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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시리즈 : 도로시 세어즈(Dorothy L. Sayers 1893-1957): 별종 변증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2. 14.


도로시 세어즈는 동물원에서 고슴도치 같이 생긴 호저(豪豬)를 사들이는가 하면 돼지를 애완견처럼 기르기도 했는데 이 돼지의 이름을 프란시스 베이컨이라고 했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고 자기 스타킹을 손수 짜서 만들고 요상하게 생긴 귀걸이와 진주 목걸이를 즐기는 줄담배에 때론 시가까지 꼬나물었던, 정말 요상한 여성입니다. 사춘기 때 앓은 병 때문에 머리가 거의 대머리에 가까웠고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칼마저 빗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녔답니다. 지갑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주머니가 많은 코트를 입고 필요한 건 죄다 거기 넣고 다니는 여하간 별종인 인물이었습니다.

성공회 사제의 외동딸인 세어즈는 어릴 적부터 꽤나 똑똑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하는 최초의 여성들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런 다음 광고 카피라이터가 돼서 가끔 히트도 치지만 수입이 신통치 않자 탐정소설을 쓰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그 소설들 덕에 부과 명성을 동시에 얻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회풍의 멋쟁이 탐정 피터 윔지 경입니다. 덕분에 도로시 세어즈는 오늘날도 코넌 도일 및 아가사 크리스티와 더불어 영국의 가장 유명한 탐정소설 작가로 꼽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탐정소설들도 은근히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드러냅니다. 주인공 피터 윔지는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 18세기 이성주의자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등장인물 상당수가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드러냅니다. 예컨대 진실은 언제든 밝혀지고 교만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선이 악을 이깁니다. 하지만 신앙이나 도덕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법은 없습니다. 배경막처럼 은연중에 느낄 따름이고 세어즈 자신 자기 소설에 종교적인 딱지가 붙길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탐정소설 덕에 재정이 좋아지자 분명하게 신학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합니다. 자기 신앙의 진술에 늘 열정과 진지함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열정과 진지함을 유머 넘치는 문체 안에 담아 즐겁게 읽다보면 어느덧 세어즈가 말하고 싶은 요점에 달하게끔 하는 재주가 있었답니다. 말하자면 도로시 세어즈는 정통적 신앙을 열정과 지적 엄밀함을 가지면서도 재미있게 제시하는 당대의 신앙 변증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세어즈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열애(悅愛)했습니다. 세어즈에게 교리란 따분한 것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엉뚱하리만치 교리를 모릅니다. 설교는 그저 현학적이기만 하고 성가는 뜻도 없이 부르고 신자들은 그저 예의바르고 점잖은 게 전부고 교회활동은 친목모임과 바자회가 고작입니다. 이런 현실이 세어즈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도대체 교회의 본질적 가르침이 무엇인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딘가에 세어즈는 이렇게 적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힘을 주든지 곤혹스럽게 하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래서 계시라고 받들든지 아니면 쓰레기라고 경멸하든지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따분한 것으로 쳐버리면 그 말들은 아예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세어즈가 볼 때 교리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디 교리란 시급한 현실의 압박 속에서 정리된 것이며 활기와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세어즈는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도 성서에 많지만 굳이 비 신화화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그리스도교의 심장에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 우주의 창조주께서 1세기 유다인 목수로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세어즈에게 성육신은 모든 교리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성육신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본성과 지위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어즈는 심지어 서구세계는 문명과 야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혼돈 사이의 선택 앞에 서 있다고까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육신을 이단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 결국 재앙으로 가는 눈 먼 길입니다. 성공회의 특성인 성육신 강조는 이렇듯 도로시 세어즈에 이르러 다시금 등장합니다. 흔히 영성생활은 교리와 무관한 것처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교리를 삶으로 사는 것이 영성생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육신 교리는 성공회 영성과 특성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세어즈가 명백히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글들을 쓰면서 반복적으로 담는 주제들인즉 그리스도교 교리는 활력이 있다는 것, 역사적 사실로서 성육신이 중심이라는 것, 고결한 척하는 자만심은 위험하다는 것, 삶의 모든 분야를 도덕적으로 살아야 가치 있다는 것, 지적으로 정직할 것,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일의 크고 적음을 떠나 거룩하다는 것 등입니다. 이런 주제들을 세어즈는 참신한 은유와 유머로 담아냅니다. 교회의 실제 모습이 본래 가르침이 거리가 멀다 싶으면 세어즈의 글은 신랄해집니다. 교회는 미덕을 점잖음, 유치함, 정신적 연약함, 아둔함, 감상적 경향, 검열관처럼 흠잡기, 우울과 혼동하고 있다고 꼬집습니다. 교회는 성인들을 얘기할 때도 줏대 없이 그저 만사 좋은 게 좋은 연약한 인물들처럼 그리는데 실제 성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 문제라고 비틉니다. 그리고 일곱 가지 대죄(七罪宗)를 가르치지만 사람들이 성적 난잡함만 생각하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원한을 품고 무자비하며 질투, 불의, 폭력을 행하고 거짓되고 교활하며 인색하고, 고집스럽고 교만하고 어리석고 까다롭고 그 어떤 고귀함도 발휘할 수 없어도 성적 난잡함만 없으면 비도덕적인 게 아닌 것처럼 우리의 윤리의식이 우매해졌다고 야유합니다.

 도로시 세어즈가 쓴 왕이 되려고 태어난 남자라는 라디오 방송용 희곡은 BBC에서 194112월에 방송되어 전대미문의 히트를 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이 희곡은 성서의 이야기를 마치 20세기에 일어난 실제사건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고 합니다. 흠정역(킹제임스) 성서와 같은 옛 문투만을 성서적언어인 양 생각하는 청중들에게 세어즈는 20세기 영국의 현대어, 심지어 은어까지 섞어서 성서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입니다. 라디오 방송이라는 당대로선 최신의 매체를 활용해 세어즈는 복음서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얽혀 있는 현실의 이야기로 듣게 합니다. 한편 같은 해에 내놓은 창조주의 마음(The Mind of the Maker)이라는 책은 세어즈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 책에서 세어즈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가지고 인간에게 있는 하느님의 형상이란 창조주 하느님처럼 창조본능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도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작가에게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작가가 에너지를 발휘할 때 책이라는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책은 아이디어의 성육신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창조적인 힘을 책을 통해 경험함으로써 작가와 대화하는 관계에 들어갑니다. 아이디어, 에너지, 창조적인 힘은 서로 구별되지만 셋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즉 한 사건의 세 가지 측면인 것입니다. 삼위일체도 그렇게 이해하면 그리 낯설고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도로시 세어즈는 말년에 이태리어를 배워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데 이 또한 번역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세어즈는 1957년 성탄절 쇼핑을 하고 난 하루 뒤 1217일에 심장동맥 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뜹니다. 세어즈의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읽은 사람은 C.S.루이스였습니다. 세어즈는 자신이 교회위원으로 봉사했던 런던 세인트 앤 교회묘지에 묻힙니다. 교회의 가르침 즉 교리가 교회가 실제 굴러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된 현실을 개탄하며 정통신앙의 교리와 성서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 현실에 말이 되게만들려 했던 세어즈가 우리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봅니다. 매주 니케아신경이나 사도신경을 암송하지만 그 단어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 별 의미가 없는, 또 개인의 삶이나 교회 공동체의 이런저런 결정들이 교리나 신학적 숙고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놓고 세어즈는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지 않을까요?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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