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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시리즈 : 롤런드 앨런(Roland Allen 1868-1947): 바울로처럼 선교하자고 외친 예언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 4.


겉으로 봐서 롤런드 앨런의 삶은 그리 있어 보이지않습니다. 1893년에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은 이후 2년 간 보좌로 일하고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가 7년 뒤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합니다. 그 다음에 버킹엄셔(영국 남부)의 시골교회에 발령을 받아 3년 일하고 물러납니다. 이 이력을 끝으로 앨런은 다시는 교회 발령을 받지 못합니다. 이후 40여 년을 책벌레에 은둔성향마저 있는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연명합니다. 가끔 집전하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선교에 대한 자신의 비 주류적 견해를 전하며 한편 열심히 글을 쓰지만 읽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앨런과 아내는 말년에 케냐 나이로비로 가서 스와힐리어를 배워 몇몇 스와힐리 고전을 영어로 번역합니다. 그는 죽어 나이로비에 묻힙니다.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 서 보지 못한 비주류 인생의 냄새 물씬합니다.

  앨런의 손자 회고담에 이런 게 있습니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쓴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합니다. “물론 읽어도 된다. 하지만 네가 이해할 수는 없을 게다. 너 말고 누구라도 내가 죽은 지 10년은 지나야 이해가 될 게야.” 과연 롤런드 앨런이 죽고 10년쯤 지나자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성공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 성령운동파를 막론하고 롤런드 앨런은 예언자로 존경을 받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한국에서도 롤런드 앨런의 시대를 앞선 선교관은 자성(自省)의 잣대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책으로나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앨런의 견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앨런이 1912년에 출간하고 1927년에 개정판을 낸 바울로의 선교인가 아니면 우리식인가?(Missionary Methods: St Paul's or Ours? *IVP에서 바울의 선교 vs 우리의 선교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함)는 그가 낸 첫 책이면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저술로 꼽힙니다. 이 책에서 앨런은 사도행전과 바울로의 서신들을 자세히 파헤치며 바울로가 어떻게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행할 수 있었는지, 또 그 선교방식이 오늘날에도 먹힐 것인지 논합니다.

  우선 앨런은 바울로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의 몇 가지 특징을 파헤칩니다. 바울로는 미리 어떤 계획이나 전략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대상의 처지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바울로는 그 중에서 지도자(“장로” *성공회는 사제란 이 장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함)를 세우고 이 작은 무리를 맡깁니다. 그러면 이 현지 소그룹은 현지 지도자의 돌봄 아래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계속하는 주체가 됩니다. 바울로는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으며 필요할 때는 감독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다른 곳을 향합니다. 바울로의 선교방식은 처음부터 교회의 자립과 토착화를 이루는 방식입니다. 복음의 핵심을 빼놓고는 대다수 문제들을 현지 교회가 알아서 해결하게끔 위임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현지 교회는 처음부터 재정적으로 자립합니다. 자기네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힘이 닿는다면 다른 지역의 교회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을 정도입니다.

