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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분당교회3569

2007년 9월 7일(금) 강론초고 (그리스도의 평화, 새술에 취하라!) 그리스도의 평화, 새술에 취하라! 그리스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평화다. 골로사이서가 노래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하느님과 하늘과 땅의 만물을 화해시키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씀일까? 하느님과 만물은 어찌하여 사이가 나빠졌는가? 말하자면 만물이 배은망덕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만물 중에서도 영장(靈長)인 인간이 배은망덕 했기 때문이다. 하느님 입장에서는 배은망덕이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자수성가(自手成家)인 것이다. 그냥 경험에 비추어봐도 가치지향 없이 돈이나 권세나 명예를 얻은 자수성가자들은 대체로 인색하고 잔인하고 독선적인 경향이다. 진짜 성공한 인생은 물론 가치를 따라 살면서 모두를 위하여 돈과 명예와 권세를 방편으로 얻고 사용한 사람들이다. 좌우간 인간의 자수성.. 2007. 9. 7.
2007년 9월 6일(목) 강론초고 (예수님의 '깊이'에서 만나자) 예수님의 ‘깊이’에서 만나자 10년 전쯤에 어느 교회에서 청년회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다. 지금 내 성경 공력의 80% 이상이 그 때 쌓여진 것이다. (잘 배우려면 가르치는 일을 맡는 길이 제일 효과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쓸데없는 이론이 장황한 편이어서 그다지 재미있는 공부시간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겠다. 그래서인지 성경 공부 때마다 스스로 ‘평범’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던 한 청년이 어느 날 눈이 빤짝빤짝해서 나타났다. 그동안 무거웠던 입을 열어 이제 비로소 ‘자신의 소명’. ‘인생의 의미와 삶의 자세’에 대해서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놀라 들어보니 나의 심오한(!) 강의를 통해서가 전혀 아니라 그 유명한 ‘다단계 합숙훈련’을 통해서 깨우친 것이었다.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하여 교회와 복음이 다단계회사의 .. 2007. 9. 6.
2007년 9월 5일(수) 강론초고 (복음을 사지말고 복음을 살자) 복음을 사지 말고 복음을 살자 영적인 능력은 금식과 기도로 얻는 것일까? 식탐이 많은 나는 도무지 영적인 능력이 없는가 보다. 내가 듣기에 티브이에 나오는 대형교회 유명 설교자들 설교는 도저히 참고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하기만 한데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몰려드니 참 알 수가 없다. 당대 최신, 최선의 말씀 해석이라고 자부하는(혹은 착각하는^^) 내 설교는 도무지 은혜받았다는 이가 없는 것이다.에바프라를 통해서 골로사이에 전해진 복음은 많은 열매를 맺었다. 바울로는 그것을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냥 말씀이 아니었다. 병을 고치고, 악귀를 쫓아내고,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는 능력이었다. 예수님이 무엇하러 오셨는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러 오셨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십.. 2007. 9. 5.
2007년 9월 4일(화) 강론초고 (살아있든지 죽어있든지) 살아있든지 죽어있든지 성경을 읽으면서 이른바 초자연적인 기사를 대하면 당혹스럽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미루어 짐작이 되지만 마귀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예수님은 그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기사는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귀, 악령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악한 일, 추한 일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까요? “성령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악령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만...전기불이 들어오고 나서 그 흔했던 시골의 '도깨비'가 몽땅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저는 아직 사제로서 (좁은 의미의) 축마, 축귀 의식의 경험이 없습니다만, 우리 성공회 공동체내에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신부님들께서는 실제로 축마의 경험.. 2007. 9. 4.
2007년 9월 3일(월) 강론초고 (예언자의 길) 예언자의 길 철 지난 쟁점이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개인영혼”과 “사회구조”중 어느 것을 대상을 하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공회적인 답은 “둘 다” 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성공회 사람들은 그 귀한 중도, 통합의 정답을 그만한 고민의 과정 없이 대충 머리로 내어놓고 만족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개인영혼에 대한 관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기의 신원을 소멸하는 육체가 아닌 영속하리라고 기대되는 영적 실체인 영혼에서 확인하려는 시도입니다.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은 삶의 고통에서 비롯합니다. 절대로 공평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몫을 불의한 세상 탓에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우리들의.. 2007. 9. 4.
