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분당교회3586 성공회 분당교회 전례공간 디자인안 http://yellowsub.egloos.com/3299004#7746507 현재 추진되고 있는 1층에서 지하1층으로의 분당교회 예전공간 확장안을 위한 디자인안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디자인안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상징하는 기둥과 성공회 전례양식을 담보하는 제단의 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공간에서 소외받고 천덕꾸러기였던 기둥을 공간 가운데로 초대하고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동선이 불안하고 새로운 배치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제대를 창문쪽이나 모서리에 두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획자로서 제가 생각한 것은 과연 예전공간으로서 이 공간을 어떻게 성공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성공회적인 공간이란 무엇일까요. 기둥을 피하는 창문 앞이나 모서리의 제단 .. 2010. 6. 1. 2010년 5월 30일 (성삼위일체주일) 주보 2010. 6. 1. 2010년 5월 23일 (성령강림주일) 주보 2010. 6. 1. 2010년 5월 16일 (부활7주일/승천후주일) 주보 2010. 6. 1. 2010년 5월 9일 (부활6주일) 주보 2010. 6. 1. 2010년 4월 25일 (부활4주일) 주보 2010. 4. 30. 부활3주 강론초 <마태오복음의 핵심1> 부활3주: 마태오복음의 핵심1 마르코복음의 여정을 통해 수난과 십자가를 통과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모여서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들은 이제 마태오복음의 신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태오에서 이들이 만나는 예수는 무엇보다 ‘가르치시는 예수’입니다. 모세가 이집트를 벗어난 과거의 노예들에게 다섯 경전(모세오경)의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을 빚듯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도 마태오복음에서 다섯 개의 가르침을 만납니다. 바로 산상수훈(5~7장), 파견설교(10장), 하느님나라의 비유들(13장), 공동체 강령(18장), 종말설교(24~5장)입니다. 마태오의 예수는 이 가르침들을 베푸셔서 제자들이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시는 분, 즉 말씀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창조하시는 분.. 2010. 4. 20. 부활2주 강론초 <마르코복음의 핵심> 부활2주: 마르코복음의 핵심 초대교회는 오늘날 신약에 배열한 순서와는 약간 다르게 마르코-마태오-루가의 순으로 복음서를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각 복음서와 해당 공동체의 신앙수준이 다르고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깨닫고 만나는 예수님이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의 단계를 거쳐야 마태오 수준으로 깊어질 수 있고 루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전체의 순환과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전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초대교회로부터 ‘복음서 체계적으로 읽기’의 전통을 이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편화된 타교파의 성서접근 및 설교와는 달리 성공회는 3년의 순환과정을 통해 복음서를 조직적으로 읽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마르코복음을 통해 만나고 .. 2010. 4. 20. 부활주일 강론초 <부활하신 예수> 다해 부활주일: 부활하신 예수(루가 24:1-12)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무언가 범상한 인간의 상태와는 같지 않은 초월적 차원을 이루셨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렇듯 초월적인 그리스도를 온전한 인간의 표상으로 보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오랜 신앙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그 의미를 음미하든지 우리 범상한 인간도 그분과 같은 의식, 존재의 차원으로 상승하여 자신을 완성할 소명이 있다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다’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니 우리의 핵심적 정체성을 영성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디 그러한 존재이므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 2010. 4. 20. 사순5주 강론초 <예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 다해 사순5주: 예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요한 12:1-8) 금년도 사순절 5주간의 복음을 훑어보면 대략 이러합니다. 첫 주에 우리는 유혹을 맞이하시는 주님, 둘째 주에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시는 주님, 셋째 주에 무화과의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시는 주님, 넷째 주에 하느님은 엄하게 벌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애로우신 아버지와 같으니 어서 돌아서라고 권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주에는 사랑의 향유로 십자가를 지는 주님을 사랑하라는 권면을 듣습니다. 이 다섯 주간을 하나의 맥으로 읽는 문법은 아마도 이러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서 나란히 길을 걷지 않으면서 복이나 구하는 신앙은 애초에 바리사이의 것이었지 성 바울로도, 복음서도 도무지 낯설어할 관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들.. 2010. 4. 20. 사순4주 강론초 <탕자의 비유> 다해 사순 4주: 탕자의 비유 (루가 15:11-32) 사순 네 번째 여정에서 우리는 지금 처한 상태가 얼마나 하느님에게서 멀든 그 지점에서 돌이키라고, 하느님은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우리를 환대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라 하는데 ‘탕자’란 하느님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사는 영혼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시간, 삶의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주신 이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할 터인데 우리는 자기 것이니 자신만을 위해서 써도 된다고 우깁니다. 그것이 바로 제 몫을 달라 해서 먼 데 가 탕진해 버리고 마는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먼 지방’이란 하느님과 상관없이, 하느님을 멀리 하고 사는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가 얻는 것은 존재의 .. 2010. 4. 20. 사순3주 강론초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다해 사순3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루가 13:1-9) 사순 세 번째 여정에서 우리는 열매를 맺으라고 재촉하시는 주님과 맞닥뜨립니다. 지난주엔 성전이 우리 존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무화과나무’라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유다교 신비주의에서 우주의 무화과나무란 거꾸로 서서 뿌리를 영의 하늘에 드리우고 정신의 줄기를 거쳐 보이는 현상계에 잎과 열매를 드러내는 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심으신 무화과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제대로 자라고 열매를 맺으려면 영성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니(요한 4:24) 우리 안의 영성이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 곧 내주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이분 성령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 있게 하는 것이 영성에 뿌리내림이다, 이렇게 .. 2010. 4. 20. 이전 1 ··· 244 245 246 247 248 249 250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