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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경건한 삶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따라 광야로 나가자!

by 분당교회 2017. 3. 4.

공지


1. 사순절 매일 감사성찬예배 - 재의수요일: 35분, 목욜: 13분, 금욜: 15분, 어제 토욜 24분 / 어제는 강휘데스 교우님이 밥 국 반찬을 준비해 오시고, 조모니카님이 빵을 만들어 오셔서 풍성한 아침 애찬까지 나누며 교제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월 6일부터는 월-금 6시 15분, 토요일에는 8시입니다.


2. 사순절 추천도서로 비아출판사의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읽기를 합니다. 4월 마지막 주일 애찬 후에 독서 나눔을 가질까 합니다. 성공회독서운동에 가입하시면 선물로 책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3. 대심방 –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에 하면 좋은데,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하시면 참여 가능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정해주세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1. 성공회 예배는 교회력에 따라 성경 말씀과 기도의 내용이 정해입니다. 영성신학자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라는 그의 책에서 모든 기도문 중에 최고의 기도문이 성공회 기도서라고 극찬했습니다. 지금 기도서가 개정 작업 중에 있습니다. 개정판 기도서가 나오면 여러분 집에 가지고 계신 기도서와 무상 교환해 줍니다. 개정판이 출간되면 주황색 미사예문을 없애고 기도서를 가지고 주일감사성찬예배를 드리고 또 집에서 기도서로 가정예배를 드리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2. 재의수요일부터 사순 3주일까지 드리는 기도 중에 ‘영성체 후 기도’를 이렇게 드립니다. 주보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범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감사히 받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삶의 발자취를 인내로써 따르게 하소서.”

 - 이 기도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희생제물’ 오셨습니다. 아마 다음 주일에 이 내용을 설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의 모범’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나눌 주제입니다.


3. 신앙생활이란 경건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경건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기간입니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정규시즌을 위해서 집중적인 훈련을 하는 동계캠프와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경건한 삶이란 빵으로 상징되는 물질을 물리친 것, 영웅주의 명예욕을 멀리한 것, 그리고 세상 권력을 뿌리친 것입니다. 


4. 빵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당대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살아간 허다한 유다인들은 소작인이 되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습니다. 평균 수명이 40세 전후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기근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 내게 돌을 빵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5. 시인 정호승도 이렇게 말합니다.

 - 나의 꿈

돌멩이로 빵을 만든다

흙으로 밥을 짓는다

풀잎으로 반찬을 만든다

강물로 국을 끓인다

함박눈으로 시루떡을 찐다

노을로 팥빙수를 만든다

이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6.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들은 모두 당대 함께 사는 유다인들, 갈릴리 사람들을 향한 연민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다 회개시킬 수 없을까? 내가 권력을 가진다면 로마제국과 모든 기득권자들을 쓸어버리고 새세상을 만들 수 있을텐데....


7.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인류의 문제,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야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하느님만을 경배하는 삶이 되어질 때 인류의 문제는 해결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올 수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야만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기에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헌신하셨습니다.  


  마태 4:4,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마태 4:7,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마태 4:10,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8. 이렇게 바르게 분별하고 살아가는 삶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경건한 삶이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그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게 하며,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워가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서 분별하고 하느님의 비전을 확신하셨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광야로 나가신 예수님을 따라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9. 성서에서 광야는 아주 중요한 경건의 훈련 장소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가 광야였습니다. 이집트의 종으로 살아 왔던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새로 태어나는 장소가 광야였습니다.


10. 교회사를 보면 4, 5세기 사막의 교부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세속화되고 타락해 갈 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은 믿음의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광야로 나갔습니다. 물론 이들은 세상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살기 위해서 사막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11. 일례로 사막의 교부 중에 성안토니우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수사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251년에 이집트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8세 즈음에 교회에서 이런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태 19:21,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다. 

