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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답게!

by 분당교회 2022. 2. 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멘!

 

오늘의 전례의향을 담은 본기도는 이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주님의 영광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고 천군천사들은 경배하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시어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주님의 구원을 전하게 하소서.”

하느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주님의 영광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다는데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증언할 주님의 말씀은 어떤 내용이고, 우리가 전할 주님의 구원은 어떤 내용일까요?

 

성공회답게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서 제일 먼저 요청되는 것은 정직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이 물음에 관하여 교회를 주어로 삼아서 함께 답을 찾고 실천해가는 일이 성공회의 신앙생활입니다.

 

저는 성공회 분당교회에 20년 전에 파송되어 9년 7개월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분당교회가 정말 많이 발전했지만, 그때 분당교회는 작고 소박했습니다. 이 작은 교회가 왜 이 분당지역에 있어야 하는가? 우리가 찾은 답은 가장 성공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분당지역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형을 가꾸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만, 신앙공동체로서의 영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가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당교회의 자부심은 한결 같습니다. 분당지역에서 성공회다운 교회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공회다움이 무엇인지를 이미 교우 여러분이 충분히 체득하고 체감하고 계십니다. 이를 좀 더 말로 풀어서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성공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실은 다른 교파들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들 대충 설명하고 대충 알아듣습니다. 성공회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성공회에 관한 설명이 불충분해서가 아닙니다. 성공회라는 교단이 교회숫자, 신자숫자가 적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성공회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명품교회, 지상최선의 교회, 비아메디아(중용, 중도)의 교회 등등... 그런데 이런 설명이 대체로 우리 스스로 멋있게 그려보는 성공회의 이미지입니다. 우리끼리 주고받는 설명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성공회 밖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이미지, 분명한 메시지를 새겨주어야 합니다. 아직 그런 기회는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공회는 이름 그대로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 Holy Catholic church”입니다. 사도신경의 표현대로 “거룩한 공교회”입니다.

 

성공회가 거룩하다는 뜻은 우리 성직자와 교우들이 하나같이 경건하고 사심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술 담배 연애를 금하고 돈을 적게 번다고 거룩해지지는 않습니다. 거룩함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 안에서 교회는 거룩합니다.

 

거룩함(聖)의 본질은 하느님의 온전하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세계를 온전함으로 회복하시려고, 우리를 불러 구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따라 부름 받은 우리는 이제 세상 권세에 속하여 세속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이 구분이 거룩함의 본질입니다.

 

공교회(公敎會)라는 뜻은 가톨릭 교회, 곧 보편적인 교회, 모두에게 열린 교회, 모두를 품어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특정한 시공간 안에서 특정한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도록 하는 교회의 힘이 곧 공교회 전통의 힘입니다.

 

공교회를 국교회(國敎會)적인 뉘앙스와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무원, 공기업 할 때의 공(公)이 아닙니다. 보편적이다, 열려있다, 평등하다는 뜻의 공변될 공(公)입니다.

 

교회가 공교회라는 뜻은 교회가 정치적 권력을 잡고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위상과 역할을 수행하기 이전에, 하느님의 구원이 인간의 구체적 삶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는 차원보다 훨씬 깊고 넓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인간 본성에 기인한 죄(악)과 불의(불화)와 죽음(죽임)의 문제를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해결가능하다는 것이 보편적 신앙의 내용입니다.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를 이루고 유지하게 하는 힘은 세상적 권력의 힘이 아닙니다. 거룩한 공교회는 성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상통”에 힘입어 가능합니다. 성부 하느님과 친교상통의 관계 안에 계신 성자 예수님께서 성령 하느님과의 친교상통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느님나라의 본질은 친교상통으로 누리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느님나라를 선취(先取)하여, 깊은 친교상통을 맛보는 일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구원입니다.

 

성공회는 바로 이러한 차원의 “친교상통(koinonia), 곧 커뮤니언(communoin)”을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고 전하는 일에 최선의 교회입니다.

 

