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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온전한 치유 – 택함 받은 자로 존재가 변화되는 것!

by 분당교회 2021. 2. 7.

2021년 2월 7일 설교 말씀

마르 1장 29절 ~ 39절

김장환 엘리야 신부

 

어느덧 2021년도 한 달을 보내고 2월 첫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설 명절이 있네요. 명절이면 좁은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윳놀이도 하며 재밌게 지내는 풍경이 떠오르는데,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유지되고 있어, 작년 추석보다도 더 조용하게 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감염력이 높은 바이러스이고 무증상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설과 추석에 제사를 대신하는 추모성찬예배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추모성찬예배에 오시는 교우들이 20여분 정도여서 방역수칙을 지키는 가운데, 대면예배로 드립니다. 오시기 힘든 교우들은 기도서 806쪽에 있는 추도예식문으로 가정에서 예배드리시고 별세자 명단을 알려주시면 추모성찬예배 중에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지난주일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2장의 핵심 질문을 통해 내용을 복습합니다.

  1. 고대 시대에 “성별 혹은 지명”을 상징한 것은 무엇? 기름  /  구약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일을 위해 기름 부어 구별했던 사람들은? 왕, 제사장, 예언자
  2.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립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무엇이며 그리스어로는 무엇인가요? 메시아, 그리스도
  3. 초대교회에서는 새롭게 세례 받는 이들과 함께 초를 켜며 주교가 했던 말은?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 빛을 발하십시오.”
  4. 세례 받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확정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의 신앙을 확증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교회, 주 예수 그리스도

 

이제 오늘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독서들을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하느님은 치료하고 회복하시는 하느님 이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147:3,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고 그 마을의 모든 병자를 고쳐주신 복음서의 이야기

 

하느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야훼 샬롬! 야훼 닛시, 야훼 로이 등. 이름은 그 존재의 속성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인데, 치료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게 하는 이름이 “야훼 라파”입니다. 출애 15:26, "너 이스라엘이 너희 하느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그가 보기에 바르게 살며 그 명령을 귀에 담아 모든 규칙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야훼,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 

 

치유는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복음서에는 치유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질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묵시록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중간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과 육체의 병에 걸려 고통스럽습니다.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치료하실까요? 

 

엊그제 금요일 1독서 말씀이 기억납니다. 히브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느님은 오늘날에도 치유하심을 믿습니다.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믿기에 우리 성공회 기도서에 치유기도예식인 조병성사가 있습니다. 저도 중 3때 아픈 무릎을 치유 받고 예수님을 확고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치료를 초월적인 기적에만 의존하는 것은 인류의 진보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들도 있지만, 인류는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 병의 원인을 밝히고 약을 개발하여 극복해 오고 있습니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 명이나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 만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인내하면, 올 성탄절에는 온 교우들이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질병의 많은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건강한 식습관, 운동, 마음관리 등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병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질병을 유발시키는 사회적인 원인을 없애나가야 하는 것이죠. 

 

이윤보다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이 사회에 확산되어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을 없애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생태적 회개를 통한 친환경적인 삶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시대의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선교 과제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마음과 몸에 병을 얻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치료하시는 손길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치료하시는 하느님께 아뢰는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설교 후에 간절한 마음으로 주보 2면에 있는 ‘병자들을 위한 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하느님께서 치유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아픈 것을 몰라라 하는 부모는 없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치유가 하느님 나라 임재의 표징이듯이, 우리가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의 변화가, 치유의 목적이고 구원의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베드로 장모의 치유 사건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회당에서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하신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시몬의 장모가 아파 누워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알려줬습니다.

 

이것을 중보라고 합니다. 우리도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사랑하기에 치료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중보 합니다. “야훼 라파 하느님,  송주한 어거스틴에게 치유의 빛을 비춰 주소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린 이유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결혼하여 살면서 아내를 향한 장모님의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동딸이 가난한 사제와 결혼해서 사니 보살펴주시는 장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요. 시몬의 장모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사위 시몬이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더니,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출가하여 예수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즉시 딸집으로 달려왔더니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 길래 잘 살던 내 딸 가정에 풍파를 일으켜? 

사위 시몬은 정신이 어떻게 됐길래 집을 나가 돌아다녀? 

내 딸과 손주들은 이제 뭘 먹고 사나?‘ 

이런 근심 걱정에 시몬의 장모는 화병이 나 누워있게 된 것입니다.

