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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전이신 예수님!

by 분당교회 2021. 3. 7.

경칩도 지나 완연한 새봄입니다. 참 좋은 계절이 왔지만, 지난 한 주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건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그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성전환수술을 한 청년이 여전한 사회의 차별과 냉대 가운데 죽음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그랬습니다. 너무 슬픕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면,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돌아온 탕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시는 하느님을 묵상하면서, 그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사회 구석구석에 흘러 들어가, 차별금지법이 속히 제정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새봄이 왔으니 예쁜 시 하나 음미하고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김남권 시인의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라는 시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머문 자리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당신의 손길이 머문 자리마다

이파리가 돋아납니다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이야기입니다. 마태, 마르코, 루가 공관복음서에는 공생애 끝 성주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요한의 목적입니다.

 

과월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과월절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절기입니다. 부활절이 유월절과 유사합니다. 

 

부활절을 참된 기쁨으로 맞이하고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지킵니다. 자선과 기도와 극기, 재정훈련 등의 경건 훈련에 집중하는 사순절을 잘 지키고 계신가요? 

 

남은 사순절 4주간, 또래모임별로 드리는 사순절 매일기도, 코로나로 어려운 교회를 돕는 극기헌금, 성서동톡365, 탄소금식 등에 적극 참여하시어 영적으로 성장하며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거듭 말씀 드립니다. 이번 주 탄소 금식은 전기 사용 줄이기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눈에는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들어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한마디로 난동을 부리신 겁니다. 왜 그러셨는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6절,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성전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어제 복음 탕자를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품과 같은 곳이 성전입니다. 1독서에 나오는 십계명과 그것을 구체화 시킨 율법들을 지키지 못하며, 하느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들이 하느님께 나와 제사 드리며,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회복의 자리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들은 총독과 로마 황제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뇌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들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권력자들은 장사꾼들과 결탁하여, 제사 제물로 바치는 동물들을 비싼 값에 팔고 성전세를 바치는 동전을 바꿔주면서 막대한 이득을 취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고리대금업을 통한 토지와 노비까지 소유했습니다. 

 

요단강 물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외친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  갔던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반성전 반제국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발전시키셨습니다. 

 

타락한 성전체제에 부역하는 장사꾼들과 희생 제물로 쓰이는 동물들을 몰아내신 예수님의 행동은 더 이상 동물속죄 제사가 필요하지 않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9절,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백성들을 수탈하는 종교기업으로 타락한 성전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의 제목은 성전정화사건이 아니라, 성전폐기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너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는 나를 화목제물로 받으시는 하느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는 구원의 이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어떤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요한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아멘?

 

이것이 바로 오늘 서신이 말하고 있는 “십자가의 이치”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이치를 감사성찬예배 때마다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하게 하는 구원의 이름임을 믿습니까? 

 

사도 바울로는 오늘 서신에서 말하기를, 십자가의 이치가 유대인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하느님 나라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놀라운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성전이 바로 예수님의 몸임을 깨달았고(21절,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성서의 말씀과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성서 말씀과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7장, ‘성령을 받음’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요한 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고전 12:3,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요한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이렇게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때때로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을 주시기도 하고 방언과 같은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순절 교단 같은 경우에는 제2의 세례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사도행전 18-19장에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 밖에 알지 못했다”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에페소인들도 ‘(성령)’에 관해서는 들어 본 일이 없다고 답합니다(사도 19:2). 신약에서 (재세례-성령세례)를 지지하는 유일한 근거도 아마 이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두 가지 세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요한)이 베푼 그리스도 이전의 세례입니다. ---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로 주님께서 이곳에서 임하시고 활동하신다는 징표인 물과 성령의 세례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는 일은 선택 사랑도, 어떤 도구도 아님을 (은사주의자)들은 상기시켜 줍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입니다. 

 

세례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회심)과정, 세례대에서 시작되어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는 (성숙)의 과정입니다. 마침내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고자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재의수요일부터 오늘 사순 3주일까지 드리는 성체후기도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본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삶의 발자취를 인내로써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누리며 그 은총 안에 살게 하는 성전입니다. 이 선물을 주시고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이 은총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밭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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