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나눔

예수의 복음: 하느님 나라(6일차)

by 분당교회 2020. 5. 26.

5월 26일 (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회 아래 기도문으로 기도하며, 아래 묵상집을 읽고 묵상합니다.

012345

나자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메시지의 핵심에 대해서도 명백합니다. 처음부터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나라가 예수의 ‘복음’, 그 ‘복된 소식’의 중심이라는 데 대하여, 번번이 두 가지 오해를 합니다. 오늘날 여러 곳에서, 실지로 많은 교회들에서, ‘하느님 나라’는 ‘죽은 다음에 하늘에 가는’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복된 소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겠지요. 예수는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제 내가 천국에 가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와 전혀 다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죽음 이후에 보살피시고, 마침내 새로운 창조 안에서 새로운 몸의 생활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것을 말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예언자들이 상상했던 바, 온 세상이 멈출 때가 온다는 경고도 아닙니다. 이것은 고대의 그림언어 picture-language에 대한 근대적 오해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는, 그가 기도를 통해 실지로 가르쳤듯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께서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의 요점은, 바울로가 전한 복음과 예수의 복음의 명확한 요점은 사람들이 하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오신다는 것, 하느님께서 늘 의도하신대로, 새로운 창조 안에서 인간들과 함께 사신다는 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왕이 되시는 데에 관하여, 예수는 일반적인 형태의 혁명 운동, 즉 지인들을 비밀리에 모든 다음 군사적 정권 획득을 시작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예수의 가르침 중 많은 것은, ‘복된 소식’에 관하여 그의 전개는 ‘비유’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해 ‘예’라고 하고, 당대에서 도래하길 기대하던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명백하게 ‘아니오’라고 하는 숨겨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아무도 몰래 자라나는 씨앗, 또는 탕자를 반기는 아버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땅치 않은 손님들로 가득 찬 결혼 잔치, 왕권을 받으러 멀리 갔다 돌아오는 고상한 사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바꾸려 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위험할 때, 이러한 그림언어 picture-language를 사용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왕이시라고 함으로써(첫 단계 혁명), 그리고 그것을 지금까지 듣지 못한 방식으로 제시하심으로(둘째 단계 혁명), 예수는 이중 혁명가 double revolutionary입니다. 그리고 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방식 ’unheard-of manner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복음’은, 우리가 방금 연구한, 바울로가 전한 복음 메시지를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이 둘 모두, 예수와 그의 운명(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고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셨고, 무엇을 이루셨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둘 모두,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께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책임지고 게시다는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이 둘 모두 왕이 이루시는 구원에 의해 삶을 변화시키도록 사람을 가리지 않고 초청하시는, 또 한편,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구출 받은 구출자로서 원대한 프로젝트의 조력자가 되도록 초청하시는 부르심입니다. 복음이 그 내면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