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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무슨 생각으로 사십니까?

by 분당교회 2021. 2. 28.

지난 금요일이 정월 대보름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오늘 교회마다 정월대보름맞이 척사 대회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밤하늘 환한 보름달을 보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이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으니 겨울 전,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 마스크 잘 쓰시고 손 잘 씻으시며,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21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마지막 주일이네요. 내일은 3.1절입니다. 기미년 독립 정신이, 이 민족을 이끄는 정신이 되어, 민주화를 이루어 냈고 이제 통일과 평화의 나라로 전진하는 민족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3.1절을 맞이하면서 특별히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응원을 보냅니다. 미얀마성공회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손표시를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큰 힘이 되겠다는 요청이 있습니다. 예배 후 사진을 찍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도 벌써 10일이 지났네요. 또래모임이 저녁에 온라인으로 사순절 매일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녁 9시는 목요일 담당 또래모임 교우들의 라이프 스타일에는 이른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청년회는 화요일 밤 10시 반으로 조정하고, 여성4모임과 남성2모임은 목요일 밤 10시로 조정하여, 기도서에 있는 밤기도 양식으로 함께 기도하려 합니다. 

 

사순절 매일 기도회에, 굳이 시간을 내시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온라인으로 대면하고 함께 기도하며, 그 힘으로 일상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1.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마르코복음에 3번의 수난 예고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입니다. “31절,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32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묵상 중에 31절의 ‘반드시’라는 표현과 32절에 ‘명백하게’라는 표현이 마음에 담겼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 복음 말씀 앞서 전개된 스토리를 알려 드립니다. 

 

마르코복음 3장 6절에 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헤로데 당원들과 만나 예수를 없애버릴 방도를 모의했다고 합니다. 발단이 되는 사건이 3장 1장부터 나옵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쳐주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고발하려고 지켜본 이유는 회당 사건 이전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었는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과 논쟁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시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닌 잘못된 생각과 믿음을 질타하셨습니다.

 

이 갈등이 회당으로 이어졌고 예수님은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말씀하시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착한 일이 최고의 섬김이고 섬김이 하느님이 받으시는 예배이기에, 안식일에 하느님께 드릴 최고의 예배는 사람을 살리는 착한 일인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율법에 갇혀 사람을 정죄하고 차별하며, 자기 의에 갇혀 살던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 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착한 일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하셨습니다. 죄인으로 정죄 받으며 살아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환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당대 기득권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율법학자, 헬롯당원, 로마권력과 갈등하게 되었고, 끝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가시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 “반드시, 명백하게”라는 단어인 것입니다. 

 

“반드시. 명백하게”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신앙의 언어이기를 기도합니다.

 

2.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상당히 순화된 번역입니다. 원어의 뜻은 “붙들고, 즉 멱살잡이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앞 단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메시아상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였습니다.베드로와 제자들도, 예수가 오랜 식민 통치를 끝내고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메시아로 알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는데,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할 거라고 하니 펄쩍 뛰는 겁니다. 

 

마르코복음을 읽으면, 제자들의 이 생각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9장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는데, 그 직후에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으냐?”로 자리다툼합니다. 10장에 가서도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셨는데 곧 바로 제배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요청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섬김의 제자도와 자신이 치를 대속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마르 10:43-45,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제자들의 모습이 위로가 되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마침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대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이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행동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베드로가 보인 행동은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3장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던 일도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세속의 가치관과 사탄의 유혹에 사로잡힌 자기 욕망에 근거한 생각들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지라도, 그 죽음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신 죽는 거룩한 사랑”의 길이기에, 그 길을 따르며 사랑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3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무엇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듣기를 반복한 것이 내 안에 내 생각을 형성합니다. 회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하느님의 일을 생각해야 하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순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시간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이 내 심비에 새겨지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어디에 서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해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가 understand입니다. ‘아래에 서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피라미드 사회입니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성공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upsidekingdom입니다. 역피라미드입니다. 

 

역피라미드 하느님 나라 질서에서 누가 제일 아래에 계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섬기는 종으로 왔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섬기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은 생활 속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입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내 생각을 형성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함께,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6장은 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12쪽,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치유하고 행동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홀로 있는 그리스도인 같은 것은 없습니다.”

  113쪽, “구원은 공동체의 산물이며 공동체적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세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상기시킵니다. 세례는 ‘종교란 사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이단적인 주장에 맞서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인간’이라는 신성모독에 대항합니다.”

  114쪽, “교회는 세례를 통해 주님께서 만드시고 이끌어 가시는 공동체입니다.”

  115쪽,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물과 말씀’으로 태어난 기이한 집단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그들과 함께 가족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120쪽, “믿음은 주님의 은총을 받는 자격 혹은 조건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기 위해 인간이 치러야 하는 몫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125쪽, “아이를 양육할 부모, 교회, 환경이 부재한 상태에서 행하는 유아세례란 조롱거리일 뿐입니다. 세례는 선물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이 은총의 선물에는 선물을 전달할 도구가 필요합니다. 회심과 양육은 오랜 시간(평생)에 걸쳐 일어나며,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그들을 일생에 걸쳐 돕는 신앙 공동체가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하지 않는 ‘사적 세례’는 축하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생일잔치만큼이나 공허합니다.”

 

성공회 교회 공동체에 잘 속하셨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교우 여러분을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되도록 도와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교우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고 사십니까? 하느님의 일입니까? 사람의 일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말씀과 생각을 나누며 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한 대로 세상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세상과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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