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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4월 5일 (고난/성지주일) 강론초 (마르 14:1-15:4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1.

2009년 4월 5일 고난주일(성지주일) 성서말씀 
 
(성지축복)
마르 11:1-1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렇게 이르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보아라. 거기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주님이 쓰신다 하고 곧 돌려보내실 것이라고 말하여라." 4 그들이 가보니 과연 어린 나귀가 길가로 난 문 앞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푸는데 5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왜 나귀를 풀어 가오?" 하고 물었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자 그들은 막지 않았다. 7 제자들은 새끼 나귀를 끌고 예수께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놓았다.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8 수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펴놓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9 그리고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10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11 이윽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거기서 이것 저것 모두 둘러보시고 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그래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아로 가셨다.

(고난)
이사 50:4-9상
4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5 주 야훼께서 나의 귀를 열어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6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7 주 야훼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8 하느님께서 나의 죄없음을 알아주시고 옆에 계시는데,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 법정으로 가자. 누가 나와 시비를 가리려느냐? 겨루어보자. 9상 주 야훼께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그르다고 하느냐?

필립 2:5-11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마르 14:1-15:47

1 과월절 이틀 전 곧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몰래 예수를 잡아죽일까 하고 궁리하였다. 2 그러면서도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만은 피하자." 하였다.
3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4 그러자 거기 같이 있던 몇 사람이 매우 분개하여 "왜 향유를 이렇게 낭비하는가? 5 이것을 팔면 삼백 데나리온도 더 받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터인데!" 하고 투덜거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6 그러자 예수께서는 "참견하지 마라. 이 여자는 나에게 갸륵한 일을 했는데 왜 괴롭히느냐? 7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으니 도우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도울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8 이 여자는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것이다. 9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0 그 때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사제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하였다. 11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12 무교절 첫 날에는 과월절 양을 잡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날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저희가 어디 가서 차렸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성안에 들어가면 물동이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을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눌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15 그러면 그가 이미 자리가 다 마련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터이니 거기에다 준비해 놓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제자들이 떠나 성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래서 거기에다 과월절 음식을 준비하였다. 17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가셨다. 18 그들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터인데 그 사람도 지금 나와 함께 먹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19 이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하며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20 예수께서는 "그 사람은 너희 열둘 중의 하나인데 지금 나와 한 그릇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21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을 터이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구나.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눠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24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25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28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0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셨다. 31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힘주어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다 같은 말을 하였다. 32 그들은 게쎄마니라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어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34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시고는 35 조금 앞으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으면 수난의 시간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하시며 36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말씀하셨다. 37 이렇게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38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시고 39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0 그리고 다시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졸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41 예수께서는 세 번째 다녀오셔서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그만하면 넉넉하다. 자, 때가 왔다.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42 일어나 가자.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3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유다가 나타났다. 그와 함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떼지어 왔다. 44 그런데 배반자는 그들과 미리 암호를 짜고 "내가 입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붙잡아서 놓치지 말고 끌고 가라." 하고 일러두었던 것이다. 45 그가 예수께 다가 와서 "선생님!" 하고 인사하면서 입을 맞추자 46 무리가 달려들어 예수를 붙잡았다. 47 그 때 예수와 함께 서 있던 사람 하나가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의 귀를 쳐서 잘라버렸다. 48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잡으러 왔으니 내가 강도란 말이냐? 49 너희는 내가 전에 날마다 성전에서 같이 있으면서 가르칠 때에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다." 50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 51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52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53 그들이 예수를 대사제에게 끌고 갔는데 다른 대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사제의 관저 안뜰까지 들어가서 경비원들 틈에 끼여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대사제들과 온 의회는 예수를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찾고 있었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였다. 56 많은 사람이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57 그러자 몇 사람이 일어서서 이렇게 거짓 증언을 했다. 58 "우리는 이 사람이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 하고 큰소리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59 그러나 이 증언을 하는 데도 그들의 말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60 그 때에 대사제가 한가운데 나서서 예수께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토록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그대는 할 말이 없는가?" 하고 물었다.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문 채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그대가 과연 찬양을 받으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하고 물었다. 62 예수께서는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63 이 말을 듣고 대사제는 자기 옷을 찢으며 "이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방금 이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하고 묻자 사람들은 일제히 예수는 사형감이라고 단정하였다. 65 어떤 자들은 예수께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면서 "자, 누가 때렸는지 알아맞혀 보아라." 하며 조롱하였다. 경비원들도 예수께 손찌검을 하였다. 66 그 동안 베드로는 뜰 아래쪽에 있었는데 대사제의 여종 하나가 오더니 67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하고 말하였다. 68 그러나 베드로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리고 베드로가 대문께로 나가자 69 그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시 "저 사람은 예수와 한패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70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을 또다시 부인하였다. 얼마 뒤에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시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패일 거요." 하고 말하였다. 71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오." 하고 잡아떼었다. 72 바로 그 때에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1 날이 밝자 곧 대사제들은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비롯하여 온 의회를 소집하고 의논한 끝에 예수를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끌고 가 넘기었다. 2 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 대사제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자 4 빌라도는 예수께 "보라.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 죄목을 들어 고발하고 있는데 너는 할 말이 하나도 없느냐?" 하고 다시 물었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6 명절 때마다 총독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7 마침 그 때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던 폭도들 가운데 바라빠라는 사람이 있었다. 8 군중은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달라고 요구하였다. 9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다인의 왕을 놓아달라는 것이냐?" 하고 물었다. 10 빌라도는 대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한 나머지 자기에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1 빌라도의 말을 들은 대사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놓아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군중에게 "그러면 너희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군중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14 빌라도가 "도대체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15 그래서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주었다. 16 병사들은 예수를 총독 관저 뜰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전 부대원을 불러들였다. 17 그리고 예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운 다음 18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외치면서 경례하였다. 19 또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무릎을 꿇고 경배하였다. 20 이렇게 희롱한 뒤에 그 자주색 옷을 벗기고 예수의 옷을 도로 입혀서 십자가에 못박으러 끌고 나갔다. 21 그 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오다가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병사들은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22 그들은 예수를 끌고 골고타라는 곳으로 갔다. 골고타는 해골산이라는 뜻이다. 23 그들은 포도주에 몰약을 타서 예수께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드시지 않았다. 24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각자의 몫을 정하여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25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예수의 죄목을 적은 명패에는 "유다인의 왕" 이라고 씌어 있었다. 27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도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 29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하하,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목숨이나 건져보아라." 하며 모욕하였다. 31 같은 모양으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도 조롱하며 "남을 살리면서 자기는 살리지 못하는구나! 32 어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나 보자. 그렇게만 한다면 우린들 안 믿을 수 있겠느냐?" 하고 서로 지껄였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들까지도 예수를 모욕하였다.
33 낮 열두 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둠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35 거기에 서 있던 사람들 몇이 이 말을 듣고 "저것 봐!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는구나." 하였다. 36 어떤 사람은 달려오더니 4)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 끝에 꽂아 예수의 입에 대면서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편 69:21. 37 예수께서는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38 그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39 예수를 지켜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예수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시는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말하였다. 40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41 그들은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따라다니며 예수께 시중을 들던 여자들이다. 그 밖에도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거기에 많이 있었다.
42 날이 이미 저물었다.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43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었고 하느님 나라를 열심히 대망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44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백인대장을 불러 그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가 물어보았다. 45 그리고 백인대장에게서 예수가 분명히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46 요셉은 시체를 내려다가 미리 사가지고 온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았다. 47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모신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영원하신 하느님, 지극한 사랑으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성자께서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케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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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현장! 오늘 고난주일부터 시작되는 성주간의 전례는 우리를 그 때 그 곳으로 데려갑니다. 오늘 수난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를 되묻습니다.

