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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교회가 성전이다

by 분당교회 2018. 3. 4.

2018년 3월 5일  사순 3주일

+ 행복한 3월을 위해 +


윤보영


3월입니다.


산에 들에 꽃이 피듯

가슴에도 꽃을 피워

행복을 선물 받는 3월입니다

내가 행복하듯, 3월에는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당신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가득

사랑이 돋아나는 3월!

돋아난 사랑을 나누면서

행복한 3월을 만들겠습니다.

내가 만들겠습니다.


3월에는

내가 준 사랑으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3월에는

내 3월에는.


아직 추위가 있을 수 있고

기다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3월은

이것마저 행복한 달입니다.

마음까지 따뜻한 달입니다.


나의 3월에는

내가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멋진 한 달을 만들겠습니다

3월 내내 사랑하겠습니다.


교회가 성전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될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성전 안에 있게 된 명분은 그럴듯합니다. 제사의식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흠이 없는 제물을 제공해 주고 로마의 화폐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성전세로 바칠 유다인의 화폐로 바꿔주는 등 예배에 편리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는 형편에 따라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하셨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소나 양을 바치고,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바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장들이 희생제물을 심사해서 흠이 있다고 퇴짜를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흠 없는 제물이라며 시중 가격보다 몇 배 비싼 가격으로 팝니다. 로마 화폐를 유대 화폐를 교환해주면서도 폭리를 취합니다. 성전계급들인 제사장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6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금을 차지하려고 성전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명분은 그럴 듯 해보였지만, 속에는 탐심이 가득 찼던 것입니다. 성전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이나 소나 다 성전에서 쫓아내고 돈을 쏟아내시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 자비 온유 등 부드러운 이미지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종교귀족들을 향해 의로운 분노로 포효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독사의 자식이라며 욕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운 분노, 거룩한 분노”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하는 예수님의 모습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본 제자들에게 떠오른 시편의 말씀이 있었다고 합니다. 17절,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저는 오늘 복음 본문을 읽을 때마다, 22년 전 부제서품을 받을 때가 기억납니다. 부제서품을 앞두고 우리 성공회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할 때면 떠오른 말씀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시편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성전을 둘러엎으신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디 성전은 죄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를 결단하여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샬롬의 나라, 하느님 왕국을 살아가게 하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을 허물라” 말씀하실 때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 누구든지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시는 성전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착취의 수단이 되어버린 제사, 마음은 없이 형식화되어버린 예배가 드려지는 성전 시대를 끝내고 성전의 본질인 참된 예배가 회복되는 새로운 시대를 여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죄의 고백으로 함께 읽은 십계명이 오늘 1독서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은 400여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하느님도 잘 모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를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기준을 제시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세계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임을 제시하십니다. 십계명을 살펴보면, 하느님의 관심이 평화와 안식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4절, 본떠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집트에서 노예로 시달린 일이 이런 우상, 왕을 위한 건축물 등을 만드는 것이었기에 ‘돌을 새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10절, 안식일에는 가축까지도 식객까지도 쉬게 하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생산성의 측면에서는 어리석은 명령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창조 후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이 안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쉼과 안식이 구원의 내용입니다. 안식일이 안식년으로, 안식년이 희년으로 발전하며,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참된 구원과 해방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특별히 17절을 보면, 외적 행위의 금지만이 아닌 인간 내면을 다루는 말씀을 주십니다.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탐심이 인간의 원죄였습니다. 창세 3: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사람이 탐심에 굴복하면 하느님 앞에서 죄를 범하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고보 1: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제사법을 주시며 자기 백성이 탐심으로부터 해방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죽어가는 희생제물을 보며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나를 살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기억하고 탐심이 아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성전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강도의 소굴로 타락한 것, 사람이 사람을 노예화하고 피조세계를 파괴하는 깨어지고 신음하는 세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조차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모두 탐심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가 탐심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을 예배하고 모든 피조세계와 더불어 살았던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나와 내 교회 안에 성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성전입니다.


고전 6:19-20,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전은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희생 제물에 안수해서 자신의 죄를 전가시켜 죽입니다. 각을 뜨고 태웁니다. 받은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그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이렇게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되새겼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매일, 거룩한 희생 제물로 자기 몸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십자가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되새겨야 합니다. 


오늘 서신에서 사도 바울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선포할 따름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23). 십자가의 이치가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한밭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18) 사도 바울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이 너희도 나를 본받아라(고전 11:1). 저도 감히 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린 성공회는 성체성사를 통해서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깁니다.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면서 주님의 사랑을 먹고 마십니다. 이제 주님과 하나 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일상의 삶에서 그 사랑으로 모든 피조 세계를 섬기며 돌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가 성전이 됩니다.


둘째, 우리의 중심에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 중심에는 십계명이 있었습니다. 지성소 언약궤 속에 아론의 지팡이와 돌 판이 두 개 놓여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중심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 논리, 명분, 철학 등이 아닌 오직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골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예수님은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나의 주인이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가 교회 다와 집니다. 교회를 통해 모든 피조세계가 하느님과 화해하며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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