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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분당교회3585

성공회 한국 축구의 모태일지도 ^^ * 본 글은 본 교회 교우이신 조프란시스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 (출처 : http://yellowsub.egloos.com/1645445 ) 최근에 발견된 영국선교사의 보고서였던 '모닝캄Morining Calm'이라는 잡지에서 한국 최초의 축구팀이 성공회 브라이들 신부님 (Rev. G.A. Bridle)의 코치로 강화학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 중에 발견한 기사에 서 1901년 강화도에 최초의 축구팀이 성공회 신부님의 코치로 훈련을 받고 있었으며 좀 더 훈련을 잘받으면 영국 리그에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내용이 담긴 문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882년 영국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 전파되어 1904년 서울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시작되.. 2007. 10. 4.
2007년 9월 30일(연중26주일) 설교 (루가 16:19-31 부자와 라자로) 사랑과 존경을 여러분에게! (루가 16:19-31)무슨 카피같은 제목을 일부러 생뚱맞게 달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신“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짐작을 뛰어넘으려...^^)이 대목을 근거로 사후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 ‘천국과 지옥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는 것이다’등의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째 좀 ‘넌센스’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역시 부자와 가난한 이의 관계가 핵심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부자가 받은 심판은 단지 부귀했다는 것이 이유가 아니겠지요.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부자가 자기와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간 거지 라자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연민도, 책임의식도 갖지 않았던 게 문제입니다.. 2007. 9. 30.
2007년 9월 25일(화/추석) 추석 성찬례 설교 (감사와 나눔의 명절) 추석 감사성찬례 설교감사와 나눔의 명절기쁜 명절 추석입니다.푸른 하늘에 한가위의 밝고 둥근 달빛이 가득한 것처럼우리와 모든 이들의 마음에도 풍성한 주님의 은총이 가득차기를 기도합니다.추석절은 본래 햇곡식과 과일을 거두고 감사하는 축제입니다.신에게 정성을 바치고, 조상을 기억하고, 모두가 함께 노고를 달래고 기쁨을 누리는 때입니다.인간이 살아가는 일, 생존을 영위하는 일은 사실 팍팍하고 고단한 일입니다. 명절은 그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고 기쁨을 더하는 날로서 중요합니다.명절이 되면 그리스도인이 있는 집안에서는 제사를 지내느냐 마느냐로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생각하면 실은 그리 심각하게 대립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우리가 지금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제사는 유교식의 제의입니다. 그런데 유교가 보편화되기 전에.. 2007. 9. 24.
2007년 9월 24일(월) 강론초고 (가진 줄 알고있는 착각을 벗고) 가진 줄 알고 있는 착각을 벗고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성공회의 신자이고 사제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자기이해와 긍지는 알고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문제는 “내가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고 있는가” 이다. 내 안에서 성령의 불이, 사랑의 불이 빛과 열을 내며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잘 닦인 거울같이 맑고 투명하여서 말씀과 성사의 사랑과 진리를 반사라도 하고 있는가?나는 사실 겸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수준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빛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겸손한 척 하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자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가 그러할 뿐이다. .. 2007. 9. 23.
2007년 9월 23일(연중 25주일) 설교 (루가16:1-13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 슬기로운 청지기로 살기 (루가 16:1-13)오늘 약삭빠른 청지기에 대한 비유 말씀을 듣노라면 잠시 혼란스럽습니다. 횡령죄에다 배임죄까지 범한 청지기가 도리어 칭찬을 받다니요? 그러나 오늘 비유의 초점은 청지기의 ‘책임감’이 아니라, 그의 슬기로운 ‘판단과 처세’ 입니다. 주인 입장에서 믿을만한 청지기는 아니었지만, 그가 청지기직분을 이용해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덜어주며 자기를 위한 환심도 사고 주인의 덕망도 살린 일은 참 지혜로왔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청지기’에 비유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우리는 ‘소유하는 권리’로서가 아니라 ‘관리하는 책임’으로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주인이신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낭비하고 빼돌린.. 2007. 9. 22.
