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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희생자들이여, 역사에서 부활하라!

by 분당교회 2014. 5. 30.

희생자들이여, 역사에서 부활하라!

‘망각은 노예의 길이요, 기억은 구원의 신비이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새겨진 경구라고 합니다. 유태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치스에게 학살당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구원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히틀러에게 당한 학살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배척과 소외 그리고 학살을 당해 왔습니다. 그들이 그런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은 절대적인 국민적 사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모진 고초를 당하셨던 할머니들을 뵈면 두 가지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입니다. 다들 연세가 높으셔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기력이 다 할 때까지 일본 대사관 앞에 나타나는 까닭은 바로 기억과 반성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자신의 수난을 잊는다는 것은 일본 군사들에게 당한 모욕과 고초보다, 죽음보다 더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수난의 역사를 망각한다는 것은 다시금 같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할머니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한 마디를 듣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 땐 정말 미안했다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진심어린 사과의 한 마디와 반성만이 할머니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서 저승에 가더라고 편히 갈 수 있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날 것을 예고하면서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협조자를 보내시어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리옷 사람이 아닌 다른 유다가 ‘주님, 주님께서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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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protest". 위키백과에서 제작됨.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당부하신 말씀들을 잘 기억하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또한 그 기억이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사랑으로, 실천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시고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이별이 아닙니다. 또 다른 만남이며 영원히 함께 사는 그리스도의 은총입니다.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과 우리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새롭게 만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희생자들이 부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희생자들은  대한민국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거듭나라고 피맺힌 비명으로 우리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화답합니다. 미안하다고... 기억하겠노라고... 그 기억이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이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갈 책임이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이러한 이별과 만남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님의 침묵 (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끝이 되어서 한 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의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5월 25 부활 6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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