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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봉헌 : 빛으로 살아감!

by 분당교회 2021. 1. 31.

2021년 1월 31일 설교 말씀

루가 2장 22절 ~ 40절

김장환 엘리야 신부

 

어느덧 1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입니다. 온 국민들의 협조, 특히 자영업자들의 피 눈물 나는 협조로 코로나가 잡혀가나 했는데, IM이라는 예수님 이름으로 장사하는 이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하고 있어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방역지침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기를 기다렸던 국민들과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실망과 고통이 크기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부자 되리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개발과 파괴를 일 삼아온 인류에게 ‘생태적 회심’이 절실함을 깨닫게 해주듯이, 코로나19는 성공주의 기복주의 성장주의라는 변질된 신앙으로 타락한 한국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 위에 바로 서도록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의식 가운데, 지난 주일부터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라는 책을 중심으로 세례의 은총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주보 2면에 핵심 내용을 ‘설교 듣기’로 게재하고 있는데, 설교를 들으시면서 빈 칸을 채워보시고, 예배 후에는 ‘생각해 보기’ 질문에 대해 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매주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되는 설교문도 다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나누기 전에, 지난주일 ‘설교 듣기’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1.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몇) 년간 준비 기간을 가졌다? 3년

2. 교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삶에서 자신을 돌이킨다는 것, 삶의 방식, 사사로운 습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무엇)을 따르는 것을 포함했다? 신앙의 규칙

3. 세례 준비자들은 주일 감사성찬예배에서 (무엇)에는 참여할 수 있었지만, (무엇)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말씀의 전례 / 성찬의 전례

4. 고대 로마 세계에서는 더러운 것을 씻어낼 때 (무엇)을 사용했다? 기름

5.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누가) 세례 받는 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교

 

우리의 삶의 태도와 행동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은 누구의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형성 되구요.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나를 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알 때 내가 나를 바로 알 수 있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만큼,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갑니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지거나, 혹 뭐 하나 잘난 게 있으면 교만해 집니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은 대부분 부모님입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좀 소홀하기도 하고 험한 말을 했었습니다. ‘나가 뒤져라, 빌어먹을 놈’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워낙 질곡 가운데 있었고 삶이 너무나 고단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희 형님이 그랬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사업에 큰 실패를 하시고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대한중석이라는 곳에 취직하셨는데, 주역 사주팔자 이런 걸 읽고 공부하시며 관상을 잘 보셨습니다. 아버님은 늘 당신의 사주팔자는 제상감이라고,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으시고 광부들과 어울려 술을 드셔서인지, 만년 계장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이 술 취하시면 큰 아들에게 ‘너는 대학 못 갈 관상이다.’고 하셨답니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공부를 아주 잘 하던 형님이 삼수까지 하고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냥 군대를 가버렸습니다. 

 

제대 후 포항제철에 들어가 직장 생활하던 형님은 예수님을 만나 곧 바로 사표를 내던지고 신학대학을 갔습니다. 물론 신학대학원도 나왔지요. 형님의 변화가 놀라왔던지 아버님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형님의 교회 개척을 위해 퇴사하신 후 뒤늦게 신학대학에 편입하시어 목사 안수까지 받으셨습니다. 

 

형님이 아주 가끔 아버님께 ‘아버지는 제가 대학을 못가는 관상이라고 했는데,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대학만이 아니라 대학원까지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형님이 아버지 말에 상처를 많았었나 봅니다. 

 

세상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꼭 제 아버님이 형님에게 하시던 말과 같습니다. ‘너는 형편없다’고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야단맞고, 연봉으로 비교당하고,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못합니다. 금 수저, 은수저, 흙 수저 비교하며, 흙 수저에서 난 인생이니 실패라고 합니다. 실제로 신분 상승의 길은 막혀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자식들이 더 잘 출세하는 계급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도 당신은 원초적으로 결함이 있고 죄인이며 근원부터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이 벌레만도 못한 나 위하여 주 돌아가셨네.’ 물론 대속의 은총이 너무 고마워 부르는 찬양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저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보실까요?

