 '왕' 유다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위대한 왕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 했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왕은 화려한 왕관과 제의를 입고 권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왕은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며 원수를 무릎 꿇리고 복종케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국이 영원토록 세상을 지배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이런 왕에 대한 기대에 루가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그 왕은 바로 해골산이라는 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유다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 왕과 같이 위대하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단지 매우 불행한 사나이에 불과했습니다. 높은 권좌에 있지도 않고, 허리를 굽혀 충성을 다하는 신하도.. 2016.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