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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교회, 부활의 공동체

by 분당교회 2018. 4. 1.

2018년 부활절

교회, 부활의 공동체!


예수님이 살던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제국을 이룬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가 오래였습니다. 당시 사회의 주류 가치관은 로마의 황금만능주의와 황제숭배였습니다. 이 가치관 아래 로마는 세금만 잘 내면, 식민지 백성들에게 일정 정도 자유를 허락해주었습니다.


이방 제국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언제가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시라는 기대로 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느님이 구원해 주실 기대로, 어떤 이들은 무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 오직 말씀으로만 거룩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을 거라는 기대로,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로마의 권력에 붙어서 호위호식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라는 나사렛 시골뜨기 청년이 나타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 선포는 ‘이스라엘이 섬겨야 하는 왕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세상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결단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하느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이제 곧 임한다고 선포하며 산이나 들에서, 그리고 회당에서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어김없이 병자를 고쳐 주시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며 율법의 정신을 바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병자를 고쳐주실 때 단지 치유만을 행하시는 것만이 아닌, 죄 사함을 선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나를 보았으면 하느님을 본 것이다’고 말씀하시어 유대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예수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가난한 사람들, 세리, 창녀들과 어울리셨습니다. 그들을 환대하고, 같이 먹고 마시며,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식탁의 교제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예표였습니다. 율법으로 정죄 받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라며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로마 황제에게 붙이는 칭호인 ‘주님’이라는 말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지난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에게 사람들이 부른 환호성, ‘호산나’라는 말의 뜻이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고 또 그에게 구원해 달라고 외치는 무리가 많다는 것은 로마 권력에게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은 예수를 없애기로 결탁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라는 신명기 율법에 따라 권력자들은 예수를 나무 십자가형으로 죽였습니다. 예수는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임을 보여주며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흩으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나타나더니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느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고, ‘그분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기록처럼, 안식일 다음날 예수의 무덤에 가보았더니 예수의 시신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이 주장에 맞서, ‘제자들이 예수 시체를 훔쳐갔다.’ ‘예수가 실제 죽지 않았는데 무덤 안에 있다가 기력을 회복해서 무덤에서 나왔다’는 등 예수시체도난설, 예수기절설 등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반박의 말보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이유인즉, 제자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입니다. 예수처럼 죽임 당할 수 있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달려 하느님께 저주받아 죽은 예수를 외면하기는커녕,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느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4고, 외치는 제자들의 용기와 그 변화된 모습이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용기를 내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사도 10:39-41,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수많은 증인들을 제시합니다. 고전 15:5-8, “5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의 외침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교회로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환대하고 사랑하며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당대의 황금만능주의, 칼과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 율법으로 정죄하는 종교주의를 거스르며, 사랑과 공평과 정의가 넘치는 평화의 공동체를 세워가며 하 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니케아신경에 나오는 교회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 여기서 ‘사도로부터 이어온다’는 고백의 내용이 바로 초대교회가 살아낸 하느님 나라의 삶입니다. 초대고회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공평과 정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고 가르치시고 그들을 그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죄인들로 정죄받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자신이 하나하나 담당하시며 마침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이는 예수가 선포하고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가 ‘옳다’ ‘맞다’ 예수의 말대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다“하느님의 확증”Affirmation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첫 번째 선교 사명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4월입니다. 아픈 기억이 많은 계절입니다. 70주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져 왔던 4.3이 일어난 제주의 아픔이 그렇고, 4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16이 있습니다. 또 여러 모양으로 고통 받으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아파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하였고, 마침내 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주고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공회 분당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 하나 되어 가난한 이웃,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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