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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참 포도나무의 열매인 우리는

by 분당교회 2018. 4. 29.

2018년 4얼 29일 분당교회 순방 

사도 8:26-40 / 시편 22:25-31 / 1요한 4:7-21  / 요한 15:1-8 

           

참 포도나무의 열매인 우리는

- 이경호 베드로 주교 -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죽음으로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 그리고 교회 위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잘 되어 참으로 기쁘고 좋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새롭게 복원된 남북관계가 그동안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위기가 해소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기원합니다.   


4월 25일은 분당교회 설립 19주년이었습니다. 그동안 분당교회를 섬기신 신부님들과 교우 여러분의 헌신과 수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관할사제이신 김장환 신부님과 함께 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가길 기대하고 기원합니다.


사람들의 모임이나 관계에는 긴장이나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에니어 그램에 의하면 사람은 크게 머리형, 가슴형, 장형이 있습니다.   

머리형의 사람은 이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만 편안합니다. 

우리 성직자 중에 대표적인 분은 분당교회를 섬기시던 임종호 신부님입니다. 가슴형의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소통,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는 가슴형에 속할 겁니다. 장형의 사람은 뱃심으로 사는 사람으로 이 배가 채워져야만 안정감을 누립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를 견묘지간 –즉 개와 고양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개와 고양이는 의사소통 방식, 생활패턴이 많이 다릅니다. 

개가 꼬리를 흔들면 반갑고 친하다는 표시인데 고양이는 공격준비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개는 아주 활달하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는 친근감의 표시로 주위를 맴돌고 툭툭 건드립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개의 이런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렇게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개나 고양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말하고 일하는 방식, 욕구, 물질적인 이해관계, 생각이나 입장의 차이, 과거의 아픈 상처, 삶의 목표와 방향, 성향이나 기질의 차이, 생활습관, 정치적 입장... 다름의 요인은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 공동체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신비이고 기적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농부이신 하느님의 꿈은 포도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서 5장 2,4절을 보면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표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2 임은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 한가운데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술틀까지도 마련해 놓았네.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들포도가 웬 말인가? 

4 내가 포도밭을 위하여 무슨 일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는가?


자식을 길러본 사람들은 이미 이런 경험을 하셨습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온 정성을 다했지만 그 기대에서 어긋났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농부와 포도나무의 관계성을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가 없는 농부, 농부가 없는 포도나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농부의 수고(땀)은 포도나무를 자라게 하고, 포도나무의 수고는 포도를 열매 맺고, 그 포도가 포도주가 되어 축복이 됩니다.

    


두 번째로 포도나무와 가지 그리고 열매의 관계성입니다.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열매를 맺습니다. 이 관계가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러나 때로 농부는 더 좋은 포도 수확을 위해서 과감하게 가지를 치기도 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로부터 수액(내 말 – 가르침 / 교훈)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지에 열매를 맺으면 참 제자가 되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가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가?  

나는 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을 공급받고 있는가?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머문다는 것은 그 사랑을 충분히 먹는다. 그 사랑 안에 흠뻑 취한다. 그 사랑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들도 그 아버지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  세상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참 기쁨과 평화,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먼저는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두 번째는 이웃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나는 어떤 열매를 맺는가? 문제입니다. 

신앙인은 사랑의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을 보람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관계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문제는 어떤 열매를 맺는가? 이겠지요. 

사람들이 만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무엇을 도모하는가,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무엇을 열매 맺는가? 를 보면 그 관계가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날 때마다 좋은 일을 도모합니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면서 아름다운 일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부정적이고 악한 일을 도모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만났던 사람들의 관계를 살펴보십시오.

그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결과를 이루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누구와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오늘 요한 서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자신을 내어 줍니다. 자신을 내어 주면서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먹을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처럼 우리가 나의 사랑을 내어 줄 때 우리도 그 사람 속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서로가 사랑 안에서 자신을 내어 주면서 살 때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죽어도 그 사랑을 먹은 사람은 여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이런 사랑의 삶은 로마 제국이 추구했던 질서, 가치, 삶의 방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새로운 대안 공동체였습니다. 이것이 지난 2천년 동안 교회를 이끌어 온 힘이고, 생명력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랑을 삶을 가장 강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의 신비/ 능력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사랑으로 대안공동체가 될 때 여기에 희망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분당교회 안에서 사랑의 신비와 능력이 살아나길 기대합니다.  



이제 설교 후에는 12명에게 견진예식을 합니다. 

견진예식은 무엇보다도 성령 안수이고, 기름으로 축성하는 예식입니다. 

오늘 견진을 받는 분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어 그들을 더욱 굳건하도록, 강하게 하시고, 쓸모 있게 만들며, 견딜 수 있는 힘을 구합니다. 그래서 견진을 받으시는 분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더욱 강건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총 안에서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견진은 성숙한 신앙인 제자로 살아가겠노라는 고백이고 선언입니다. 

한마디로 신실한 제자로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지요. 

무엇을 책임진다는 것인가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신앙을 책임져야 합니다. 내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고 성장하려는 노력,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은 교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 역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에 맡은 책임을 감당할 때 여러분의 믿음은 자라납니다. 


다시한번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실 놀라운 비전과 꿈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분당교회가 부활의 은총과 축복을 나누어주고 전하는 부활의 공동체로 성장하고 발전해 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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