2007년 9월 22일(토) 강론초고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주님)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주님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셨는가?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이 대답은 일종의 스포일러(spoiler)^^다.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신비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했던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내리신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추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비밀이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과 성령강림을 깊이깊이 생각한 후에 다시 이 대답을 채택하기로 하자.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말씀하신 우리 주님, 예수님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 분이다.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시면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어떤 방편으로, 어떤 능력으로, 어떤 지향으.. 2007. 9. 21.
2007년 9월 14일(금) 강론초고 (십자가 구원의 본질) 십자가 구원의 본질십자가는 나를 위한 구세주의 죽음이었다. 십자가에 흐르는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피 흐르는 십자가 밑에서 나를 돌아본다. 이런저런 상념들은 자유롭다. 너그러이 보아주시길...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바로 나...누구를 위해서? 또한 나 ...내가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못박았는데 무슨 구원인가?나의 구원은 결국 알고 사는 것이다. 오늘 내가 사는 일은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과 그 희생은 사랑이고,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일 수 밖다는 걸!나는 남의 희생을 당연시했고 태연시 했고 속으로 냉소했고 경멸했다.힘으로 또는 속임수로 그 희생을 조장하려 했다. 나의 희생은 두렵고 어리석고 피해야 할 일로 여겼다. 나의 구원은 결국 묻고 사는 일이다.나는 누구를 살리.. 2007. 9. 20.
2007년 9월 13일(목) 강론초고 (황금률- 사랑의 기초) 황금율- 사랑의 기초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줄이면 ‘박애(博愛)’, 사랑이라고 합니다.예수님은 613가지 율법조항을 단 두가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셨지요. 그런데 그 사랑은 전제 또는 근거가 되는 것은 바로 황금율, 즉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말씀입니다.사랑은 참 좋은 것이지만 사실 모든 고통은 사랑에서 생깁니다.사랑이라지만 실은 애욕, 애착일 수 있습니다.경험하거니와 실제로 사랑하는 일은 그저 기쁨만이 아니고 고통과 슬픔을 동반합니다.그래서 사랑에는 진리가 요구되고 분별이 필요하지요.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들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바울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무작정한 희생이 사랑의 내용이 아닌 것이죠.분별의 시작이 바로 나와 남의 올바른.. 2007. 9. 20.
2007년 9월 12일(수) 강론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는 참 생명, 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는 참 생명, 나!저를 포함하여 많은 신자들은 사실 “뭘 모르는 게” 아닙니다. 실은 이것 저것 대강은 다 압니다. 고상한 이야기도 알고 통속한 이야기도 알고, 하늘의 가르침도 알고 땅의 현실도 압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할까에 있습니다.본래 우리의 삶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험은 참 사람 예수님께서도 절감하신 바입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바울로 사도는 인정합니다.오래 믿음 안에서 교제한 우리의 교우들 마저도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제가 권면하는 말을 반박하지는 않지만 내심 그건 “(교회내에서만.. 2007. 9. 20.
2007년 9월 11일(화) 강론초고 (예수가 '신화'가 아닌 까닭) 예수가 '신화'가 아닌 까닭 몇 년 전에 “예수는 신화다” 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 책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압력 때문에 절판되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과격한 주장의 내용이었지요. 초기 기독교의 시대와 지역을 살펴볼 때 지중해 연안에 보편적이었던 각종의 “신화”들과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어보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 적지 않은데, 정작 문제는 그 사실관계 자체보다도 그를 통해 “예수는 신화다”라고 단정한 저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독보적이고 유일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중요한 기반인데 예수님을 한낱 신화로 단정 지으면 따라서 그리스도교 전체가 인공적이고 허구적인 가공물에 지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스스로.. 2007. 9. 20.
2007년 9월 10일(월) 강론초고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인 그리스도)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인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정보를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실을 경험하고 살고 전하는 것입니다.“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는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그 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뜻과 행동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그 풍부한 경험과 고백의 내용을 살피지 않으면 그저 “X 는 Y 이다” 라는 명제의 틀만 남게 되고 제멋대로 X 와 Y 의 자리에 아무 내용이나 들이대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그러므로 신자는 어째서 예수가 그리스도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주관적인 고백으로 내게 예수가 그리스도인 까닭을 전할 수 있어야 하죠.객관적인 증언으로.. 2007. 9. 20.
9월 9일 제단 꽃꽂이 2007.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