 

성서통독 365를 하며 얼마 전 민수기를 읽었습니다. 13장에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12부족을 대표하는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이렇게 보고합니다. “우리가 정탐하고 온 땅에 들어가 살려다가는 도리어 잡혀 먹힐 것이다. 거기에는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옛 생각대로 자신을 바라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 메뚜기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깊은 차별과 냉혹한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츌애굽 광야의 여정은 회개를 위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수많은 도우심을 경험했지만 끝내 회개하지 못한 출애굽 1세대는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다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회개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노예의식으로 살던 옛 사람은 죽어야 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런 세상이 주는 소리와는 다른 노래를 불러줍니다. 베드로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말씀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온 세상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있으나 마나 한 존재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한 가운데서 용감하고 힘차게 외칩니다.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사도 바울로도 에페소서 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 작품 – 포이에마, MASTER 하느님의 걸작품!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자신에게 선포해 봅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에게 세례를 줄 때, 교회는 이 의미를 강조하려고 상징적으로 기름을 발라 줍니다. 저희 성공회 예식에서도 세례성사 때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기름을 바릅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세상을 섬길 특별한 사람들을 임명할 때, 기름을 발랐습니다. 이들이 바로 왕, 제사장, 예언자입니다.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시편 23: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버전입니다. 

 

사도행전 10장38절에서 예수님은 거룩하신 성부께서 성령과 권능으로 기름 부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루가는 그의 복음서 4장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에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 바로 그 분이라고,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기름 부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루가 4:18-19,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 예언자,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처럼 기름 부음을 받고, 제사장 예언자 왕이라는 세 가지 활동을 하며 살도록 임명받은 자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는 그리스도인를 세상을 향한 사제로 서품하는,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활동을 위임받아 하게 됨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 활동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고자 교회는 초를 켜서 세례 받은 이에게 전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 빛을 발하십시오.”

 

오늘 예배를 시작하며 양초축복식을 했습니다.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의 공현을 마감하는 ‘주의 봉헌일’로 지킵니다. 마리아가 산후조리 40일을 마치고 정결례를 드린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되셨습니다. 첫 아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스라엘 유법에 따라 예수님도 성전에 봉헌되신 것이죠.  이렇게 성전에 봉헌되어진 예수님은 장성하여 공생애와 십자가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봉헌을 완성하셨습니다. 

 

주의 봉헌일은 주요축일이어서 주일로 당겨서 지키는데, 전통적으로 양초축복식을 합니다. 오늘 축복한 양초는 교회의 전례와 가정기도에 사용됩니다. 양초는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면서, 공간과 시간을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빛은 어떻게 발생합니까? 물리학적으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떨어질 때 에너지가 발생하고 빛이 납니다. 양초는 자기를 태워 빛을 발합니다. 자기희생입니다. 사랑은 자기 비하, 자기제한, 희생과 헌신입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줘야 빛이 납니다. 이를 봉헌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는 양초를 보면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드릴 때 누리게 되는 하느님의 나라의 평화가 봉헌의 신비일 것입니다. 

 

실제 하느님을 위하여 생명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성인들은 대부분 생명을 바치신 순교자들입니다. 우리는 생명처럼 여겨지는 것을 봉헌함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명처럼 여기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생명처럼 여기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재물 아닐까요? 시간이 생명입니다. 그 시간을 바쳐서 얻어낸 결과물이 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주의봉헌일에, 교우들이 제출한 봉헌서약서를 축복하는 순서를 갖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교회와 선교를 위해서 힘껏 봉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맘몬을 이용하여 사람을 노예화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드리는 봉헌은 내가 하느님의 청지기임을 드러내고 사탄을 이기는 믿음의 확증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을 선교를 위한 사랑의 도구로 부리는 사람이지, 돈에 휘둘리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속삭여 옵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구원을 성취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러분이 왕이신 하느님의 자녀, 왕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주고자 세례를 줍니다.  

 

엘리자베스를 여왕으로 만든 것은 대관식이 아닙니다. 그가 왕족이기에 대관식을 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하느님의 자녀, 왕족이기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소유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포이에마,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 왕으로 예언자로 제사장으로 빛을 발하십시오! 

작년 우리 교회 표어를 함께 외치며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우리는 세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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