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사람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상품을 파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소비대상’으로 보고, 교육자들은 학생들을 ‘교육대상’으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을 무슨 무슨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제일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선거철마다 ‘공략대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연령별, 지역별, 계층별로 표심을 얻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이 대상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상화’의 문제점은 무슨 대상으로서의 목적이 사라지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이해관계로만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그 자체의 존엄성과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사람을 이용 가치, 또는 교환 가치로 보기 때문에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가차 없이 버림받기도 합니다. 때문에 모든 청소년 학생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교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학벌과 스펙 쌓기에 전쟁을 치룹니다. 사람을 대상화 시키고 있다는 가장 큰 상징은 숫자입니다. 사람을 숫자로 표기하고, 몇 명 중에 한명으로 취급합니다. 침몰한 세월호에 타서 희생당한 사람들 역시 해운회사와 선장한테는 숫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선장은 단지 그 숫자를 버린 것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병환자, 앉은뱅이, 중풍병자, 창녀, 세리... 가까이 가지도 않고, 오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 곁에 가셨습니다.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들을 모아서 어떤 세력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사랑 그 자체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관계를 착한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삯꾼 목자 또는 도둑은 양들을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돈 벌이의 대상인 상품으로 봅니다. 그러기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도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립니다. 양들의 위험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이시기에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고 하십니다.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는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는 말씀으로 설명이 됩니다. 서로 아는 관계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자는 앞장 서 갑니다. 양들은 그 목자를 믿고 뒤따라갑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신뢰관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도자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며 그를 따르는 우리의 믿음이 주는 축복입니다.
(선한 목자, 모자이크 5세기경)
공자는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인데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제일 먼저 군사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 다음엔 경제를 버리라고 하면서,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진나라의 상앙이라는 재상은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 원인은 바로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대궐 남문 앞에 나무를 세우고 방문을 붙였습니다. ‘이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는 백금을 하사한다.’ 그런데 옮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금을 천금으로 인상했습니다. 그래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상금을 만금으로 인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금을 기대하지도 않고 밑질 것도 없으니까 장난삼아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방문에 적힌 대로 만금을하사했습니다. 그 이후로 나라의 정책이 백성들의 신뢰를 받게 되고 진나라가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건의 전후 맥락을 본 국민은 ‘과연 우리가 나라를 신뢰 할 수 있을까?’라는 중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라와 지도자를 신뢰할 수 없는 국민이 의지할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물질과 권력과 명성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당연히 목자 없는 양의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선한 목자의 모습을 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5월 11일 부활 4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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