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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절망의 벽을 넘은 믿음

by 분당교회 2014. 9. 5.

절망의 벽을 넘은 믿음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가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입니다. 우리가 90년대 말 가장 힘들었던 경제난국을 이겨나가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통해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절망의 벽’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그 벽을 다 덮고, 마침내는 그 벽을 넘는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위대한 연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소통을 거부하는 꽉 막힌 벽 앞에서, 따듯한 가슴과 피와 눈물도 메마른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약한 사람들의 위대한 신념은 좌절하지 않고, 파괴하지도 않고 승리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 딸의 구원을 간청하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차별이라고 하는 절망의 벽을 넘었습니다. 고통 받고 죽어가는 딸 앞에서 어머니는 무엇이든 못할까요... 그는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길을 갑니다. 하지만 이 가나안 여인, 유다인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접촉하지도 업신여기는 이방인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제발 자기의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하며 거절하십니다. 이 의외의 대답에 많은 신자들은 놀랍니다. ‘아니, 예수께서 이렇게 매정한 분이실까?’ 더군다나 이것은 명백한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방인은 강아지처럼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이 쓰일 당시의 선교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문제가 유다인들 안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실제로 배척과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들도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명백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비록 강아지만도 못한 이방인이지만 순수한 믿음과 열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 증언합니다. 이 여인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차별과 냉대를 받아도, 그것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존심도 버립니다.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비우려면 다 비워야겠지요. 그래야 진실하고 순수한 믿음의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절절한 믿음과 확신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이 여인의 믿음은 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그 장벽을 없애주셨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17 연중 20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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