 - 안토니우스는 자기에게 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마을 변두리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다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그가 세상 속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은 그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건강한 원형을 보았습니다. 즉 그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의 능력을 행하며 교회사에 위대한 성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2. 재의수요일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사순절에 여러분은 경건의 훈련을 위하여 어떤 결단과 다짐을 하셨는지요? 사순절 경건의 훈련을 돕고자 주보에 사순절을 나름 실하게 보내는 방법을 실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3. 사순절 동안 단식과 극기의 경건 훈련을 시작한 어떤 수사님이 자기의 영적인 지도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자네는 일상의 삶이 경건하니 사순절이라고 따로 더 훈련하지 않아도 되네.” 실제로 그 수사님은 소박한 식단에 소식하며 깊은 기도와 봉사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특별히 사순절이라고 경건의 삶을 더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4.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평상시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잘 쉬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족이 없고 뭔가 마음은 허전하고 메마르기만 합니다. 일상의 삶 가운데 복음의 능력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일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분주하게 보내면서도 정작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 기도와 묵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5. 그래서 주님은 교회로 하여금 부활 전 평일로 40일, 사순절을 지키게 하십니다. 안락하고 평안하게 욕망을 만족시키는 옛 생활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나가 경건의 훈련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느님이,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신 성령님이, 성안토니우스를 사막으로 인도하신 주님이 이 사순절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하는 곳이 바로 광야, 사막입니다. 


16. 그렇다면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실제로 광야라는 장소로 나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순절 동안 광야의 영성으로 경건의 훈련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사막의 교부들이 제시하는 광야의 영성은 고독, 침묵, 기도. 3가지입니다.


17-1. 첫째, 고독.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면 좋고 외면하면 슬퍼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외로움 가운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고독이란 사람들에게서 고립됨으로 오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고독은 사람 속에서 찾는 자기의 존재감을 가지려는 의존성을 단절하고 나 홀로 하느님하고만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고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17-2.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다’고 한다. ‘늘 하시던 대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늘 하느님과 있기 위하여 고독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재의수요일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17-3. ‘골방으로 들어가거라.’ 예수님은 여러분을 고독의 시간으로 초청하십니다. 

고독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도록 나를 정화시키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고독을 갖는 자는 세상 속에서는 사람들을 공감해 주는 넉넉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 은총은 고독해지는 자만이 경험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순절 동안 사람들에게서 도망치십시오. 고독으로 들어가십시오!


18-1. 둘째, 침묵. 사막의 교부들은 침묵을 하느님께 나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고독입니다. 침묵은 고독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침묵 가운데 계시다가 말씀하셨고 그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이 생기고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18-2. 우리는 너무나 말이 많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없이 듣고 내뱉는 말들을 통해서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말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요? 오히려 말을 통해서 상처를 주고 관계가 파괴되지는 않는지요? 


18-3. 말은 우리를 참 쉽게 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침묵이 금이라고 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말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야고 3:2,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시편 39:1, "혀를 함부로 놀려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악한 자 내 앞에 있는 한 나의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 마음먹었습니다. 


18-4. 예수원에 가면 저녁 9시 이후에는 침묵입니다. 피정에 들어가면 침묵이 절대적인 규율입니다. 힘 있는 말은 침묵 가운데 나온 말입니다. 사순절 동안, 말을 줄여보십시오. 침묵으로 있는 고독의 시간을 갖도록 해 보십시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에 한 시간도.


19-1. 셋째, 기도.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고독 가운데 침묵하는 목적입니다. 만일 단순히 고독이 분주한 일에서의 도피이고 침묵이 시끄러운 환경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한다면, 고독과 침묵은 쉽게 자기중심적인 금욕주의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 가운데 침묵했던 것입니다.


19-2.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와서 쉬라”는 말입니다. 고독과 침묵을 통하는 바른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매우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 하느님 안에서 갖는 쉼과 안식이 기도입니다. 


19-3. 우리는 그저 기도를 하느님께 많은 말들을 쏟아놓는 시간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또 다급하거나 아직 신앙이 어릴 때는 부르짖고 내 말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철이 들거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사랑하는 신뢰의 관계에서는 그저 서로 바라보며 마음을 나눕니다. 이를 관상이라고 합니다.  


20. 고독 침묵 기도 이 세 가지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광야의 영성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경건의 모범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성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퀘이커교도들입니다. 그들은 고독과 침묵의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빛이라고 말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이 순종하며 평화를 일구어가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1. 광야의 영성이 깊어지면 우리 삶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분별하는 영적인 민감함이 깊어집니다. 분별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이 굳세어 집니다. 경건한 삶의 모범을 살아갑니다. 고독과 침묵, 그리고 기도라는 광야로 나가는 사순절은 실로 우리가 경건한 주님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함께 광야로 나갑시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주일 설교 말씀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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