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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체

by 분당교회 2018. 4. 9.

2018년 4월 8일 나해 부활 2주일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인사가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평화를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화 평화 평화 평화를 네게 주노라.”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고 그 평화를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말씀을 나눕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십니다. 어제 읽은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요일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셨고, 그 다음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이 사건은 루가복음 24장 13절부터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마 오늘 복음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만 만나시는 것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회당이나 성전에서 자신을 죽인 종교인과 군중들에게 나타나시면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왜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을까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하느님의 비전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 말입니다. 



하느님은 이집트에 들어가 노예로 살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해방시키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 공평과 정의가 흘러넘치는 평화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과 열방이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비전을 품으셨습니다. 


창세기 18:19,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야훼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어야 하리라.'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개역개정) – 의와 공도 : 미수파트와 쩨테크.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느님의 비전이 실패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 외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제자를 부르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죄인들을 환대하시며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자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시어 예수님이 다시 시작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했음 확증하시고, 예수님을 구원의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1장 3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시작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다시 제자들을 만나 가르치시며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이유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의 비전에 따른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누룩이 밀가루에 들어가면 부풀어 오르듯이, 예수님의 부활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교회는 오직 하느님만을 예배하고 그 분에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어 그 나라를 확장해 가는, 누룩과 같은 하느님 나라 운동체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우연히 모이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1독서는 하느님 나라 운동체로 세워진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2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그 많은 신도들이” – 사도행전 2장의 결과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나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다시 살리시어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외쳤습니다. 그날 회개하고 세례받아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부활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32절에서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one in heart & mind / one heart & one soul.” 하나의 심장과 하나의 영혼, 즉 완전히 한 몸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 노예와 주인,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등 등 자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차별하고 배제하는 세상에 전적으로 대조되는 대안적인 공동체의 모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예수님이 십자가 죽기 전날 밤, 게쎄마니 동산에서 드린 기도의 응답입니다. 요한 17: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통해서 나타날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나될 수 있는 비결을 사도행전 2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42절을 보면, 새로 신도가 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그대로 전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서신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요한 1: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왕으로 예배하며 그 분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보고 배운 것 중에 가장 강조해서 가르친 것은 아마도 새계명일 것입니다. 요한 13: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들의 발을 씼어 주시고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행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서로 사랑은 용서와 용납으로 표현됩니다. 갈등과 반목과 시기는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용서와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우정은 더 깊어집니다. 서로 사랑은 마침내 재산을 공유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생산은 없이 소비만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로 돌아보며 나누며 섬기는 공동체의 사랑은 교회의 정신으로 계속 되었습니다. 쩨데크라고 했습니다. 


쩨데크의 정신이 교회 공동체 안에 차고 넘치면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갑니다. ‘플로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는 성공회 선교정신 3번째가 이루어집니다. 지난주일 부활절 헌금을 정성껏 해주셨습니다. 오늘 교회위원회를 통해 플로윙 대상과 규모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한 쩨데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 실현되도록 교회에게 사명을 줍니다. 성공회 선교정신 4번입니다.  ‘불의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청년구직자, 실업자, 비정규 노동자, 노숙인,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실현되도록, 하여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되도록 하는 모든 노력이 하느님 나라의 선교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몸인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되면, 이제 가장 본질적인 교회의 사명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전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되었고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교회가 하나 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계명에서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너희를 보고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말씀은 유효합니다. 우리 교회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서로 돌아보며 나누고 섬기는 한 식구가 되면 하느님은 구원받을 사람을 더해 주십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의 간증입니다. 한 가정이 부도를 맞아 월세 원룸에 살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린 상태였습니다. 교회의 한 가정이 그 가정을 위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분식집을 얻어 줬습니다. 1500만원의 보증금을 다 부담했습니다. 나머지 교우들은 시설비 300만원을 모아 가게를 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그 모습을 아름답게 보셨는지, 그 다음해에 무려 40명이나 되는 새 가족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 공동체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하나됩니다. 왕으로 섬기던 물질에서 해방되어 나누고 섬기며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립니다. 세상 속에 의와 공도,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의 선교를 수행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주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교회가 됩니다. 


이럴 때 세상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 돌아옵니다. 그 나라가 확장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지금 여기에서 그 나라를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운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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