  한편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은 일치운동 같은 건 벌이지 않지만 의당 하나인 교회로 자의식을 갖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성찬례를 나누고 서로 빈번하게 교류합니다. 그리고 바울로를 통해서 하나라는 의식을 갖습니다. 바울로를 통해 세워진 교회들의 하나 됨은 상통’(communion)을 통한 일치입니다. 성공회는 이 신약적 이해를 따라 교회의 하나 됨을 천주교의 위계질서적 일치나 개신교의 교리고백적 일치에서 보려 하지 않고 서로 코이노니아 하는 관계성 즉 상통 안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교단 이름도 상통하는 공동체라 해서 커뮤니온(the Anglican Communion)이라 합니다. 또한 함께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라는 일체감을 챙긴 신약의 교회들처럼 함께 예배드리는 성례전적 영성을 하나 되는 근거로 봅니다. 마치 가족이 생각이 달라도 함께 식사를 하듯 신학이 달라도 함께 주님의 식탁(성찬례)에 모일 수 있으면 가족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를 통해 서로 하나가 되듯 주교를 통한 일치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바울로의 가르침 또한 간명했음도 앨런은 지적합니다. 바울로는 늘 현지인이 이미 갖고 있는 신념과 경험에 접목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순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영적 욕구를 한 차원 높이라고 촉구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말합니다. 현지인과 문화를 대하는 바울로의 풍모는 다분히 회유, 공감적입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입장을 만나도 이를 정직하게 정면으로 다룹니다. 기본적으로 바울로는 현지인들을 존중하면서 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로의 선교방식을 얘기한 다음 앨런은 어째서
20세기의 선교방식은 바울로와 거리가 먼 것인지 묻습니다. 선교회는 우선 거창한 기획부터 합니다. 그런 다음 돈을 모읍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뽑고 훈련시킨 다음 현지에 보내서는 토지와 건물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선교기지와 학교, 병원 등을 세웁니다. 선교지역을 고를 때는 정치 문화적 중요성을 고려합니다. 현지에서는 당연히 서구교육을 많이 받은 선교사가 가부장적 권위를 갖고 모든 문제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계속 돈을 모으고 다음 세대 선교사들을 훈련시킵니다. 이런 선교사 중심 방식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기도 합니다. 현지인들은 자립할 수도 스스로 이끌어갈 수도 없다고 간주합니다. 그리고 현지 문화와 종교는 철저히 거부합니다. 그리고 선교사 본국의 교리와 도덕기준을 복음의 핵심인 양 따르게 하는데 문제는 이게 선교사의 출신교파, 소속 선교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입니다. 현지 교회에 교파주의의 장벽을 심어 장차 서로 상통하기보다는 벽을 쌓게 만드는 씨앗이 됩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돈을 많이 들이면서 선교를 해도 열매는 적습니다. 바울로가 심은 교회들과는 달리 이 선교사 중심 교회들은 대개 당대에 그칩니다.

  롤런드 앨런의 제안은 이러합니다. 선교를 할 때 1) 기본핵심만 간명하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핵심이란 간단한 신경, 세례와 성찬례, 성직, 성서입니다. 이 핵심만 쥐어준 다음엔 선교사들은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지인들이 알아서 자기네 문화와 상황 속에 이 기본핵심의 의미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연히 시간과 돈, 에너지를 낭비할 부차적인 일들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선교사는 현지교회에 가장 불필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2) 성찬례는 교회의 핵심이므로 성찬례를 집전할 사제를 많이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앨런은 자급사제를 많이 추천합니다. 즉 생계는 다른 직업을 통해 하면서 현지 교회를 이끌 자급사제들을 많이 세우라는 것이지요. 3) 교회의 재정적 자립 및 복음전파도 지역에 맡겨두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현지 교회를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새로 생긴 현지 교회가 자기네 식으로 신앙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라는 것입니다.

  롤런드 앨런의 선교관은 1) 복음의 핵심에만 일치하면 되고 나머지는 아디아포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2) 성찬례를 통한 일치를 강조하는 성례전적 영성, 3) 주교와 성직을 관계일치의 정점으로 하는 관계성, 4) 토착화를 지지하는 성육신적 영성 등 지극히 성공회적이라 할 특징을 고루 보여줍니다. 한국에 들어왔던 초대 성공회 선교사들이 롤런드 앨런의 견해, 신약적이라 할 관점을 적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편 20세기 서구선교의 방식이 2천 년 전 바울로의 방식보다 실용적으로도 나을 게 없는데도 앨런의 제안이 마치 고루한 것처럼, 자기네 교회현실에는 맞지 않는 무엇처럼 외면했던 당대의 교만도 돌아보게 합니다. 기본핵심은 상실하고 지엽말단만 붙들고 그게 교회라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앨런이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할지가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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