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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깊은 묵상으로, 바른 기도로 변화의 은총을 누리자!

by 분당교회 2019. 10. 20.

2019년 10월 20일 설교문

(루가 18:1-8) 

김장환 엘리야 사제 

 

깊은 묵상으로, 바른 기도로 변화의 은총을 누리자!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총연맹, 소위 한기총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그들의 권력욕과 명예욕을 채우고자 대표 자리를 돌아가며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빤스 목사로 알려진 분이 대표가 되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분의 어록들이 있는데, 지난 주중에는 예장 대신복원 총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든 교회는 10월 25일 광화문 광장에서 하는 구국기도회에 나와야 한다. 나오지 않는 자들은 내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

 

요한묵시록을 보면,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실 때, 생명책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불바다에 던져질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묵시록을 믿는다고 해도, 생명책이 오르고 못 오르고는 예수님이 결정하시는 사항인데, 주의 종이라는 목사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말합니다. 

 

명성교회 세습, 사랑의교회 불법 건축, 한기총 등 한국교회는 소위 주의 종들이라는 사람들이 다 망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조롱이 되고 개독교 소리를 듣게 하는 원흉이 목회자들입니다. 사제로서 창피하고 죄송합니다. ‘진짜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목사의 설교에 교인들은 ‘아멘’합니다. 저의 어머니 권사님도 그랬습니다. 제가 성공회로 옮겼더니 “너는 왜 이단에 빠졌냐?”고 걱정하셨습니다. 누가 그러더냐고 여쭈니 “목사님이 천주교는 이단이라고, 성공회는 천주교란 비슷하니 이단 아니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분들의 가르침으로 보면, 오늘 신자영접식하시는 새가족들은 모두 이단에 빠진 분들이 됩니다.

 

한국기독교가 이 지경에 된 것에는 목회자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지만, 그런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교인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신자들이 성서를 제대로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에게 불순종하면 벌 받는다’는 말에 쇄뇌되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한기총 대표 목사의 별명이 빤스목사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입에 담기 너무 민망해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신자들이 주체적으로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오늘 서신에 ‘모든 성경이 하느님의 계시로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저자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이 내 안에 사시며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복음을 온전히 살고자 했던 수도자들이 성서를 읽고 묵상했던 방법이 전해져 온 것이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침묵기도학교에 오시면 배우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합니다. 금요성경공부에도 참여하고, 매달 한 권씩 오는 비아도서도 열심히 읽고, 교회독서모임에도 참가해야 합니다. 독서모임에서 읽는 도서가 어렵기도 하고 인원이 많아 보이는데, 그냥 와서 같이 읽고 대화하는 강독모임같은 것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하느님 나라 복음으로 살기 일대일 제자훈련’을 하실 수 있습니다. 신청하십시오!

 

진짜 성서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신은 그 중요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2디모 3:15-16,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교훈’이란 방향성입니다. 부산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는 말입니다.  ‘잘못을 책망함’은 그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허물을 고쳐주고’는 다시 경부고속도로로 올라타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올바르게 사는 훈련’이란 무사히 부산까지 잘 도착하도록 이끌어 주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지혜를 얻고 하느님의 일꾼이 되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꾼이란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신자,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 신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도록 합시다. 다시 한 번 읽어 드릴테니 예수님이 어떤 교훈을 주시고자 이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낭독) 어떤 교훈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는 이 말씀으로 ‘기도는 과부처럼 끈질기게 매달려야 응답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오래 전 두란노출판사에서 나온, 당시 유명했던 목사님이 내신 책에서 이런 기도를 ‘강청기도’라고 했습니다. 3절, “졸라댔다.” 7절, “밤낮 부르짖는데도”라는 표현때문이죠. 

 

그래서 한국교회는 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삼창하고 소리 내어 기도합니다. 통성기도라고 하지요. 얼마나 간절하면 부르짖으며 기도할까 이해도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부처럼 끈질기게 부르짖으면 다 응답받을까요? 불의한 사람이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도 응답될까요? 불의한 사람이 그렇게 기도해서 응답받았다면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하느님입니까? 

 

하느님은 귀 먹지 않으셨습니다. 마태오 6장 기도의 가르침을 보면, “하느님은 구하기도 전에 너희 필요를 다 아신다. 그러니 중언부언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바른 기도일까요? 침묵기도학교에 오시면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재판관이 고약하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으로는 ‘불의하다’고 번역했습니다. 과부는 그런 재판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억울하다’고 인정하시고 그 억울함을 들어주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과부의 호소가 올바른 것이라는 겁니다. 

 

원래 재판관은 본래 미슈파트, 사법적인 정의를 세우라고 하느님이 세우신 종입니다. 마침내 재판관이 과부의 호소를 듣고 그 정의를 이루어 줍니다. 재판관이 정의를 이루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죠. 

 

그럼 재판관이 정의를 행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과부가 끈질기게 호소해서 입니까? 아니면 과부의 호소가 올바른 것이었기 때문입니까? 

 

이사야 1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보아라. 내가 보지 아니하리라. 빌고 또 빌어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공동)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개역)

 

아무리 끈질기게 부르짖어도, 기도하는 사람이 올바르지 않고 그 내용이 바른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물론 불의한 세상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기도 합니다만,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재판관이 과부의 호소를 들어준 것은 과부의 호소가 정당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교훈은 끈질기게 부르짖으면 하느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 기도를 들으시는 정의로우신 분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고’, 개역 본으로는 ‘낙심하지 말고 하느님께 기도하라. 이것이 믿음이다.’라는 것입니다.

 

천고마비 결실의 가을이 깊어갑니다. 이 좋은 계절에, 하느님은 여러분을 더 깊은 영성의 세계로 초대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성서를 깊이 묵상하며 주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진리를 알아가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낙심치 않고 용기를 내어 주님만을 바라보는 기도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깊은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시면, 바로 그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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