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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아름다움 (8일차)

by 분당교회 2020. 5. 28.

5월 28일 (목)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회 아래 기도문으로 기도하며, 아래 묵상집을 읽고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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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 여섯 명은 실내악 연주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인 홀을 사용할 수 없어서 우리는 누군가의 거실에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카펫과 커튼과 가구가 소리를 흡수하여,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동작을 보면서 하고 있었는데, 결국 홀을 쓸 수 있게 되어 음악을 실제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진지하게 전도를 해 본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상황은 복음에서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해 말할 때, 모든 창조를 회복하겠다는 성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하여, 우리 죄 때문에 악을 물리치러 죽으신 성자 하느님에 대하여, 생명의 물처럼 우리 위에 부어져 내리는 성령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가 어디 있고 누구인지에 대한 음향학(소리가 방 안에서 어떻게 울리는가에 대한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메시지만 말하려 한다면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놀랍도록 강력한 예수 이야기의 메시지 중 일부만 얻겠지만, 진짜 중요한 요점을 놓치게 됩니다. 그들은 반향을 온전히 감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 음악의 화성들이 우리 일상의 폭신한 가구들 속에서 소실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 전체가 회복되고, 부서짐이 아름다움으로, 훼손이 경축으로 전환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하면서, 미술과 음악과 장식과 좋은 음식과 즐거운 축제로 창조의 아름다움을 경축하는 데에 응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 번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몇 몇 그리스도교 운동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데 있어, 음악의 스타일과 질에 대하여, 교회 예배 공간을 꾸미는 데 있어,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 건성인 것은 참으로 기괴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곳이든 어떤 장소든 하느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한 요점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진지한 영적 문제를 전문기술로 치장하는 잘못을 범할 위험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동일한, 아니 더 심한 위험이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복음 메시지를 울리게 할 ‘공명실’echo-chambers(소리의 공명을 일으킬 공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무심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면, 우리가 아무리 예수와 성령과 창조주 하느님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바다와 숲이 즐거워 노래하게 하기 위해, 복음 계획에 착수하셨다 설명한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물론, 아름다움은 수수께끼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생명에 관한 무언가 가장 깊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일몰은 사라져가고, 아기의 달콤한 미소도 점점 심각해지거나 때로는 음험해지며, 음악도 언젠간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은 모두 우리의 어둠에 새 빛을 주러 오시는 하느님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예술은 진리를 온전히 체현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가리킬 수는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복음을 설교하는 건물이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예배를 공명할 뿐 아니라 복음과 신학적으로 잘 공명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려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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