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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 시리즈 : 존 돈(John Donne 1573-1631): 죽음과 결투한 시인 성직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5.

성공회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명시 선집 같은 걸 뒤적이다보면 맞닥뜨릴 이름이 존 돈입니다. 그리고 이 인물이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씨름한 누구로 인상을 받기 십상입니다. 존 돈이 하느님의 은총과 선하심을 깊이 느끼고 찬미한 성공회 성직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단편적으로 죽음에 대한 구절만을 접한다면 아마도 뭔가 인상 찌푸린 음울한 시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돈이 죽음에 매혹된 인물인 건 맞습니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찔러보고 사색하며 분석하고 도전한 것 맞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열두 자식 중 여섯을 자기보다 앞세워 보내야 했던 인물이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존 돈의 설교, 기도문, 시에서 두드러진 것은 음침함이 아니라 선하신 은총의 하느님입니다. 수난과 부활이 둘이 아니듯 그에게 죽음과 은총은 서로를 가리킵니다.

사실 젊은 날의 존 돈은 원래 성직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런던에서 법률을 공부할 당시의 그는 술집이나 훤히 꿰고 여자들과 어울리며 음담패설에 가까운 시나 휘갈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601년 엘리자베스 여왕 궁정관료의 딸 앤 모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앤의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자 둘을 달아납니다. 하지만 앤의 아버지는 한사코 돈을 찾아내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앤이 아직 미성년이라는 점이 죄목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돈이 감옥에서 나올 무렵엔 둘의 결혼이 유효한 걸로 인정되었고 돈과 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립니다.

돈은 여자들만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야심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늘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을 사귀려 들었지만 별반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길을 찾아서였는지 좌절을 승화할 길을 찾아서였는지 모르지만 신학에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1607년 무렵에 친구가 성직자를 되라는 권유를 하지만 돈은 거절합니다. 과거의 죄로 보나 현재의 모습으로 보나 자신은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경력이나 쌓으려 들 위인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가 쓴 신학적 글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거니와 사람들은 그에게서 좋은 성직자가 될 자질을 알아봅니다. 그리하여 자신보다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돈은 1615년 성공회 신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2년 뒤에 찾아온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영적 위기를 안겨줍니다. 이 위기는 존 돈이 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제직 소명을 가슴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계기도 됩니다.

한편 성직세계에서 존 돈은 왕의 채플린으로 지명되기도 하고 캠브리지의 신학교수직도 받고 성 바울로 대성당의 주임사제도 되는 등 나름 잘 나갑니다. 그리고 랜슬럿 앤드류 주교와 더불어 당대의 설교가로 대중의 인정도 받습니다. 젊은 날의 야심을 고려한다면 그가 과거 자기 죄에 대한 자각이 없고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영적 위기가 없었다면 어떤 인물이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상시적 자각이 그를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게 하는 기제로 작용했고 그를 구원한 셈입니다. 그의 설교를 보면 기본적으로 길고(한 시간이 넘는 설교가 보통) 지적으로도 만만찮은 수준을 요구한다는 당대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그럼에도 존 돈의 설교를 듣는 사람은 여기 영혼의 풍랑을 겪으며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신앙을 의심하며 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을 숙고하는 가운데 어두운 밤에 하느님과 씨름하는 한 사람, 그러면서도 궁극에는 감사와 찬미로 비상(飛上)하는 너무나 인간적이면서 거룩한 영혼을 느낍니다.

돈이 초년에 쓴 시를 보면 지극히 속되고 에로틱하다는 인상을 받는데 후기의 신앙시 가운데도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여자들에게 썼던 연애시나 후기의 하느님께 바친 신앙시가 서로를 해석하는 열쇠라고도 하고 심지어 존 돈은 달라진 게 아니고 다만 여자들에게 향했던 감정을 하느님께로 돌렸을 뿐이라고 말하는 평자도 있습니다. 존 돈의 문학적 평가는 그 분야 사람들에게 맡기고 다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풍모는 양극성 즉 야심과 겸손,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 죽음과 생명의 은총, 유한과 영원, 회의와 신앙, 도무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있는 그대로 용인되면서 공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섣부른 신앙적 결론, 지나치리만치 용감한 고백들이 때론 심리적 불안의 회피요 더 나쁘게는 타인을 향한 공격성으로 전개되기 일쑤인 교회생활에서 인간경험의 모든 측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출발하는 성공회 영성의 풍모와 깊이는 존 돈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1623년 말에서 이듬해에 이르기까지 돈은 만성재발 열병에 걸립니다. 이 병은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은 회복되는듯하다가 이내 쓰러지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마치 작은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을 멀쩡한 정신으로 자각하고 지켜보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병은 낫지만 돈은 육체적으로 서서히 쇠락하는 과정을 겪다가 1631년 3월 31일 사망합니다. 이 시기에 존 돈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위급한 상황에 바치는 기도문”(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1631년 사순절 첫 금요일에 “죽음의 결투”(Death's Duel)라는 제목의 설교를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하는데 이 또한 그의 가장 뛰어난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돈은 집으로 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설교 다음날 친구가 찾아가보니 얼핏 돈이 슬퍼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왜 슬퍼하냐고 묻자 돈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슬픈 게 아니라네. 간밤에 앞서 떠난 친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했다네.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그들... 나 역시도 며칠 있으면 그리로 갈 테고 이 세상에선 볼 수 없게 되겠지... 나를 향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선하심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어... 난 그분께 내 죄와 비참함 밖에는 드릴 게 없지. 하지만 그분은 나를 나로 보시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맞이해 주실 것을 알아.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평화롭게 죽을 것이라네.”

존 돈이 죽고 난 후 무덤 뒤 벽에 누군가가 숯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이여, 그대에게 돈의 몸이 여기 누워있음을 알리노니 무덤이 그의 영혼을 품었다면 이제 땅은 하늘보다 풍요롭다오!” 존 돈을 읽노라면 천상적 기쁨과 감사만이 신앙의 내용인 양 자기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서둘러 덮거나 부인하는 신앙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안셀름 그린이 말했듯 제대로 슬퍼할 수 있어야 제대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초월은 제대로 품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지 우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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