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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 시리즈 : 이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 기도생활의 안내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 7.



그리스도교 영성사에 기여한 여성은 꽤 있습니다. 휘트비의 힐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노르위치의 줄리언, 시에나의 카타리나 등. 그런데 이들은 죄다 전문 수도자들이었습니다. 20세기에 이블린 언더힐이 등장하기 전까지 재속의 여성으로 그리스도교의 영적 안내자로 널리 인정받은 인물은 17세기 프랑스의 마담 귀용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블린 언더힐은 영적 운운하는 길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성장배경을 갖습니다. 부유한 부모는 평탄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신심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외동딸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 언더힐은 철학과 역사, 언어 그리고 식물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서른둘에 어릴 적 소꿉친구와 결혼해 런던 친정 부모가 사는 근처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유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변호사 신랑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니고 요트 타기, 정원 가꾸기, 책 장정 등의 취미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냥 유복한 부인네의 인생으로 가기 십상이었을 환경입니다. 그러나 언더힐은 평생에 영성생활에 대해 40권의 책과 350편이 넘는 글을 쏟아내며 피정 지도자로 줄곧 불려 다닙니다. 1921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종교 강의를 한 최초의 여성이 되며 1926년에는 영국 성공회 역사에서 교구 성직자들의 피정을 이끈 최초의 여성이 되기도 합니다.

언더힐의 사역은 크게 두 시기로 분류합니다. 그 전에도 소소한 글들을 쓰긴 했지만 1911신비주의: 인간 영적의식의 본성과 발달 연구(Mysticism: A Study of the Nature and Development of Man's Spiritual Consciousness)를 출판한 때를 첫 시기의 기점으로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비주의란 용어는 오해를 많이 삽니다만 이 책이 나올 당시에도 신비주의란 그리 좋은 어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언더힐은 용감하게 이 용어를 제목으로 삼고 첫 장부터 모든 종교의 기초는 신비주의라고 설파합니다. “인간의 영은 본래적으로 초월을 향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 것이 신비주의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 궁극적 실재에 자신을 내맡기려는 가슴의 움직임이 신비주의라고도 정의합니다. 오늘날 자아초월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정의와도 만날 수 있는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신비주의의 경험은 위대한 성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더힐은 믿었습니다.

[이 책에서 언더힐은 참된 신비주의를 알아볼 네 가지 특징을 말합니다. 1) 이론이 아니라 실천: 신비주의는 무엇보다 진한 경험이기 때문에 이론적 사색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의 열매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망애 삼덕(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사추덕)의 열매로 알아본다는 고전적 준거와 맞닿는 설명입니다. 2) 순전히 영적임: 문제를 해결하거나 응답을 받거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자신을 경험하려는 영적 목적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더 높은 단계라는 성 베르나르(우리가 버나드라고 읽는)의 설명과도 맥이 통합니다. 3) 사랑의 길: 참된 신비주의의 방법론은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이때 사랑이란 얄팍한 가변적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온전히 하느님을 향하는 헌신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친밀감의 감정으로 해설하는 복음주의적 영성은 어둔 밤을 이해하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사랑을 의지의 지향으로 보면 하느님의 부재 속에서도 의지로 그분을 향할 수 있습니다. 4) 심리적 경험: 이때의 경험이란 정신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을 다 포함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참된 영성이란 정통(orthodoxy)이기보다 정행(orthopraxy)이라는 말을 하는데 언더힐의 신비주의 정의는 이미 그 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이나 감성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전체성, 포괄성을 강조합니다.]

언더힐은 신비주의후반부에서 독자들을 신비주의의 길로 들어서게끔 초대합니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문체로 언더힐은 무려 133명의 신비가들을 인용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언더힐의 독창성은 신비주의의 길을 다섯 단계로 제시한 데서 빛납니다. 고전적으로는 정화-조명-일치의 3단계로 설명한 그 여정을 언더힐은 1) 각성-하느님을 향하고픈 영혼의 열망이 깨어나는 단계 2) 정화-개인의 거짓 가치관과 집착이 벗겨지는 고통스런 단계 3) 조명-하느님에 대한 분명하고도 즐거운 이해가 있는 단계로 환시나 황홀경 체험이 많이 나타나는 단계 4) 어둔 밤-하느님께 버림받은 느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단계 5) 일치-마침내 하느님과 연합하는 단계로 위대한 성인들만이 도달하는 단계로 설명한 것입니다. 보통 조명 단계를 시쳇말로 은혜를 많이 느끼는 단계로 마치 신앙생활의 목적지인 양 여겨지는데 어둔 밤의 단계를 그 이후에 위치시킨 것은 기억할 만한 명료화로 보입니다.

