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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믿음의 노래를 부르자!

by 분당교회 2019. 8. 11.

2019년 8월 11일 다해 연중 19주일

창세기 15:1-7, 히브리 11장, 루가 12:22-31

설교말씀 : 김장환 엘리야 사제 

 

지난 금요일부터 진행된 서울교구 주일학교 연합캠프가 오늘 주일예배로 끝납니다. 강사무엘 교우님이 실시간 올려주시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은혜롭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교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건강하신지요? 오늘이 말복입니다. 지난 목요일이 입추였구요. 그 날 단톡방에 올려드렸지만, 김용택 시인의 입추라는 시를 읽어드립니다.  

 

더위에 서로를 밀어내게 하던 여름도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서로의 품으로 파고들게 하는 계절이 곧 옵니다. 남은 여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이 글이 기억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이 무더위에 고통 받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쪽방촌과 고시원에 사시는 가난한 이웃들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뉴스를 보니 공항 활주로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은 55도 되는데 쉴 곳은 비행기 그늘 밖에 없더군요. 야외에서 노동하는 분들의 건강이 지켜지기를 기도합니다.

 

가까운 궁내동 톨게이트 위에는 무더위와 소음과 매연 속에서 한국도로공사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 중에 있습니다. 또 강남역 CCTV 중계소 철탑 위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님이 60일 넘게 농성 중에 있습니다. 이 시대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 무더위 속에서도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속히 하느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경색된 한일 관계가 회복되기들 기도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 8월 14일 저녁에는 광복절 기념 성찬예배로 드리고자 합니다. 여건이 허락되시는 분들은 오시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 독서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와 있는 단어와 내용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창세 15:6,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히브 11: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루가 12:28, 너희는 왜 그렇게도 믿음이 적으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주시겠느냐? 

 

1독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부터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 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지,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12:1,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12:4, “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여기서 믿음에 대한 단순한 공식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말씀+순종! 여기서 말씀이란 지금 여기에서 있는 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명령으로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따라야 하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과 소통하는 대화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 대화를 기도라고 합니다. 대화로서의 기도는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전제합니다. 하느님은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알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고향 아비 집을 떠나 하느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세워진 피라미드 질서의 제국을 떠나,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택함 받고 이렇게 교회 공동체를 이룬 목적도 동일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백성과 주권과 땅이 있어야 세워집니다. 오늘 1독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요소인 백성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미 출산능력이 없는 노인 아브라함입니다. 몸 종 엘리에젤을 상속자로 세울 참이었는데, 하느님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이런 뻥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습니다. 창세 15:6,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이 후 이집트의 종살이를 하는 400년 동안 하느님의 백성이 준비됩니다. 주권은 이집트에서 해방되고 시나이산에 이르러 하느님이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으면서 실현됩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 시나이산 계약입니다. 땅에 대한 약속은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을 점령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손님 셋이 아브라함을 찾아온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들을 아브라함이 환대합니다. 삼위일체주일에 살펴본 루블레프가 그린 이콘의 배경입니다. 이 때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10,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 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천막 문 어귀에서 이 말을 엿듣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오늘 2독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11:11, “그의 아내 사라도 이제 나이가 많은 여자인데다가 원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사라는 약속해 주신 분을 진실한 분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폐경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사라가 이삭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사라는 “약속해 주신 분을 진실한 분으로 믿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란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해서 순종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하느님이 진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약속한대로 행하시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루가 12:28, “너희는 왜 그렇게도 믿음이 적으냐?” 제자들이 약속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나 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지만, 먹고 입고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있었나 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의 특징은 걱정과 염려입니다. 22절, “너희는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29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하며 애쓰지 마라.”

 

이렇게 살게 되는 이유는 마음이 온통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성경 표현이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And do not set your heart on what you will eat or drink;’ 

 

먹고 입고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만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30절, “그런 것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For the pagan world runs after all such things. 이방 사람들, 불신자들은 runs after 한다. 쫒아간다. 쫓아가기 위해서는 그것만을 바라봅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는 온통 하느님이 아닌 것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외면합니다.  천황제의 아베는 마지막 제국주의의 헛된 망상을 구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로 세상을 겁탈하는 트럼프는 이기적 자본주의로 아메리카만의 영화를 구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길을 공고히 하는 시진핑은 교회를 핍박하며 중화의 야욕을 구합니다. 어린 김정은은 핵으로 체제와 정권의 안전을 구하려 합니다. 이 어지러움 가운데 세상의 사람들은 온통 탐욕을 채워줄 맘몬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사시나요? 이 땅의 교회를 향한 왕이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루가 12:29-31, 29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하며 애쓰지 마라. 30 그런 것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1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루가 12:33,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공평과 정의를 행함으로 평화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평화통일주일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은 74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 가운데 하나는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일본과 한국의 화해와 일치일 것입니다. 잠시 후 신자기도특별의향 순서에 주보 2면에 실린 2019년 8.15평화통일남북교회공동기도문을 함께 드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루가 12:31,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처럼, 하느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은 그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십니다.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구하며 지금 여기서 내가 순종해야 하는 하느님의 뜻을 묻고 순종합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들은 구원의 손길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오늘 시편 기자처럼 노래할 수 있습니다. “20 야훼는 우리의 도움, 우리의 방패, 우리는 애타게 그분을 기다린다.  21 그분 안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우리의 믿음은 거룩하신 그 이름에 있다. 22 우리가 이렇게 당신만을 기다리오니, 야훼여, 한결같은 당신 사랑 베푸소서.”

 

여러분 모두 살아계신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가운데, 평생 이 시편의 노래를 부르며 사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거룩하신 그 이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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