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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느님 나라 백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분당교회 2017. 2. 26.

한 신학자가 1세기를 살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기록된 문서들을 연구하다가 특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 앞에 동일한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티테이오스 죤, 티테이오스 폴, 티테이오스 엘리야". ‘티테이오스’의 의미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는 예수님이 제시하신 하느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란 하느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상태, 영역,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전제군주처럼 군림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오직 사랑으로만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사랑입니다. 이를 조건없는 사랑, 헤세드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했습니다. 언제나 성찬례를 드리며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깊은 기도 가운데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교제를 통해 하느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누리며 하느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둘째,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지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믿음을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헤세드로 하나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가운데 서로 돌아보았습니다. 헤세드 사랑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배적인 정의, 쩨다카로 표현되었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정의를 이룸으로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셋째,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개인과 교회를 통해서 경험한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평화의 가치를 훼손하는 전쟁을 반대하며 군입대를 거부했습니다. 군인이라면 생명을 존중함으로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당대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던 로마제국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기독교는 반체제집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미슈파트라는 사법적 정의가 이루어지는 나라인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군대와 전쟁을 반대함으로 그 정신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하여 점차 기독교를 박해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위협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해와 순교조차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닌 하느님 나라의 소망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왕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감사성찬예배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헤세드를 기억하며 기도와 묵상으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서로 깊게 사귀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며, 말뿐만이 아닌 물질로 그 사랑을 확인하는 쩨다카의 공동체를 세워갑니다. 그리고 단지 개인과 공동체 안에 머물지 않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비전을 따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공의-미슈파트를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더불어 함께 이 삶을 살아,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017년 2월 26일, 김장환 엘리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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