신비주의는 출판 1년도 채 안 돼 재판마저 매진되는 엄청난 인기를 누립니다. 이 책은 지금도 그리스도교 영성의 필독서로 꼽힙니다. 언더힐 사역 전반부는 이 책과 함께 시작돼 이후 언더힐이 쓰는 책들은 대개 이 책에서 언급한 주제들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언더힐은 높은 명성에도 뭔가 허전함을 느낍니다. 이 시기 언더힐의 신비주의에는 교회가 빠져 있습니다. 사실 언더힐은 처음에는 천주교에 끌렸습니다. 뭔가 초월에 대한 감각이 풍성하게 남아 있는 교회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07년 교황이 현대과학과 성서비평을 정죄하는 교서를 내놓자 언더힐은 천주교회가 자기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성공회에도 쉽게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니지만 1921년 옥스퍼드에서 강의할 무렵쯤엔 성공회를 자기 집으로 여기리만큼 성숙한 헌신한 신자가 됩니다. 매일 교회 성무일과를 다니는 성공회 신자들과 어울리면서 이전에 없던 공동체 의식과 보다 이 세상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 생겨난 것입니다. 전기 언더힐과는 구별되는 후기 언더힐이 성공회 신자가 되면서 나타난 것입니다.

후기 언더힐 탄생에는 영국의 천주교 사상가이자 언더힐의 영적지도자(spiritual director)였던 배런 프리드리 본 휘겔(Baron Friedrich von Hugel)의 영향도 큽니다. 본 휘겔은 영적지도를 통해 언더힐의 표류하는 마음은 신비주의 이해와 상관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언더힐은 3세기 신비가 플로티누스가 영적여정을 단독자가 단독자에게로 비행하는 것”(the flight of the Alone to the Alone)이란 표현을 즐겨 인용했습니다. 영성생활을 그렇게 이해하다보니 몸 없는 혼처럼 이 세상 역사나 인간 삶엔 관심이 적게 됩니다. 본 휘겔이 볼 때 언더힐은 이 땅으로 좀 내려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런던 빈민가에서 봉사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고 언더힐은 이를 받아들여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합니다. 후기 언더힐은 여전히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지만 이제 초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옮겨 갑니다. 성공회 여성의 특징이라 할 성육신 강조는 이제 이블린 언더힐의 것이기도 합니다.

1925년 이후의 언더힐은 전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피정을 인도하고 글을 쓰고 라디오 강좌를 하면서 사람들의 기도생활을 안내합니다. 전기와 다른 점은 이제는 성공회라는 제도교회 안에서 그 모든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에 육신이 필요하듯 신비주의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다가 1936예배(Worship)라는 책을 내놓는데 전기의 신비주의와 함께 후기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61세에 쓴 이 책은 구성도 그렇고 광범위한 주제를 망라하는 점에서도 그렇고 25년 전에 쓴 신비주의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신비주의가 개인 신비가들과 내면의 여정을 주로 다루면서 역사적 맥락은 거의 무시한다면 예배는 사람들이 공동체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보다 제도적이고 성례전적이며 성육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성을 개인의 여정으로만 풀지 않고 공동체의 성례전과 불가분리의 것으로 보는 성공회적 특성을 후기 언더힐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언더힐은 11가지 형태의 예배를 언급하는데 대성당에 이런저런 작은 채플들이 여럿 있지만 모두 대성당에 속한 것이라고 따뜻한 시선을 보냅니다. 이들 모두는 인간 영혼이 자신을 지으신 분을 찬미하고자 하는 열망과 욕구를 표현하는 공통점을 지니며 제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영성 운운이 유행인 요즘 성공회의 전례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영성을 논하는 모습이 있어 보입니다. 전기 언더힐적 모습만 있고 후기는 없다고나 할까요. 또한 서로 다른 영성유형의 예배와 강조점이 있는데 서로 틀렸다고, 혹은 성공회적이 아니라고 차갑게 말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언더힐이라면 큰 지도를 마련해 그 모두를 적절히 위치시키고 다 맞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성공회적이지 않을까요?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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