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신부169 세례와 창조 세례와 창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창세1:2-3) 창세기는 이렇게 창조의 첫 광경을 장엄한 서사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어둠의 세계가 빛이 생김으로서 하느님의 질서가 확립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편만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세상은 그 무엇을 하느님께 드린 것도 아니고 이쁜 짓을 한 일도 없는데 하느님은 이 세상을 보시고 그냥 좋아하십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 앞으로 나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만,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으.. 2015. 1. 13. 자녀 되는 특권 자녀 되는 특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e Sramago)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리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소수의 사람이 눈이 멀었을 때는 다수의 볼 수 있는 사람이 보살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이 멀었을 때는 혼란 그 자체의 현상이 벌어집니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전기도 가스도 공급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눈 먼 사람들은 전염병자로 낙인찍혀서 누구나 강제수용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폐쇄적인 수용소 안에서도 생필품과 .. 2015. 1. 11. 일기일회(一期一會) 일기일회(一期一會)일기(一期)는 딱 한 차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일회(一會)는 딱 한 번의 만남입니다. 그러니까 만 년이나 천 년 만에 단 한차례뿐인 귀한 만남을 말합니다. 이 한 번,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몇 겁의 생을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쳐 가는 순간순간을 어찌 뜻 없이 보낼 수 있겠는가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소동파라는 사람이 어느 날 옷을 벗고 자려고 하는데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기뻐서 일어났는데, 생각해보니 이 달빛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벗을 찾아 나섰습니다. 회민을 찾았는데 그 역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함께 뜰 가운데를 거닐었습니다. 뜰아래는 마치 빈 허공에 물이 잠겼는데, 물속에 물풀이 엇갈려 있는 것만 .. 2015. 1. 1. 영혼의 순종 영혼의 순종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에 관련한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서방 세계에서 제작한 것이라 편향적인 시각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만 너무나도 끔직한 장면들이 전개되어서 19세 미만인 사람들은 시청 불가입니다. 명예 살인(부정한 짓을 한 여인의 가족들이 명예를 더럽혔다고 해서 아버지나 가족들이 죽임), 돌팔매 처형(음란한 행위를 한 여인을 땅 속에 가슴까지 묻고 사람들이 돌팔매를 던져 처형하는 형벌), 종교경찰의 폭행(여성이 길거리를 다닐 때는 가족 남성이 동행해야 하는데 혼자 다니는 경우 채찍으로 때림) 등등... 비참한 여성인권의 실태를 동영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슬람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해도 적어도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2014. 12. 23. 주님 오시는 길 주님 오시는 길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몇 달 전에 로마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서 한번이라도 그의 손을 잡아보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한 인간인 성직자가 지나는 길에 그토록 환영인파가 몰렸는데 예수께서 오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많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엄청난 사람이 몰릴 것이라 예상하기도 합니다만, 혹시 도스토예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처럼 예수를 체포하여 밤새 신문을 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미 예수께서 교회에 모든 권한을 위임했으면 그만이지 왜 나타나서 혼란스럽게 만드느냐고 다그치고 2000년 전에 예수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현실적인 잣대로 심판하려는 사람이 .. 2014. 12. 12.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격정적인 표현이 담긴 시로 남겼습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 그날이 오면) 지금은 역사와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 날’에 대한 희망만큼 여전히 감동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날’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시대가 엄혹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 낼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겨울이 .. 2014. 12. 1. 종말이라는 거울 앞에서 종말이라는 거울 앞에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까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정답’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심한 공포와 패닉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종말의 그 날이 오면 과연 우리는 어찌 될까요? 또 지구의 종말이 쉽게 오진 않겠지만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등지고 저승으로 간다면 과연 그 세계는 어떨까요?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한 종말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상상은 대부분 심판과 구원으로 귀결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선운사라고 하는 고찰을 방문 하였는데 명부전이라는 전각이 있었습니다. 사후세계의 심판과 징벌을 하는 10명의 대왕의 상이 서 있고 각.. 2014. 11. 25. 맡겨진 달란트의 의미 맡겨진 달란트의 의미나뭇잎이 바람에 비 오듯이 휘날립니다. 길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한해의 수고와 소임을 다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나름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라면 그 낙엽들은 쓸어 모아져서 불꽃이 되고 재가 되어 다시 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대자연의 준엄한 법칙이며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섭리일 것입니다. 나무는 잎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아낌없이 다 내어주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빈 나뭇가지는 마른 팔을 들어 올리고 하늘과 온전히 속살로 만납니다. 그리고 나뭇잎 있던 자리는 상실의 자리가 아니라 찬란한 봄날을 꿈꾸는 자리이며 가장 먼저 봄날의 생명을 잉태.. 2014. 11. 18. 감사의 영성 감사의 영성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는 군사 독재의 탄압으로 유럽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부른 Gracias a la vida(생에 감사해)라는 노래는 경이롭기만 합니다. 원래는 비올레타 빠라(Violeta Parra)라는 사람이 작사 작곡 노래한 것인데 그 역시 투옥과 망명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노래의 가사는 생에 대한 예찬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고난 받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악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보다는 오히려 우리 인생에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예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 2014. 11. 11. 죄 없는 사람의 죽음 죄 없는 사람의 죽음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비 오 듯 떨어집니다. 가을의 깊은 맛은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초록으로 왕성하던 잎들이 모진 태풍도 견디어 냈는데 살짝 부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역시 오묘한 창조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빛나는 젊음도 세월이 지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에는 원점으로 회귀된다는 하늘의 섭리를 낙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늦가을은 사색의 계절, 성찰의 계절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져야만 하고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이 세상 것들이 전부인 양 탐욕과 오만에 휩싸여 삽니다. 그래서 이 가을 .. 2014. 11. 5. 첫 째 가는 계명 첫 째 가는 계명율법에는 세 가지의 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정치적, 법률적인 용법으로서 죄를 억제 또는 방지하고 강제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적인 용법으로 거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보아 알 수 있듯이, 계명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훈적인 용법으로서 밤길을 밝히는 램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있으므로 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계명은 이토록 긍정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행동을 수동적으로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계명에 적힌 내용대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 2014. 10. 27. 하느님 나라의 초대 하느님 나라의 초대 봄이나 가을철의 주말이 되면 여러 장의 결혼식 청첩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러 다니는 모습이 잔치를 즐긴다기보다는 의무적으로 인사차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혼인잔치의 초대장을 마치 고지서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초청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여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면 기쁨보다는 금전적인 의미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은 서글픔이 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겨서 결혼식을 하는 둥 마는 둥, 사진 찍기에 바쁘고 음식을 먹을 때도 번잡스럽고 혼란스러울 때는 이것이 잔치라기보다 요식행위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결정해야 합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바쁜 일이 있으면 가치의 우.. 2014. 10. 15.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