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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일기일회(一期一會)

by 분당교회 2015. 1. 1.

일기일회(一期一會)

일기(一期)는 딱 한 차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일회(一會)는 딱 한 번의 만남입니다. 그러니까 만 년이나 천 년 만에 단 한차례뿐인 귀한 만남을 말합니다. 이 한 번,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몇 겁의 생을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쳐 가는 순간순간을 어찌 뜻 없이 보낼 수 있겠는가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소동파라는 사람이 어느 날 옷을 벗고 자려고 하는데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기뻐서 일어났는데, 생각해보니 이 달빛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벗을 찾아 나섰습니다. 회민을 찾았는데 그 역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함께 뜰 가운데를 거닐었습니다. 뜰아래는 마치 빈 허공에 물이 잠겼는데, 물속에 물풀이 엇갈려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였습니다. 소동파는 “어느 날 방이고 달이 없었겠는가? 그리고 어디인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었겠는가? 다만 두 사람처럼 한가한 사람이 적었을 뿐이리라.”고 했습니다.

달빛은 어느 밤이든지 흐리지만 않으면 창문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나무 그림자 역시 어디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달빛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고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드문 것입니다. 그 순간은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예수 탄생을 알립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은 목자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목자들은 단숨에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으로 달려갑니다.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이 순간을 목자들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낱 꿈 이었구나’하고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발걸음을 옮겨 마구간으로 가서 예수 탄생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그 한 순간을 위해 역사는 수 만 년을 흘러왔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력에서는 성탄절을 지내고 바로 이어서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파노 순교자의 축일을 지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 죄 없는 어린이의 순교, 토마스 베케트, 그리고 위클리프까지... 이 묘한 배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왕이면 성탄의 축제와 기쁨과 영광을 이어가는 내용이 아니라 순교의 피 흘림을 기념하게 하였습니다. 무슨 뜻이 있을까요?

(성 스테파노의 순교, 안니발레 카라치, 1603-04, 40×53cm, 파리, 루브르)


예수 탄생의 영광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과 동전의 양면처럼 상관관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증언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거부하거나 양도하지 않았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지난 한 해 동안 어느 길을 걸어왔는지를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과연 나에게 주어지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쩌면 매일매일 다가오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참으로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고 슬펐던 한 해였습니다. 세월호 대참사 앞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속수무책으로 무고한 304명의 생명이 수장되는 것을 뻔히 보는 것만 해도 수긍하기 어려웠는데 그 후에 벌어진 갈등과 무관심은 더욱 절망스러웠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모든 국민은 ‘기억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변하겠다고, 변해야 산다고 너 나 없이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젠 이 천박한 물질주의와 배금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바뀔 것 같은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간 지금의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면 반성과 변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 탄생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바로 순교자들의 신앙과 연결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새로운 각성과 변화를 기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혹독한 겨울 한파 속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자들, 청년 실업자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으니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은 늘 있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 그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랑에도 기회가 있는 것이고, 그 기회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무심코 강을 건너가지 마십시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28 성탄 1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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