종려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했던 백성들, 그들은 곧 냉혹하게 “십자가에 못박으시오!”을 외치게 됩니다. 예수님을 내 온갖 문제의 해결사로 여겼다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하여 신앙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곤 했던 제 옛 모습도 그 군중 가운데 있습니다.

정치적인 언사가 내 입장과 다르면 그가 어떤 선한 의도인지에 관심 없이,  내 맘대로 빨갱이, 꼴통보수, 맹신자, 이단자로 정죄하며 냉소하고 미워하는 일을 의롭게 여기던 나는 아마도 대사제가 예수님께 신성모독의 죄목을 씌우려고 애쓰던 산헤드린 재판정에 기꺼이 앉기를 즐겼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인가?” 물었던 것은 대답을 듣자는 게 아니라 빈정거리자는 의도인 듯합니다. 진리는 고상한 관념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한담의 주제이지 현실의 돈과 권력 앞에서는 도통 쓸데없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나는 빌라도를 이해합니다. 고문이든 살인이든 국가와 사회와 내가 속한 조직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면 나는 태연히 악역을 감당할 뿐이고 그건 내 책임은 아니라는 내 합리적인 생각은 무죄를 알면서도 사형선고를 내리고 손을 씻는 빌라도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의 총독쯤 되려면 그래야 합니다.

