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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죽기'와 '살기'

by 분당교회 2014. 9. 5.

‘죽기’와 ‘살기’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영화 ‘명량’에 많은 국민이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배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적군을 격퇴하는 명량해전 이야기입니다. 전장에 나가면서 이순신 장군은 왕에게 장괘를 올립니다. ‘전하, 신에게는 아직 배 12척이 있습니다. 신이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적은 감히 우리를 모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미 전세가 기울어서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도망 갈 궁리만 하는 병사들에게 외칩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집과 막사를 다 불태워버립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각색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비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결과는 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둡니다. 죽기를 각오한 신념과 지혜가 만들어 낸 역사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수께서도 사즉생, 생즉사! 즉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가 죽고자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내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맡긴다는 것이 아닐까요?


얼마 전 로마 카톨릭 교황 프란체스코가 방한했을 때 엄청난 군중이 그를 환영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세계적 종교 지도자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비기독교인들까지도 열광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에 대한 갈증일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소탈하고도 순수한 모습뿐만 아니라 약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낮추고 내던져서 세상을 구하려 노력하는 지도자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가 난무하고, 죽음의 장벽 앞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이 진실과 정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부르짖을 때 우리 지도자들은 경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민생이라는 말은 더 이상 백성들의 삶을 위한다기보다는 어떤 이데올로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덕’과 ‘의’보다도 ‘이’(利)를 먼저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깊은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잘 먹고 잘 살기를 먼저 선택해서 ‘죽기’의 길로 가는 그야말로 살려고 하다가 죽어가는 현상이 아닐런지요. 우리 사회의 문제는 경제의 침체보다도 영혼의 죽음이 더 심각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수시로 고난을 예고하신 것으로 봐서는 죽음이 남의 것이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 항상 곁에 있는 것처럼 여기며 공생활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변화산에서 영광의 모습을 보이시긴 했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세상에 내려오셨고 적들이 대기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께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지 않고 지지자들과 편하게 지내셨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훌륭한 선생님이나 예언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역사의 한 귀퉁이에 보일락 말락 한 인물이 되셨을 것입니다. 교회도 세계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니 그 보다도 우리의 구원과 천국의 소망 역시 없어졌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겪으셨기에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먼저 선택하고 가야 할 길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31 연중 2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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