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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하느님의 구원 목적에 사로잡혀 (11일차)

by 분당교회 2020. 5. 31.

5월 31일 (일)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회 아래 기도문으로 기도하며, 아래 묵상집을 읽고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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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라는 놀라운 임무에 관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성찰해 본 것을 종합하면 무엇이 될까요? ‘전도가 하느님의 일’이라는 말을 가장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일에 사로잡혀 있지만, 종국에 그것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복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복된 소식이란, 하느님께서 스스로 성취하신 것이며,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 당신께서 일어나게 하신 일입니다. 바울로는 이 복음의 ‘종’이었을 뿐입니다. 바울로가 이 정도라면, 그 밖의 우리들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바울로의 어께를 무겁게 하던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교회들이 지고 있으며, 공적 모임에서나 사적 대화들에서나 복음전도자로서 재능과 소명을 받은 이들이 지고 있는 책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은 설교들 중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인도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에는 여러 소명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저의 반세기를 돌아보면 저는 공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일선에 서 있기 보다는 교사가 되도록 부름 받고 그 임무에 적합하게 되어왔습니다. 때로는 저도 전도 임무를 직접 맡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온 교회가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사업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자를 직접 대면하여 기도하면서 그들이 신앙으로 나아오도록 돕는 일일지, 아름다움, 자비로운 정의, 또는 변론과 같은 보조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지, 하느님 백성이면 누구나 참여하는 기도 생활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든지, 방식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알리고 사람들이 그분을 주와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지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승천일에서 오순절로의 우리 여정을 마감하면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복음이 엄밀하게 ‘새로운 창조’에 연관되어 있기에, 때로는 극단적인, 항상 결정적인 변모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개인에게 오셔서 새로운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만드시는 데에 예리한 촛점을 맞추신다고 복음은 선언합니다. 복음의 임무는, 인류가 길을 벗어나 우상을 숭배한 이래 창조주 하느님께서 착수하신 재인간화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셋으로 요약하며 맺으려 합니다.

 

첫째,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일어서신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발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자신의 죽음 안에서 악의 권세를 예수께서 물리치셨고, 부활 안에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창조에 착수하셨다는 소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주님’이라는 단어의 뜻과 관련된 것으로, 예수께서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도덕적 배경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을 부르시어, 당신의 전 세계적인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사랑과 용서로 부르신다는 사실이 복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환영은 변혁적입니다. 그들을 신앙으로 나아오게 이끄시는 성령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시어 완수하실 것입니다.

 

셋째, 그렇게 사람들이 신앙으로 나아오면 그들은 하느님과 동행하며 ‘바르게’put right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바르게’putting-right하는 하느님의 프로젝트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출하셨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출하고 회복시키심으로써 우리가 당신의 새 창조의 살아있는 작은 모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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