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세례는 공적인 삶으로 시작!

by 푸드라이터 2021. 1. 10.

 

2021년 1월 10일 설교 말씀

마르 1장 4절 ~ 11절

김장환 엘리야 신부

 

 

코로나19에 폭설과 강추위, 유난히 힘든 겨울입니다. 교우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우리 모두의, 특별히 가난한 이웃들의 안녕을 간절히 기도드리게 됩니다.. 

 

작년 여름의 긴 장마나 이번 겨울의 강추위 모두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며, 지구 생명의 회복과 보존에 헌신합니다.”라는 성공회선교정신 다섯 번째 지표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하느님이 주신 사명인지 새삼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의세례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공현대축일을 지냈는데 며칠 만에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을 일찍 여의고 가정을 책임지며 목수로 노동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역사의 시대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응당 품어야 하는 고민이고 기도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지 않았습니다. 황제 숭배라는 시민 제의를  따르고 세금을 잘 내고 제국의 질서를 지킨다면, 식민지 민족의 종교를 허용해 주며 자치정부를 세워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라는 자치 권력 아래 열심히 성전 제사를 드리며,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은 유일한 길이라고 배웠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권력자들은 희생 제물로 쓰이는 동물을 길러 판매하는 상인들과 성전세를 내는 동전으로 바꿔주는 환전상과 카르텔을 형성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때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회개와 그 표지로 받는 물세례가 죄 사함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기존의 성전체제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세례는 제사와는 달리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매개물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존의 성전체제에 불만이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 5절입니다. “그 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스라엘에서 물세례는 이방민족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던 예식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믿는 유다인들에게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모독이었고 성전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종교체제를 거스르는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물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시던 예수님이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요한이 전개한 반성전 회개운동을 지지하고 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반성전 저항 운동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에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권력과 체제에 저항하는 예언자의 영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회 선교 정신 4번째 표지로 들어와 있습니다.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고 모든 폭력을 반대한다.”

 

이제 세례자 요한 이후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광야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닌 회개의 물세례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야일지라도 하느님하고만 홀로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이 성소입니다. 물세례를 받아도 세속을 쫓는 이방인의 삶에서 하느님 뜻대로 살겠다는 진정한 회개가 있다면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에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합니다. 상황이 변하면 얼마든지 예배의 형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도 유다-로마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회당 중심의 예배로 전환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성당의 현장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인터넷 영상 예배로 변화한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이 모든 변화 가운데 변하지 않아야 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나눈 대화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 4:21, 23-24, 21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23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성전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체와 보혈을 영하는 예배가 우리를 예배자로 서도록 도와줍니다. 이 성전에서 교우 여러분과 함께 감사성찬예배를 드리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그렇지만, 영상예배를 드릴 지라도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린다면,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어디서 어떤 형태의 예배를 드려도 하느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1절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1절은 시편 2장 7절과 이사야 42장 1절이 인용된 말씀입니다. 시편 2편 7절,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칙령을 들어라. ‘너는 내 아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노래입니다.

 

이사야 42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펼쳐가는 하느님의 종을 묘사합니다. 

 

살펴본 대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은 예수님이 섬기는 왕(Servant King)이면서 통치하는 종(Sovereign Servant)인 메시아라는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 자신의 신적 권위를 실제적으로 드러내는 공현이었습니다. 성서는 지난 수요일 공현대축일, 그리고 오늘 주의 세례일을 통해 예수님만이 구세주이심을 증언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물세례를 기점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도 예수님에게 하신 말씀을 주십니다. 

 

이는 우리도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선교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공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는 단지 예배 중에 갖는 의식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을 향한 공적인 삶을 시작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이토록 중요한 세례를 너무 소홀하게 여겨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두 주 후인 1월 24일부터 10주간 매주일, 비아출판사에서 발간한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세례의 의미를 깊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일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자,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공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의 Empowerment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일을 위하여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 예언자 제사장 왕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섬기는 종에게 능력을 줌으로써 그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공생애로 부름 받은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고자 서울교구는 2021년 표어로 ‘친교의 신앙으로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로 정했습니다. 우리 분당교회는 ”환대의 영성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복음공동체“로 정했습니다. 친교의 신앙, 환대의 영성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에페소 교인들에게 ‘당신들이 신도가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요한의 물세례 밖에 받지 못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안수 받으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선교 공동체로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입니다. 오늘 1독서를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물 위를 휘돌고 있던 하느님의 기운, 성령이 역사하시어 빛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이 창조의 영으로 충만할 때,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명령합니다. “성령을 가득히 받으십시오.”(에페 5:18) 

 

성령님이 가장 강력하게 운행하시는 시간이 감사성찬예배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릴 때 성령으로 충만해 집니다. 

 

여러분 모두,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심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우리 분당교회가 친교의 상통을 이루어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로 세워지고, 환대의 영성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202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