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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거룩이란?

by 분당교회 2019. 8. 25.

2019년 8월 24일

김장환 엘리야 사제 설교 말씀

 

거룩이란?

 

예수님이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마침 거기에 18년 동안이나 허리가 굽어져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말씀하시고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개합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쳤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들이 거룩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세부 지침으로 만들어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이삭을 자르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요리도 못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안식일이 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모든 층에 서도록 미리 맞춰 놉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면서 자신들은 구별되었으니 거룩하다고 여겼습니다. 

 

회당장이 모였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안됩니다.”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도 유다인들이니 안식일 법을 잘 알 것이고 회당장이 제안한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장에 발언에 반박하십니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자기 소나 나귀의 고통에는 마음 아파하면서도,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몰라라 하는 그들의 몰인정을 지적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을 가르치던 예수님의 시선이 허리가 굽어 있는 여인에게 머물렀다고 합니다. 12절,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예수님은 지금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그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십니다. 사랑의 손으로 그들을 만져주십니다. 위로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억울하다 외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십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억울함을 들으시고 마침내 응답하시는 정의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시편의 기자처럼 하느님께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71:1-3, 1 야훼여, 당신께 피신합니다. 다시는 욕보는 일 없게 하소서. 2 당신의 정의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 주소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구해 주소서. 3 이 몸 의지할 바위 되시고 내 목숨 구원하는 성채 되소서. 나의 바위, 나의 성채는 당신이십니다. 

 

한국이 좋아하는 복음성가 톱 10에 드는 노래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라는 찬양이 있는데 가사가 이런 하느님의 모습을 잘 묘사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날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손길을 기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율법의 눈으로만 그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몇 주 전 복음, 강도만난 사람 이야기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들이 가서는 서로 만나면 ‘내가 오는 길에 강도만난 사람을  이런 일을 겪었는데 내가 말씀을 지키고자 피해왔다’고 자랑했을 겁니다.

 

성경 말씀이든, 어떤 가치관이든 그것이 절대화되면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조주의자,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농후합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절대화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특정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주신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쉼이 없는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십계명 중에 제 4계명으로 안식일 법을 주셨습니다. 

 

노예 노동에서의 해방, 가축과 객까지도 살리는 생명의 법으로 주신 겁니다. 출애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안식일을 가장 먼저 지키신 분은 하느님입니다. 6일 동안 창조를 마치시고 그 창조가 보시기에 좋아서 그것을 향유하시며 쉬신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아와의 범죄 이후로, 하느님이 보기에 좋았다고 감탄하신 피조세계가 깨져 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깨신 세상을 회복하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장애자를 회복시키시며 굶주린 자를 먹이시는 등,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짜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 주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5:17, “내 아버지가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계명을 지키는 것을 거룩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거룩의 지수가 높아지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술과 담배를 안하면...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기도 많이 하면... 등등으로 거룩의 기준을 삼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룩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로완 윌리암스는 ‘제자가 된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한 17:17-19,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개역개정)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에게 있어 거룩은 고통으로 가득 찬 인간들 사이로 뚫고 들어오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에게 거룩은 분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참여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장 어려운 곳으로 나가셨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장 어려운 곳으로 나가는 일이 거룩이다. 거룩한 사람은 고통 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일으켜 주고 지지해 준다.>

 

거룩은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거룩한 사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58:10-12, 10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오리라. 11 야훼가 너를 줄곧 인도하고 메마른 곳에서도 배불리며 뼈 마디마디에 힘을 주리라. 너는 물이 항상 흐르는 동산이요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줄기, 12 너의 아들들은 허물어진 옛 터전을 재건하고 오래오래 버려두었던 옛 터를 다시 세우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수축하는 자' '허물어진 집들을 수리하는 자'라고 불리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를 성도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성도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거룩입니다.  

 

이 한 주간 어떻게 거룩을 살아갈지 묵상하며 거룩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합시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역설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지면 거룩해질수록 

 점점 더 자신의 결핍을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주님의 긍휼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상적 인격체는 주님의 소명을 

 성취함에 따라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

 수도원으로 부름 받았거나 

 세상으로 부름 받았거나, 가정을 세우도록 부름 받았거나, 

 독신으로 머무르도록 부름 받았거나, 

 육체노동으로 부름 받았거나, 

 사목직으로 부름 받았거나, 

 집에 있도록 부름 받았거나, 

 세계를 돌아다니도록 부름 받았거나 

 그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예수처럼 되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 로드 드레허 (동방정교회, 문필가)

『The Benedict Option』 (<베네딕트 옵션>(IVP)로 역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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