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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자녀 되는 특권

by 분당교회 2015. 1. 11.

자녀 되는 특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e Sramago)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리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소수의 사람이 눈이 멀었을 때는 다수의 볼 수 있는 사람이 보살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이 멀었을 때는 혼란 그 자체의 현상이 벌어집니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전기도 가스도 공급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눈 먼 사람들은 전염병자로 낙인찍혀서 누구나 강제수용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폐쇄적인 수용소 안에서도 생필품과 식량,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고 약자들은 종속되는 부패와 불의가 생겨나게 됩니다. 안과 의사의 아내 한 사람만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있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눈 뜬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살아 갈 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늘의 은총처럼 비가 내리고 그 비를 맞으며 눈 먼 사람들의 시력이 되살아납니다. 아마도 세례를 통해 거듭나는 의식처럼 비를 맞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어집니다. 지옥 같은 형벌이 끝나고 용서를 통해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 눈 먼자들의 도시)


지난 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문인들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는데 제목이 ‘눈 먼 자들의 국가’였습니다.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무책임, 무관심으로 눈 먼 사람들의 국가가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 중에는 눈 먼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락원’을 쓴 시인 밀턴, 헬렌 켈러... 이들은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영혼의 눈을 뜰 줄 알았기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태초부터 계셨고 그 분의 진리가 우리 곁에 항상 있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분이 직접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평범해서일까요? 아니면 화려한 왕관을 쓰고 신하들을 거느리지 않아서일까요? 알아보지 못하니까 당연히 맞이하지도 못하겠지요. 그런데 더러는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 뜬 사람이 있듯이 말입니다. 만일 눈 먼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유일하게 눈을 뜬 사람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눈 먼 사람들을 이용해서 사악한 지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이 맑은 사람이기에, 이웃에 대한 고통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이기에, 인간의 삶이란 함께 행복해야 참 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에 고난을 무릅쓰고 함께 극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눈을 떠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경이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이웃을 통해서 그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빛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살펴볼 줄 알고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자녀로서 어떤 권한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녀 ‘됨’ 자체가 특권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자체가 특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를 두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만 부모 자녀의 관계란 매우 특별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임을 생각할 때 이처럼 커다란 축복이 또 어디 있을까요? 곤고한 세상에 지치고 쓰러질 때에도 하느님의 자녀이니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거듭 실패하고 고통을 겪어도 그분의 자녀이기에 기댈 언덕을 마음속에 가질 수 있습니다. 행여나 잘못된 길을 걷는다 해도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는다면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재벌 2세의 방종과 타락한 도덕성이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만 그 사람은 재벌 2세의 특권 이전에 먼저 성숙한 인격과 도덕성과 기업인으로서의 책임을 먼저 배웠어야 했습니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각성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4일 성탄 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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