[설교] 2007년 9월 2일(연중 22주일) 설교 (루가 14:1,7-14 낮은 자리에 앉아라)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서 체득하는 겸손 (루가 14:1,7-14) 높은 자리, 한 자리를 바라는 것은 동서고금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욕망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이유도 결국은 장차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한 자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성경은 정직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장면에서 ‘윗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드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들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동의하기 이전에 이미 밖에서 강요되는 타율적인 통제의 힘이 강력하면, 사람은 스스로 자기 내면을 살피고 정화, 성숙시키기 보다는, 밖으로 보여지는 것들을 통해서 자기 신원(身元)과 사회 속의 안전(安全)을 확인하려 들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 2007. 9. 4.
2007년 9월 1일(토) 강론초고 ( '열심'보다 중요한 '감사') '열심'보다 중요한 '감사' 저는 겁이 많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 저런 일에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많습니다. 예전에 대학 졸업후 1년을 그냥 놀았습니다. 세상에 나가기가 겁나서요, 그리고는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험한 세상에 비하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가요, 신학교는. 생각대로 안온하긴 했지만 현실은 분명 ‘빌어먹는’ 삶이었고 이대로 평생 빌어먹는 인생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은 참 우울하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는 “빌어먹는 삶”을 기쁘게 누릴 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얼마나 교우들의 크나큰 사랑이 뒷받침되는가, 그 근저에 얼마나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는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만일 “너 이만한 처우를 해줄터이니 이만한 실적을 내라”는 식의 요구가 교회공동체로부터 제게 주어진다면.. 2007. 9. 4.
2007년 8월 31일(금) 강론초고 ( 종말을 거룩하게) ‘종말’을 ‘거룩’하게! ‘종말(終末)’은 ‘시간(時間)’의 문제 같지만, 실은 ‘가치(價値)’의 문제입니다. ‘거룩’은 나를 구별(區別)하여 지키는 노력 같지만, 실은 관계(關係)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순진해서 지난 1999년 7월에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실제로 무척 두려워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든 종류의 시한부 종말론을 다 헛소리, 개소리^^로 알지만요... 종말은 이 세계가 우연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치)로 충만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무슨 의미가? 바로 그 의미가 문제입니다. 저는 그 의미의 문제가 바로 등잔과 함께 준비해야 하는 기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행위에는 그 내용이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용 없는 신앙생활.. 2007. 9. 4.
2007년 8월 30일(목) 강론초고 (사목자로 사는 일) 사목자로 사는 일 나는 행복한 사목자다. 사목 자체에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마냥 해피하다.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교우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우들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기도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내 일이다. 우리 교회, 우리 교우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그런데 행복한 사목자인 나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 아니라 실은 무척 게으르고 악한 종이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사목을 했더라면, 말씀 그대로 “종말론적인” 태도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이 세상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교회와 교우들을 섬겼다면 아마도 지금의 세배는 더 사목적 열매를 거두었을 것이다. (이것도 혹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은 아닐까?^^) 왜 게으르고 악하게 지내느.. 2007. 9. 4.
2007년 8월 29일(수) 강론초고 (세례자 요한의 참수) 세례자 요한의 참수어떤 사람을 원하려면 그의 살아있는 “온 몸”을 원해야지 달랑 “머리”만 원하면 안된다.^^ 어떤 이의 부분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를 해체하여 죽이라는 것과 같을 지 모른다. 이 본문에 관한 어느 분의 묵상에서 “세례자 요한의 참수는 바로 신앙이란 우리의 머리(=자기생각)을 잘라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기발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탄복했으나, 역시 내가 묵상한 것이 아니어서 내겐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도 든다.) 예언자는 자기 생각, 자기 신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경지는 모른다. 옳은 일, 바른 말 하기를 제대로 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내가 대부분의 세상 .. 2007. 9. 4.
9/2일 제단 꽃꽂이 _ 박모니카 2007. 9. 2.
대한성공회 공동체 소식 _ 9/2 [이동석(스테반) 사제를 위한 중보기도] 항암 치료 중인 성남교회 관할사제 이동석 신부님의 쾌유와 성남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행신교회 축성식] * 일시 : 9월 2일(일) 오후 4시 * 장소 : 고양시 행신동 [성소주일 연합예배와 축제] * 일시 : 9월 16일(일) 오전 11시 * 장소 : 성공회대학교 [제24회 교구 성가제] * 일시 : 11월 11일(주일) 오후 4시 * 장소 : 주교좌성당 [북한선교를 위한 목요기도회] * 일시 :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 장소 : 주교좌성당 [음악회 이건용 작곡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초연] * 일시 : 9월 18일(화) 오후 7시 30분 * 장소 : 주교좌성당 * 요금 : 1만원 2007.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