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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by 분당교회 2021. 1. 24.

2021년 1월 24일 설교 말씀

마르 1장 14절 ~ 20절

김장환 엘리야 신부

 

회개 :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

세례 : 회개의 확증과 새로운 출발!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1장)

 

여전히 코로나19 방역지침이 2.5단계이지만, 대면예배를 단위 면적의 10%까지 허용한다는 지침이 있어, 오늘부터 지역별로 참석하는 대면예배와 영상예배를 병행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었던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니 참 좋습니다. 참석하신 교우 여러분도 좋으시지요? 영상예배 드리시는 교우들은 좀 참아 주세요.

 

교회 안에서 제기되는 여러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사람이 바뀌나요?” 교회 신자 리더들에게 상처를 입은 목회자들은 사람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을 살고 계시는지요?

 

이 질문을 품고 오늘 1독서 요나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4장 밖에 안 되니 오늘 중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가 하늘에 사무쳐 심판을 받게 될 터이니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심판을 피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회개를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은 들은 요나는 하느님 말씀대로 하고 싶지 않아, 배를 타고 다르싯으로 도망갑니다. 요나가 불순종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니느웨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유다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망했으면 하는 적국의 수도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로 치면, 일본의 도쿄나 북한의 평양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맞아 난파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풍랑이 자기 때문임을 밝혀지자 요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요나가 던져지자 바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요나는 큰 바다 물고기에 삼켜져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요나가 회개하니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 내어 살게 되었습니다.

 

죽다 살아난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흘이나 걸어야 할 만큼 큰 도시에서 단지 하루 걸으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고 외쳤는데,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것입니다.

 

오늘 1독서 요나3:5,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다.”

 

니느웨 임금도 어의를 굵은 베 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며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3:8-9, “8 사람뿐 아니라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 옷을 입혀라. 그리고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남을 못 살게 굴던 나쁜 행실은 모두 버려라. 9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멸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실지 아느냐?"

 

그 결과 니느웨는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요나3:10,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재앙을 거두십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구원을 얻습니다.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낍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나서를 보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반응하면, 니느웨 사람들처럼,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삶의 변화, 회개가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교회를 오래 다녀도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 없이 교회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반응이 눈에 들어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 받으니까 요나는 화가 잔뜩 나서 하느님께 퉁명스럽게 기도합니다. 4:2,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회개하기엔 선수이신 하느님, 요나는 이토록 좋으신 사랑의 하느님을 알았기에, 큰 고기에 먹혀 죽기 직전 회개하함으로 구원받은 요나가, 니느웨가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보고는 화를 냅니다. 여전히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는 요나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요나를 타이르시지만, 요나는 시내를 빠져나가 니느웨가 내려 보이는 곳에 초막을 치고 그늘에 앉습니다. 니느웨가 어찌되는지 보려는 심산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는 요나의 마음이 보입니다.

 

다음날 하느님께서는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죽게 하시고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투덜거렸습니다.

 

이에 하느님은 거듭 요나를 타이르십니다. 요나 4:10-11, 10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11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니느웨의 수많은 생명들이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심은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유대인이 변화되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회개를 바라셨던 것이죠.

 

요나는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사고에 갇혀 니느웨를 원수로 여기며,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을 대표합니다.

 

유대인에게 회개는 민족주의라는 인식이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를 보면서 한 사람의 변화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변화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도록, 거듭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 사람도 하느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회개가 있기 위해서는, 가치관 세계관 등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그 내면에 심겨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공적인 검증 과정인 세례를 엄격하게 진행했습니다. 여기부터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1장의 내용을 나눕니다.

 

로마제국이 초대교회를 박해하고 있어 살아남기도 급급한 처지였지만, 교회는 이교 환경에 맞서 신중하게 자신들을 구별했습니다. 황제 숭배나 이교도의 타락한 문화에 깊게 연루된 우상숭배자, 배우, 서커스 단원, 포주, 검투사 성매매 종사자, 점성술사, 마술사의 입교는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군인과 고위 관료 역시 이교 국가에 복종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이교 신화나 이교 이야기들의 애호가로 악명이 높았던 예술가와 학자들도 잘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반윤리적인 이방 세계와 단호히 절연해야 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결단하지 않으면 아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입문한 세례 준비자들을 3년간 가르쳤고, 이들은 예배도 말씀의 전례에만 참석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의 전례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3년의 준비 기간은 우선 윤리적인 덕목을 훈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교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회심, 삶의 방식, 사사로운 습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신앙의 규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년의 과정을 보내고 나면 과부들을 공경했는지, 병든 이들을 찾아 갔는지, 선한 일을 했는지를 검증합니다. 이 검증을 통과해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자 -선발된 예비 신자가 됩니다.