친교상통이란 우리를 주어로 삼아서 서로 마음에 드는 이들끼리 모여 우리 취향에 맞추어 친목을 도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수준의 친교는 세상의 친목회, 동호회에서도 가능합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우리는 나를 주어로 삼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세례받은 우리는 거듭난 이들로서 함께 “교회를 주어로 삼아서”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교회를 이룬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 거룩하게 하신 목적, 곧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도록 하신 그 사명을 이루는 일에 하나가 되는 일이 “친교상통”의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은 산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교회와 모든 성도의 상통을 믿으며”라는 표현이 바로 이 의미입니다.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은 율법을 잘 지키고 봉헌을 잘 하면 그에 따라 개개인이 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 인과응보, 신상필벌의 내용은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진 복음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조건이 없고, 차별이 없다는 뜻이어서 놀랍고 기쁜 소식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예수님께는 은총과 진리가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제자가 된 우리도 모든 일을 하느니의 은총과 진리라는 관점에서 보도록 제자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공동체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우리가 누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고 전해집니까? 우리가 식별하여 밝히는 내용이 우리의 삶과 믿음에 진리의 수준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신자들이 모여서 세운 모임이나 조직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부르심을 받고 따르는 이들이 주님의 구원사역을 기억하고 뒤따르며 전례와 성사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성공회는 사도로부터 교회를 통해 이어져오는 주교직을 존중하여 삼품성직(주교직, 사제직, 부제직)을 유지하는 교회입니다. 구체적인 직무의 내용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주교직을 교회 정체(政體)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이른바 시카고-람베스 4개 항중 네째항이 바로 이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교제는 교회가 흩어져있지만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개개신자가 모여 새로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번된 교회에 새로이 신자가 참여하여 생장해가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그래서 한 주교가 이끄는 한 교구를 교회의 기본단위로 삼습니다. 성공회의 주교제는 세상질서(사탄의 지배체제)와 싸우는 교회의 질서(하느님나라의 질서)를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합니다. 개인의 믿음도 중요하고 지역교회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제도돠, 조직화된 권세를 향해서 도전하려면, 교구 단위의 교회가 중요합니다. 성공회가 친교상통의 교회임을 교구 차원에서 실제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주일에 현 관할사제가 이임하시고 그 다음 주일에 새 관할사제가 부임합니다. 교우 여러분으로서는 서운하고 낯선 일이 되어 부담스러울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교구 단위로 성직자 인사를 하는 일도 성공회가 교구단위로 친교상통의 힘을 유지하고 드러내려는 노력 때문입니다. 성공회의 친교는 끼리끼리 사이좋게 예의 바르게 잘 지내는 친교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거룩하게 부르시어 맡기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모두가 기쁘게 하나가 되는 친교입니다. 그 일을 위해 매주일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을 머리로 우리 모두를 한 몸의 지체로 확인합니다. 성체와 보혈을 나누는 예배를 “Holy communion”이라고 부릅니다. 세계성공회의 이름은 “Anglican communion”입니다.

 

성공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하느님나라를 위해 친교상통의 신앙으로 사명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너무 어렵게 들리시나요?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대로 하였더니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성공회를 이룬 여러분의 물음은 더욱 더 깊어져야 합니다. 깊은 물음을 던져서 많은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가벼운 이야기, 구미에 맞는 솔깃한 이야기로 사람을 얻는 일은 이미 세상의 다양한 모임들이 다 하고 있는 일입니다. 깊은 신앙의 물음과 답에 목마른 이들이 많다는 것을 믿으시고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스스로도 신앙의 깊은 물음을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그물처럼 던져 넣어야 합니다.

 

고기가 너무도 많이 잡히자, 시몬은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두려워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신앙적인 관점에서 죄의 문제는 우리의 잘잘못이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여 잘못을 저지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죄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게 할 것인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것인가가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성공회는 개개인에게 죄의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인에게 가장 깊고 분명한 결단을 요청합니다. 성공회를 이룰 것인가, 성공회를 거절할 것인가!

 

성공회의 특징을 비아 메디아(Via Media)로 삼아 자랑합니다. 이 비아 메디아는 중도, 중용으로 번역되는 데, 세심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깊이 살피면, 성공회의 비아 메디아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절충, 두리뭉실 애매모호 뜨듯미지근한 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친교상통을 누리며 전하는 일이 성공회의 본령이므로, 그 친교상통의 신앙을 따른다면, 하느님을 향한 방향만 일치하다면, 우리는 모두와 함께 하느님을 향한 친교상통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끼리의 타협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우리 모두의 방향이 중여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루가 4:30) 이 예수님의 가신 길이 바로 “비아 메디아, 중도의 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느님나라의 시민이요, 성령께서 이루어지는 친교상통의 공동체입니다. 성공회는 교회의 교회다움을 지키려는 교회입니다. 교회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를 늘 성찰하고 반성하는 교회입니다.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누리고 전하는 교회, 바로 성공회입니다. 분당교회는 이미 친교상통의 교회, 성공회다운 교회입니다. 이를 전제로 구체적인 제안을 한 가지 드립니다.

 

4세기의 마카리우스라는 존경받는 수도사가 계셨습니다. 기도 중에 마카리우스는 “마카리우스, 너는 아직 도시에 사는 두 여자처럼 온전하지 못하구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도시로 가서 그 두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의 선행에 관하여 숨기지 말고 말해주십시오.” 두 여자는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덕이 없습니다.” 계속 마카리우스가 조르자 여자들은 대답합니다. “함께 사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악한 말이나 해로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우리끼리 다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수도원에 가고 싶었지만 남편들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적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사랑하는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 서로에게 악한 말이나 해로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친교상통의 교회를 드러내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말을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을 조심하고 조심하여 분당교회가 참으로 “친교상통의 교회”, “지상에서 최선의 교회”, 참된 “비아 메디아의 교회”임을 드러내주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From. 임종호 프란시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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