 

질병은 대부분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근심이 스트레스가 되어 뼈를 녹인다고 합니다. 마음의 질병은 대부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 근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등을 돌린 채 화병으로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 곁으로 가셨습니다. 장모 곁에 가셔서 무슨 말을 하셨을까요? 

 

“어머니, 사위가 생업을 버리고 내 제자가 되어서 속상하시죠? 

그런데 어머니, 사위 시몬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하느님께서 사도로 택하신 거에요.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거에요. 하느님께서 이 가정을 택하셨습니다. 어머님도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실 수 있어요. 자 일어나보세요.”

 

예수님께서 장모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장모도 예수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손을 잡는다는 말은 뜻을 함께 한다는 연대를 의미합니다. 장모가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타오르는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늙은 여자의 인생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을 성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르 1:31, “예수께서 그 부인 곁으로 가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여기서 “시중들었다”는 말의 원어는 “디에코네이”로 “봉사, 섬김”이라는 뜻의 디아코니아라는 단어의 미완료동사입니다. 장모의 섬김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선교 동역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유의 목적은 하느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존재임을 알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혹 육체의 치유를 받지 않아도, 존재가 변화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치유인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그 예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12장을 읽어드립니다. 7-10, “7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8 나는 그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3장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례란 하느님께서, 나를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자, 나를 택하셨음을 알게 하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세기 유럽 계몽주의는 삶에서 신비의 영역을 제거하려 애썼습니다. 그 영향 아래 현대인들은 일상은 물론이고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에서조차 주님보다는 우리 인간에 방점을 찍습니다. 

 

내가 구원에 합당한 일을 해야만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져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주님보다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주님에게서 나로 신앙의 초점이 옮겨져 버렸다.

 

계몽주의가 이성만을 강조하듯 경건주의는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그들에게 세례란 ‘바깥으로 드러나는, 눈에 보이는 징표’입니다. 그렇기에 설령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내면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세례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경건주의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세례의 작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고 사랑하셨고 당신의 나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름으로 인해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교회는 그분의 부름을 선포합니다. 세례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선포하며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체험합니다. 

 

세례로 선포된 정체성을 이루어갈 책임은 세례를 받는 이보다 세례를 베푸는 교회와 주님께 더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례 받는 신자를 제자로 삼을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하게 하는 종교가 아니며 구원을 빨리 얻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언제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사람이 오늘 서신을 기록한 사도 바울로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는 육체의 질병이 치유 받는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나를 택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알고 그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고전 9:17,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에게 일어난 온전한 치유의 사건이, 사도 바울로에게 임한 구원의 역사가 나의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건이 되고, 우리 가족과 공동체의 사건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주보 2면에 있는 “병자를 위한 연도”를 드리겠습니다.

 

✝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성부 하느님,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이하 반복)

✝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성자 하느님, 

✝ 우리의 몸을 주님의 성전으로 삼으시는 성령 하느님, 

✝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

 

✝ 믿음으로 주님께 나오는 이들을 치료하시며, 제자들을 보내시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병든 이에게 치유의 은혜를 주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여, 

◉ 주님의 백성을 온전케 하소서. (이하 같은 후렴)

✝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여,

✝ 우리를 치료하시며, 영생의 보증이 되시는 거룩하신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여, 

 

✝ 주여, 비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의 은총을 내리사, 병든 이에게 건강을 주시고 상처와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인내와 용기와 믿음을 더하소서.

◉ 주님의 백성을 치료하소서. (이하 같은 후렴)

✝ 병든 이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어 두려움 없는 신뢰를 허락하시고, 수술에 임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강한 손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 오랜 질병으로 지칠 때에 힘을 더하시고, 소망으로 인도하시며, 오랜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성령이 주시는 치유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 간호할 사람도 없이 외로움과 낙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하소서.

✝ 정신적인 고통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정신의 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허락하시며,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용기와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바른 지식과 인내심을 풍성히 내리사, 병든 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을 당신의 선하신 영으로 인도하소서.

 

✝ 기도합시다. 모든 생명과 건강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이 병든 세상에 내려오시어 주님의 자녀 된 우리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비오니, 환자와 치료하는 이들에게 강복하시고, 모든 환자가 육신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여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특별히 이 땅과 전 세계에 팽배한 코로나-19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 수고하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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