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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나도 한 말의 밀알이 되어

by 분당교회 2021. 3. 21.

2021년 사순절도 이제 두 주간 남았습니다. 사순절 매일기도를 또래모임별로 참여하는 온라인기도회로 진행하고 있는데, 목요일 밤 10시에 진행하는 2남4녀의 ‘밤기도’에 박연우 어린이가 아빠와 함께 참석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연우가 드린 중보기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6학년 주일학교 어린이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서울과 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의향을 나눈 후, 기도서에 있는 ‘선거를 위한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참 대견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시는지요? 하루 중에 잠시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계신지요? 

 

사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뺏고자 하는 것이 기도 시간입니다.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 없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유혹에 패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남은 두 주간 사순절매일기도회와 성주간 전례에 참여하시면서, 기도와 묵상을 거룩한 습관으로 회복해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을 성지주일 고난주일로 지키면서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성주간의 핵심은 목,금,토 성삼일입니다. 성삼일의 전례는 성목요일 성체제정예식, 성금요일 주의 수난예식, 그리고 성토요일 부활밤예식 등입니다. 

 

성삼일 전례는 방역수칙을 지키는 가운데 성당에서 드립니다. 방역지침에 따라 30명 참석이 가능합니다. 성주간 성삼일 전례를 통해 주님의 은총 안에 깊이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지난 사순3주일부터 요한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들이었는지 기억하시는지요? 

 

사순3주일에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성전정화사건이야기, 아니 성전 폐기선언을 들었습니다. 요한 2:19,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성전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며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 나라 백성의 삶을 회복하는 은총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 강도의 소굴로 타락한 성전은 폐기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일 말씀은 요한복음 3장. 기억하시죠? 3장 16절 말씀, 다시 암송해 볼까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중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새로 나서,” “거듭 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누리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2독서 에페소서 2장을 통해 거듭남으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에 대해서 살아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이기는 삶을 살며, 지금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는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선물,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감사성찬예배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동일한 메시지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밀알로 그냥 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생명의 법칙으로, 보편적인 진리이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80년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생명을 바쳐 오늘날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미얀마가 그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있습니다. 정의의 하느님이 살아계시기에, 미얀마에도 민주화의 봄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하여 이번 부활절기의 헌금의 일부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위한 기금으로 플로윙합니다. 응원의 마음을 모아 주십시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밀알 하나’는 예수님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말하는 것이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구원의 선물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32절,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십자가의 은총에 감사하는 예배자로 살며 예수님을 따라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예전에 많이 부르던 찬양이 맴돌아 여러분에게 불러드립니다.

  “온 세상 위한 십자가 드높이 섰도다 주 예수의 피 강같이 온 땅에 흐르네 

  그 피를 의지하는 자 새 사람 되어서 주 예수 사랑 가지고 강 같이 흐르겠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주시어 열매 맺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과 안에 있는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안에 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 밀알 안에는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먼저 밀알은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열매 맺는 씨앗이 땅 속에 있어야 하듯이, 신자들이 있을 곳은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의 소금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이 신음하는 이 세상, 불의와 부패가 가득한 이 세상, 깨어지고 상한 피조세계 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이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세상 속에서 내가 죽어야 합니다. 세속과 마귀와 정욕을 따르는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못 박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 5:24-25, “24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25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내 안에 새생명으로 와 계신 성령님을 따르는 삶은 내가 이미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난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갈라 2:19하-20, “19  …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례의 은총을 되새기게 하는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9장의 내용이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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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죽음을 야기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 행동 양식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골로 3: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하신 주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세례는 일종의 죽음이며 세례 받은 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계(순종, 종 됨, 공동체라는 체계)를 따라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세례 배후에는 예수의 세례가 있습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힙니다. 

 

세례를 받는 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세례를 받습니다. “죽음을 통해”란 무슨 뜻입니까?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듯이 당신 또한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죽고 주님으로 살아났듯, 당신 또한 세례 성사를 통해 과거에 죄를 즐거워했던 것에서는 죽고,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 물에 잠길 때 당신은, 그분의 죽음을 그리고 매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십자가 성사를 받는 것입니다. … 당신은 십자가에 달릴 때,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사론De sacramentes Ⅱ,23)

 

주보 2면, 

1.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대를 죽음 상징하는 (무덤) 모양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초대 교회는 현대인들은 종종 잊고 하는 세례의 중요한 의미(죽음)을 기억했습니다.

 

2.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보다 물의 속성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물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물을 (생명과 의미만큼이나) ( 죽음 ), ( 허무 ), ( 혼돈 )이 넘실대는 ( 어둠 )으로 묘사합니다.

 

3. 예수께서 베푸시는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어주는 ‘( 회개의 세례 )’ 이상의 세례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으시면서 요한의 세례 자체가 변화합니다. 이전에 세례는 오실 메시아를 ‘( 사람이 )’ 예비하는 예식이었으나 이제 세례는 ‘( 성령이 )’ 활동하는 예식이 됩니다.

 

4. 대개 세례는 ( 부활절 전날 밤 )에 행해졌습니다. 적어도 중세 초기까지 그랬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 유월절 )에 해당하는 이 날, 세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우리의 죽음과 연결해 주었을 뿐 아니라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죽음에서 ( 생명 )으로 어둠에서 ( 빛 )으로 나온다는 이날의 본래 뜻을 드러냈습니다.

 

세례란 매일의 회개와 참회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옛 아담을 질식시키고, 모든 죄와 악한 욕망을 죽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매일 다시 태어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주님 앞에서 의롭고 순결한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 교회로 들어선다는 것은 죽음을 자원하는 일이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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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놀라운 세례의 은총으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내가 죽고 남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또한 예수님을 모본으로 삼아 따라 갈 때 가능합니다. 

 

오늘 히브리서가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범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하시며 하느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는 더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히브 5: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 복음 27절을 보면 예수님도 사람이시기에 그가 치러야 하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번민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그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죽음의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거듭 거듭 밤이 맞도록...큰 소리와 눈물로…” 그리고 마침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아버지의 뜻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일입니다. 땅 속에서 죽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열매 맺는 신앙생활의 관건은 내가 죽는 만큼 괴로운 고통을 겪을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기도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란 내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기까지 내가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축복의 통로로, 하느님께서 세상에 심어 놓은 씨앗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가 되고, 환대의 영성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복음 공동체가 되는 것이 여러분이 맺어야 하는 열매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아버지 앞에 무릎 끓고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공동체로 모여 함께 나라와 세상을 위해서 더욱 간절히 중보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묵상)

 

오늘의 본기도 - “구원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바쳐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나이다. 비오니, 연약한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시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씨앗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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