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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420

볼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는 사람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30일 사순 4주일 설교 말씀)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소경이며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라는 3중의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 선생의 평생에 걸친 눈물겨운 사랑과 교육으로 그는 당대의 문필가이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일생과 흔적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그가 남긴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녀의 인자.. 2014. 4. 4.
숨어있는 제자 숨어있는 제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16일 사순 2주일 설교 말씀)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는 매우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주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숨어있는 제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바리사이파 중의 한 사람이며 당시의 의회의원인 고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대부분 당시 사회의 밑바닥 층 사람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니고데모는 그들과 어울리기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리마태아 요셉과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인물입니다.(요한 19:39)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제자들은 다들 도망갔습니.. 2014. 3. 17.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일 연중 8주일 설교 말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 ‘유로지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스러운 바보, 또는 광신도를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은 죽은 나무에 여러 해 동안 물을 주어 싹이 나게 했다는 수도사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바보이지만 신에게는 성스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로 세상에서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유로지비’를 등장시켰습니다. 때로는 ‘백치’로, 조시마 장로처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자로서 존경하는 인물로서(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쏘냐(죄와 벌)와 같은 인물로서 나타냈습니다. 쏘냐는 주정뱅이 아버지와 병든 계모,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서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4. 3. 5.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23일 연중 7주일 설교 말씀)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이 포로로 잡히자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무차별 폭격했습니다. 한 소년의 집이 박살나고 가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간 소년은 치료도, 식사도 거부합니다. 그러자 노르웨이에서 자원 봉사 온 의사가 말합니다. “얘야 왼 손으로도 총은 쏠 수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다시 힘을 내어 치료에 나섰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이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는지 매우 심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왼 손으로도 총을 쏠 수가 없으면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서지나 않을지... 그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을.. 2014. 3. 5.
크게 버리고 크게 얻기 크게 버리고 크게 얻기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16일 연중 6주일 설교 말씀) 짙은 안개가 호숫가를 가득 메운 어느 여름날. 나룻배 하나가 안개를 헤치며 가고 있습니다. 고요한 호수를 조용히 가르는데 안개 저 편에서 다른 배 한 척이 얼핏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게 누구요?’ 그러나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배는 점점 다가오는데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배가 부딪히려 하지 않소?’ 그래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욕설을 내뱉으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배가 부딪히잖소?’라고 외칩니다. 그래도 대답 없는 배가 점점 가까이 오자 사공은 장대.. 2014. 2. 21.
빛과 소금 빛과 소금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9일 연중 5주일 설교 말씀)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이라는 시인이 쓴 ‘연탄 한 장’이라는 시입니다. 사랑과 열정으로 남김없이 자신을 태우고 난 뒤에 허무한 재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지 못했다는 말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이러저러한 핑계.. 2014. 2. 16.
촛볼의 영성 촛불의 영성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2일 주의 봉헌 축일 설교 말씀) ‘한 가닥의 촛불이 우주의 어둠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 한 가닥의 촛불만 있어도 그 어둠은 사라집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져버리는 연약한 불꽃이지만 한 가닥의 촛불만 있어도 사람은 희망을 보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쓴 편지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돈이 없어 여관비를 내지 못하자 주인은 식사와 차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여관 주인에게 화가 났는데 그것은 식사와 난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양초를 주지 않았다는 것에 그는 몹시도 화가 났던 것입니다. 촛불을 밝힐 수가 없어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절망적이었.. 2014. 2. 2.
제자들의 소명의식 제자들의 소명의식(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26일 연중 3주일 설교 말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그의 역사를 이루실 때는 항상 대신할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위대한 응답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 때 이사야는 응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처럼 성서에서 나타나는 하느님 나라의 행진은 바로 부르심과 응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제자들을 부르셔서 하느님 나라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 2014. 1. 27.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9일 연중 2주일 설교말씀) 한때 굉장한 세력을 자랑하던 한 수도회 교단이 근대사회의 반종교적이고 세속적인 분위기에 휘말려 다섯 명의 수사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장과 다른 네 수사들은 모두 일흔이 넘은 고령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몰락해 가는 교단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침울한 상태에 있는데 마침 근처에 유대교 랍비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장은 랍비가 은거하는 오두막으로 찾아가 교단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랍비는 수도원장을 반갑게 맞이하였으나 수도원장의 고민을 풀어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도원장과 늙은 랍비는 마주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들에게서 영혼이 떠나간 현실.. 2014. 1. 25.
거듭난 사람의 축복 거듭난 사람의 축복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2일 주의세례 설교 말씀) 기독교인들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으로부터 육신을 받아 태어나고, 두 번째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탄생은 신앙이 성장해서 하느님의 소명을 깨달아 복음을 실천하는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빠른 사람이 있고 늦는 사람이 있겠지만 원리는 비슷합니다. 이렇듯 신자가 된다는 것은 거듭남이지 자기의 본성과 낡은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장식물로 포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몇 세대를 걸쳐 교인의 문패를 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듭남의 체험과 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신.. 2014. 1. 13.
새 빛 따라 온 사람들 새 빛 따라 온 사람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5일 공현일 설교 말씀) 새 해가 밝았습니다. 수 천 년 동안 태양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년도가 바뀌면 사람들은 해도 바뀌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 첫 날 해돋이를 보느라고 동해안은 빼곡히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아마도 마음의 태양이 새롭게 뜨는 것이겠지요. 지난해보다는 세상이 달라져서 조금 더 행복하고 희망 찬 새 해를 시작하겠다는 소망과 결단이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처럼 올해는 올해의 태양이 뜨리라 믿는 것입니다.동방 박사들이 새 빛을 따라서 참으로 먼 길을 달려와서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 앞에서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그리고는 홀.. 2014. 1. 5.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25일 성탄대축일 설교 말씀) 올해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던 단어를 찾으라면 아마도 ‘안녕’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한 학생이 ‘안녕하시냐?’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일파만파로 번져 여기저기서 안녕하지 못한 불편한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위기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겠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그 ‘안녕’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이념적인 색깔로 덧칠해서 또 다시 진영을 가르는 단어가 되어버리는 것이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어느 사회건 의견 차이는 존재합니다. 때로는 격렬한 대립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극적인 타협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대화가 성립이 안 된다는 것.. 2013.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