분위기를 따라 하게되는 호기있는 장담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를 당혹스런 현실 속에서 절감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빛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히 죽음이었을까요? 충분히 이해하고 따랐다고 생각했던 스승 예수님이었는데 그 분을 저만치 세상의 평가에 비추어 바로보니 그 분이 진정 무엇을 의도하고 계신 것인지 그만 혼란스러워진 것은 아닐까요? 나의 신앙생활이 과연 죽음을 이길 만큼 충분한 은총을 힘입고 있는 것인지, 나의 헌신과 수고가 진정 예수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종종 의심하고 자신 없어 하는 나는 베드로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의 믿음이야말로 교회를 세울 반석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의 이 연약한 믿음으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시편 22편의 말씀을 비통히 외치며 운명하신 예수님의 입장을 아직 나는 감히 나의 것으로 하지 못합니다. 대신 “이 분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고백한 백부장의 밝은 눈이 부러워할 뿐인 것은 매번 성찬례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뵈오면서도 나는 내가 원하는 또 다른 신기한 기적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200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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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신비와 현실

도대체 신앙생활을 왜 합니까? 지나칠 정도로 제가 되묻고 교우들께도 물어대는 질문입니다.
세상은 신앙적인 가치와는 정반대의 가치를 따라서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도 세상에서 돈 벌고 권력 얻고 이름 날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표현이 그 돈과 권력과 명예의 일부를 차지하는 일을 신앙의 힘을 빌어 이루었다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을 종종 듣게 되는데 이것은 어쩌면 씁쓸한 넌센스가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세상기준으로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모든 것들을 오물처럼 여긴다는 바울로의 고백을 듣지 않습니까?(필립3:8)

그럼 더 신앙적인 답은 영원한 생명, 곧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자격을 얻기 위해서 이 땅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경건하게, 영혼구원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일까요?

왜 신앙생활을 하는가의 답을 우리는 이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얻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란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뒤따라가는 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은 신앙생활이란 사실 그리스도교의 것이 아니라 단순한 무속신앙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셨다는 구원의 역사는 무엇일까요? 모든 문제의 완벽한 해결사로 여겨지시는 그 예수님께서 정작 스스로의 운명은 어떻게 해결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단답형의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가 과연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어찌하여 주님이 십자가가 믿는 이에게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현장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소원성취의 열망으로 하느님을 찾다가, 내 뜻대로가 아니면 표변하여 하느님을 원망하는 우리가 세운 십자가입니다. 하느님의 뜻, 그 분의 의로움을 끝까지 추구하면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구조악 속에서 몇 사람을 해치우면 잠잠해질 것이라 장담하고 실행하는 악한 이들의 음모가 세운 십자가입니다. 선하다는 우리에게도 그런 악한 마음이 조금씩 숨어있는 것은 아닐지... 예수님처럼 그렇게 십자가에 죽게 될까봐 두려워 침묵하고 달아나는 제자들이 또한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의 온갖 죄악과 어리석음과 탐욕이 협잡하여 세운 십자가입니다.

그런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감내하신 주님의 사랑은 신비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악에 대한 용서인 동시에 우리도 그렇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요청입니다. 그 사랑에 함께 합일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이야말로 고통스럽고 모순된 우리 현실을 살아내는 궁극적인 지혜요 능력이라는 것인데!
아, 나는 지금 무슨 마음으로 저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2006.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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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사랑, 용서, 회개의 십자가

오늘은 성지(聖枝)주일이자 고난(苦難)주일로 지킵니다.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길을 백성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며 환영하고 왕 되신 예수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예수님이 무력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독성죄로 몰리자 군중들은 돌변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성난 목소리로 외쳐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바로 이러한 이중성을 가진 인간들로 인하여, 그렇게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향하여,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을 못박는 일에 앞장선 가증스런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통을 즐기시거나 죽음에 초연하신 분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고난은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인간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피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 받으시게 된 수난의 잔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끝없이 주님을 오해하고 박대하고 모욕하고 부인하고 못 박습니다. 우리의 무지와 오만과 냉정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해골산 위에 십자가를 세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우리가 세운 그 십자가는 엄청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그 두려운 죄를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온전히 받으셔서 배신과 고통과 모욕과 죽음의 쓴 잔을 스스로 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원한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찌르는 못과 창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못과 창에 찔려 흐르는 주님의 피는 우리를 용서하고 생명을 주고 새 힘과 기회를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악의 결과를 하느님은 몸소 사랑으로 피 흘려 받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 사랑과 용서를 깨닫기에 회개합니다. 우리가 지혜롭고 착해서 회개하는 것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할 수 있을 때에야 참되게 회개하고 감히 이제는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 믿음과 힘과 지혜가 모자람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게 됩니다. 오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 이제는 의로운 죄인”임을 확인합니다.(2003.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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