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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 시리즈 :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 시인 성직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5.

오늘날 조지 허버트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입니다. 한 부류는 시인으로서의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입니다. 허버트는 나이가 좀 위인 존 돈과 함께 17세기 영국의 시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또 한 부류는 허버트를 성스러운 사제와 목자로서 존경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인으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허버트의 성인다운 풍모 역시 세간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허버트는 궁정고관의 명예를 뿌리치고 시골교회의 성직자로 또 학자로서 살아가길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허버트라고 이런 선택을 가볍게 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는 1616년 성직서품을 받을 생각을 잠깐 하다가 포기합니다. 1620년에 계부에게 쓴 편지를 보면 허버트는 캠브리지 대학의 대표연설가가 된 것에 자못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제임스 1세의 궁정에 고관으로 임명되는 게 관행이었고 허버트 역시 그렇게 되길 갈망했습니다. 1624년 허버트는 의회에 선출되어 일하지만 별반 업적을 남기지는 못합니다. 그 해 친구 둘이 사망하고 왕마저도 서거합니다. 그러자 고관이 되려는 허버트의 야망도 이래저래 빛이 바랬던 모양입니다. 1626년 그는 예전에도 고민한 바 있던 성직을 추구하여 부제품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제품은 몇 년을 미루다가 1630년이 돼서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곧 솔즈베리 외곽 시골의 한 작은 교회에 부임해서 일하다가 3년 만에 병에 걸려 1633년 만 40세 생일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사망하고 맙니다.

이 시골사제 생활 허버트가 쓴 글에서 그의 성인다운 풍모를 엿볼 수 있으니 곧 「시골 성직자」(The Country Parson)라는 책입니다. 가르치기도 잘하고 생활의 모본도 보이면서 자기 양떼를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이끄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시골 성직자의 모습이 거기 들어 있습니다. 물론 그 책에서 허버트 자신이 그런 이상을 추구했노라 직접 말하고 있진 않지만 “나무를 겨냥하기보다는 달을 겨냥하여 드높이 살리라”는 말은 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가 쓴 또 다른 책 「성전을 향하는 사제」(A Priest to the Temple)는 성직자의 내적 생활을 강조하는 성직생활지침 같은 책입니다. 거기 들어 있는 예컨대 성직자가 호텔에 투숙할 때는 로비에서 투숙객들을 기도에 초청하라는 식의 지침은 현대인의 귀에는 좀 지나치게 독실한 척하는 모습처럼 들리긴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오늘날의 성직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좋을 훌륭한 것들입니다. 성직자의 가정생활 문제나 신자들의 영적갈증을 채우는 문제, 교회의 분쟁을 성직자가 어떻게 상식과 겸손한 마음을 갖고 다룰지를 조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버트는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교회 사목의 으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이를 통해 마음의 회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사목자로서 그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허버트는 시골교회 신자들에게 전례를 열심히 가르치는 한편 오전 열 시에 아침기도, 오후 네 시에 저녁기도를 매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자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종소리를 듣고 기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고개 숙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배나 기도회를 이끌 때 사제는 “겸손한 톤으로 분명하게 그리고 좀 느리게 발음하지만 너무 느려서 청원의 열정이 수그러들 정도는 아니게끔 외경심과 열정이 목소리에 살아있게끔 하라”는 매우 실질적인 지침을 허버트는 내놓습니다.

허버트는 하느님의 손길은 어디서나 또 모든 것 안에서 본 사람입니다. 하늘에 펼쳐진 장관뿐만 아니라 매일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그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현존의식 가운데 그가 쓴 시들은 사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성전」(The Temp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시들은 명백히 종교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데다 전례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으니 “고백” “순례” “성금요일” 등의 제목을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허버트는 하느님의 손길을 어디서나 보았지만 교회를 우선적인 장소로 사랑했고 교회야말로 하느님의 일이 성서낭독, 가르침, 전례, 축일과 절기를 통해 극장처럼 드러나는 곳이라 했습니다. 너무나 교회적인 시집이면서도 너무나 개인의 내면이 드러나는 이 시집을 어느 작가는 “신성한 영혼이 매 페이지마다 드러나는” 책이라 했다지요. 시를 통해 허버트는 그리스도에게 부르짖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시로서도 세련되었지만 너무나 자발적으로 우러난 이 대화들은 무척이나 생생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거기엔 야심과 복종, 허영과 겸손, 죄와 은총이라는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허버트 자신 그러한 내면의 씨름을 통해 옹색한 벽촌 교회의 발령을 겸손히 받아들였음은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사실 조지 허버트의 시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사람들의 시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시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은 시인입니다. 무엇이 매력이었을까요? 행간에 묻어나는 그의 겸손일까요?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신선한 이미지들 탓일까요? 아니면 영적 정직함일까요? 어떤 이는 허버트의 시를 읽노라면 이 지상에서 천국을 언뜻언뜻 엿보게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과연 허버트에게 천국은 머나먼 미래의 무엇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 먼지 나는 속세를 관통하며 빛나는 무엇이었습니다. 지극히 성공회적이라 할 그 영성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그의 시가 사랑받았던 것은 아닐까요?

허버트를 읽노라면 우리도 신앙생활 중에 야심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서로 상충되는 것 같은 때가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재능 넘치는 조지 허버트가 겸손히 시골생활을 받아들인 것과 비교하며 음미해 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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