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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시리즈 : 윌리엄 포처 듀보스(William Porcher DuBose 1836-1918): 그리스도처럼 되어가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2. 23.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서 윌리엄 듀보스는 노예제도를 당연시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죽 보아왔고 성서에도 나오는, 하느님이 세우신 자연스런 질서로 본 것입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듀보스는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남부 연방군 장교로 참전하여 세 번이나 부상을 당합니다. 그리고 말이 총격을 받아 쓰러지는 바람에 포로가 되어 이가 들끓는 포로수용소에서 두 달을 보내게 됩니다. 남군이 패주하고 난 어느 날 밤 별을 올려다보던 듀보스는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을 문득 떠올립니다. 결국 남부 연방이 패배하리라는 생각. 그것이 듀보스에게는 죽을 것 같은 공포로 다가왔고 그날 밤 세상은 끝장난 듯이 느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 고향에 와 보니 부모님은 이미 사망했고 집은 북군이 불을 질러 완전히 재가 된 마당이었습니다. 이때 듀보스는 견딜 수 없는 절망을 느낍니다. 이 젊은 날의 고통 외에도 듀보스는 훗날 두 번이나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 하나도 앞세워 보내는 고통을 겪습니다. 듀보스는 노예제도를 찬성하고 남군의 승리를 확신했던 자신의 오류에도 깊은 실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도대체 오류와 고통,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이렇게 갈라지고 죽고 악하고 황폐하기만 한 세상을 하느님은 어떻게 새롭게 하나 되게, 생명과 선이 나타나게 하실 것인가?

사실 듀보스는 남북전쟁 전에 신학공부를 했었고 전쟁이 끝난 일 년 뒤 1866년에 사제서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몇 군데 교회에서 시무를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게 하는 소명은 1871년에 옵니다. 당시 테네시 산꼭대기의 넓은 땅과 학교를 하겠다는 취지 정도만 있는 남부대학(the University of the South) 이사회가 듀보스를 교목으로 초빙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은퇴하는 1908년까지 이 학교의 교목뿐만 아니라 교수, 신학과 학장 등으로 두루 봉사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듀보스가 스와니(Sewanee. 남부대학을 보통 이렇게 부릅니다)에 버티고 앉아 미국남부 전역에서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오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미국성공회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윌리엄 듀보스입니다. 학자들은 미국성공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그를 꼽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경험하면서 고통을 받은 탓인지 듀보스는 무상성, 계속해서 변화함을 사고의 기본 틀로 삼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 신경마저도 최종적인 걸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인간의 생각, 개념이란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진화론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마당에 듀보스는 일찌감치 그 과학이론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참신하게 해 준다고 본 것입니다. 듀보스가 볼 때 인간이 내놓는 설명은 무엇이든 더 이상 손댈 수 없이 최종적이라 할 수 없으며 줄곧 개혁을 해야 하는데 교회의 가르침도 그러합니다. 오늘날 미국성공회의 풍모와 성격은 듀보스의 관점을 양분으로 해서 길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듀보스는 새로운 생각이 등장하면 교회는 이를 깊이 경청하고 실험해보라고 권합니다. 오류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경험이 우리를 오류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인생경험을 통해 이전의 오류를 시정해갔던, 그야말로 경험의 안내를 받았던 인물인 탓입니다. 그래서 듀보스는 교회란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한 전체로서 진리를 식별해가는 도상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생각, 관점들을 경청하면서 가노라면 결국 경험이 이 교회를 진리 쪽으로 이끌 것입니다. 미국성공회가 이러한 듀보스의 시각에 영향을 받았다면 어째서 보수색이 강한 미국 그리스도교 풍토에서 성공회가 유별난지, 특히 근본주의하고는 거리가 먼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성공회 신학의 한 특성을 성육신 강조에서 보거니와 듀보스의 신학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도 그의 성육신이해입니다. 그는 역사적 신경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해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치른 대가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서가 다만 죄가 없으실 뿐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신 분이라고 말한 대목을 듀보스는 강조합니다(히브리 4:15). 그러므로 그분도 우리처럼 의심과 두려움, 미래를 알지 못함, 선보다 악을 택할 가능성 등의 인간적 약점을 두루 공유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듀보스가 볼 때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을 대표하여(represent) 십자가에 달리셨지 대신하여(substitute) 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대신하여 돌아가신 거라면 우리 신분상의 지위는 달라질지 몰라도 존재의 본성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대표하여 돌아가신 거라면 우리 인성 “내면에” 무언가가 일어난 것이고 명색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이 달라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육신은 신성이 인성이 된 것이지만 동시에 인성이 신성 쪽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고전적 이해가 듀보스에게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양극성을 함께 끌어안고 필요하다면 소홀히 대한 한 축을 강조해주는 것이 성공회의 포괄성 지향 에토스라 할 것입니다. 구원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신하여 죽는 바람에 한 방에 칭의로 신분변화가 일어났음을 강조하는 개신교의 관점과는 달리 존재변화를 강조하는 듀보스적 관점에서 구원은 점진적으로 길을 가는 과정입니다. 여전히 죄와 오류가 있지만 우리를 끌어안고 대표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점차 그분의 성육신처럼 되어 갑니다. 이것은 하나의 과정(process)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약점과 오류를 면치 못하지만 경험의 안내를 따르며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차 “되어가는”(becoming) 구원의 과정에서 열쇠는 성령이십니다. 인간 예수를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이끄신 분이 성령이듯 우리를 그리스도의 성육신처럼 이끄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교회를 이끄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 바울로의 비유처럼 교회는 성육신의 연장선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안에서 성육신을 이루셨듯이 교회라는 신비체 안에서 지금도 성육신을 성령을 통해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기관이 아니라 옛날 유대 땅에서 인간 예수가 그러하셨듯 오늘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성육신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성령의 점진적 존재변화를 통해 이루어가는 구원, 이것이 듀보스 신학의 요체입니다.

듀보스를 읽노라니 이원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 대신하여 죽음을 강조하는 대속론 신학, 한 방에 이루는 칭의적 신분변화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 개신교 영성의 치우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공회마저도 그런 개신교의 제한된 상상력을 여과 없이 수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읽기였습니다. (이주엽 신부)

내가 일상 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온갖 소음,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아침,
내가 체험하는 다른이와의 만남이
모두 그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나보다 앞서가며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알려주는 표징이다.

바로 하느님이시다.

-까를로 까레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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