 

세례 준비자가 주로 도덕적인 삶을 훈련하고 익혔다면, 예비 신자는 부활절을 몇 주 앞두고 복음에 관해 배웠습니다. 사도신경을 배우고 금식을 하고 불침번을 서고, 철야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부활절 새벽에 드리는 부활절 예배 때 받을 세례를 위해서, 성주간 동안 매일같이 몸을 씻으며 세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성금요일 밤과 성토요일에는 금식하고 부활 밤에는 철야를 하며 세례식에 임했습니다.

 

침례탕 앞으로 인도받은 예비 신자에게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들고 물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전 삶에 속한 것은 어떤 것도 간직해서는 안됩니다.”

 

예비 신자는 포기 선언을 합니다. “사탄아, 나는 너를 버린다. 너를 섬기는 종들을, 네가 벌이는 모든 일을 거부한다.”

 

이에 장로들이 기름을 부르며 축마기도를 합니다. “모든 악한 영은 물러가라.”

물과 기름은 씻기고 정화시키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신앙을 확인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지를 묻습니다.

문답이 끝나면 물에 완전히 잠깁니다.

 

예비 신자가 물에서 나오면 주교는 감사의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주교는 안수기도를 하고 3번에 걸쳐 감사의 기름을 붓습니다.

새신자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성호를 그어 성령의 인장을 찍고 회중에게 소개합니다.

 

이제 세례 받은 이들은 신자들과 함께 중보기도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고 성찬식에 참여하여 성도의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이렇듯 세례는 교회가 이교의 세속적인 삶을 살던 사람을, 3년이라는 긴 시간의 회개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변화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되는 오늘날의 교회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변화의 첫걸음은 세례가 무엇이며 세례를 통해서 무엇이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생각하던 세례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회심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삶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했으며 철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몇 년 교육을 받았다고요? 3년.

그리고도 검증을 받아야만 세례준비자 자격을 얻었습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거듭나야 하고 재창조되어야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하며 변화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2.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단지 예배 중간에 끼어 넣는 의례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로 회심과 성장이라는 긴 과정의 정점이자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이라는 또 다른 긴 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3. 세례는 교회라는 하느님의 가족의 식구가 되는 것을 뜻했습니다.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없이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 공동체 밖에 있는 신앙도 없습니다.

 

4. 그리스도교 신앙에 들어서게 하는 일, 이에 수반되어 진행되는 세례는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세례를 주고 가르쳐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그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에 걸 맞는 삶을 살도록 사람들을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활동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례란 머리로, 몸으로, 가슴으로 주님이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활동, 주님의 낯설지만 영광스러운 일(사람들을 부르고, 가르치고, 깨끗하게 만들고, 축복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오늘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은 “회개하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선포를 듣고,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부르심을 받자,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란 어떤 사람일까요?

 

교회적인 표현으로 하는 예수님의 인격이 드러나는 사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게 하고자, 초대교회는 요나를 타이르셨던 하느님의 마음으로 철저하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삶을 검증했던 것입니다.

 

회개와 세례는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되기 위한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아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말씀으로 훈련받고 서로 서로가 삶의 모범을 보이고 권면의 말씀을 나누며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회개의 과정입니다.

 

365말씀 통독에 참여함으로,

온라인을 통해 또래들과 교제함으로,

평일에 드리는 기도회에 참여함으로,

일대일양육을 받음으로,

이제 곧 시작되는 사순절 동안 매일기도와 묵상으로,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참되게 주일감사성찬예배를 드림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여러분 모두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2021년 새해,

여전히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와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회개와 세례’라는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는 성공회 분당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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