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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세례와 창조

by 분당교회 2015. 1. 13.

세례와 창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창세1:2-3)

창세기는 이렇게 창조의 첫 광경을 장엄한 서사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어둠의 세계가 빛이 생김으로서 하느님의 질서가 확립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편만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세상은 그 무엇을 하느님께 드린 것도 아니고 이쁜 짓을 한 일도 없는데 하느님은 이 세상을 보시고 그냥 좋아하십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 앞으로 나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만,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마치 창세기에서 혼돈과 어둠에서 빛의 세계가 탄생한 것을 보시고 마음에 드셨듯이 예수께서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십니다.

이렇듯 세례는 창조이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의 선물입니다. 한 사람이 세례 받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한 사람 안에는 우주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혼돈 속에 있는 한 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빛의 세계, 하느님의 질서의 세계 속에 산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신자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축하하고 또 받는 본인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만 정작 기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하느님을 만나고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혼돈 속에 살던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서 변화되어 빛의 자녀로 살게 되었다는 스토리가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성서 이후의 시대, 즉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이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과 세례는 기독교 역사를 새로 쓰게 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18살에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아들을 낳았으며, 아들을 낳은 이 여인 말고도 15년간 함께 살던 여인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욕정을 참지 못했음을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느님 앞에 나서기가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욕정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마니교에 심취하기도 했고 하느님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스승 암브로스를 만남으로서 그의 인생은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암브로스의 지적이면서 영적인 자산은 교만한 어거스틴을 압도했고 서서히 그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하느님의 감동이 임했습니다. 매우 강력한, 거절할 수 없는 성령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집 밖에 있는 무화과나무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가 보이면서 너무나 형편없는 일들과 애착에 꽁꽁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과거의 정부들은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버리실 것인가요? 그러면 이 순간부터 영영 이별입니다. 그 순간부터 이것저것이 당신에게 영원히 금지되는 것 이예요!’ 그러나 하느님의 거룩한 손이 영접하여 어거스틴을 안고 그 곁에 있던 절제와 정숙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 분께 자신을 맡기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분은 피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대는 넘어지지 않으리라.’ ‘집어서 읽으라!’라는 음성을 듣고는 어거스틴은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의자에 있던 성경책을 펴들었습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어거스틴은 더 읽고 싶지도 않았고, 읽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듬해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거스틴의 정신과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끼친 그의 영향을 지대합니다.

세례는 과거와의 이별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창조의 연속입니다.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1일 주의 세례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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