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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by 분당교회 2021. 11. 23.

안녕하십니까? 

분당교회가 늘 성공회대학교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정성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당교회 교우님들께 직접 인사드리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공회대학교는 대한성공회 성직자 양성을 위해 1914년 강화도에 세워진 성 미가엘 신학원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108년이 되는 긴 세월 동안 민족의 고난과 더불어 많은 어려움도 겪었지만, 대한성공회 성직자는 모두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서 훈련을 받으며 성직의 길을 준비하는 성소의 요람입니다. 성소란 거룩한 부르심, 성스러운 소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연단하는 성소의 요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의 요람을 소중히 돌보듯, 대한성공회 미래의 요람인 성공회대 신학대학원도 소중히 여기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분당교회 교우님들께서 성공회대학교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에 관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이 벌써 성탄을 준비하는 절기인 대림절입니다. 대림 첫주는 교회력으로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주일이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정해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왕국이란 왕의 통치권이 행사하는 권역을 뜻합니다. 이 왕국 안에서 왕은 유일한 통치권자입니다. 만일 왕이 둘이 있으면 전쟁이 벌어집니다.

  • 가정도 마찬가지죠. 부부싸움이 잦은 집안은 아마도 아내와 남편이 각각 자신이 왕이라고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왕국의 통치권은 단지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에도 적용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국에서는 연호를 사용합니다. 왕이 즉위한 해부터 햇수를 세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왕의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저희 조부모님 세대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안타깝게도 일왕의 연호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올해가 서기 2021년인데, 무심코 사용하고 있지만 실은 예수님 탄생 후 2021년이란 뜻입니다. 어찌보면 서기를 사용하는 세계는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오늘 복음 본문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하고 묻습니다.

로마 황제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황제의 통치권을 수호하는 일입니다. 황제에게 도전하는 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이 총독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피고의 생사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의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이 대답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어떤 누구가 왕을 참칭했는가, 아닌가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왕국에 관심이 있습니다.

약 200년 전, 1818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칼 마르크스라는 철학자는 새로운 왕국을 고안해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논리에 기반한 왕국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물질 만이 세계의 근원적 존재이므로, 신이라든지 정신, 도덕이나 문화는 모두 물질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정의했습니다. 전 세계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권력을 잡아 모두 사람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대로 소비할 수 있는 공산주의가 실현되면 마침내 유토피아, 즉 지상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빌라도에게 로마제국 외에 다른 왕국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사상에도 공산주의 외에 다른 왕국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혁명이라는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왕국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인민의 아편으로 여겨졌으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겸손 같은 가르침은 한낱 하찮은 위선일 뿐이었습니다. 언뜻 듣기에 꽤 매력적인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왕국의 허구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비극을 겪게 한 후 20세기 끝자락에서야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붕괴 되면서 비로소 입증되었습니다.

 

저마다의 왕국을 내세워 인류를 불행으로 몰고 간 것은 공산주의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급을 성공한 후에 광야에서 직면한 첫 번째 도전은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는 맘몬주의였습니다. 황금 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오늘날에는 “돈이면 다 돼”라며 우리 귓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 자본주의 왕국의 교리입니다. 장로직하려면 최소한 얼마를 헌금해야 한다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비록 일부 교회의 이야기지만 교회도 자본주의 왕국에 점령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야를 조금 멀리 돌려보겠습니다.

1185년 일본 시모노세키항 부근 바다에서는 당시 양대 세력인, 겐지 가문과 헤이케 가문이 일본 패권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겨룬 단노우라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천황은 헤이케 가문의 보호 아래 있던 안토쿠라는 8살짜리 어린아이였습니다. 이 어린 천황의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양쪽이 총동원한 전함들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지켜보다가, 아군의 마지막 함선이 불타 가라앉는 광경을 보고서는 어린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 이제 폐하의 왕국은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어요? 할머니” “저 바닷속에 있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잘 모시겠으니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하면서 어린 손자를 치마폭에 감싸고 검푸른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8살의 어린 왕이 다스릴 왕국이 저 바다 밑에 있었을까요? 이 지상의 왕국을 떠나 다른 시공간에 왕국을 말하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때로 일이 잘 안 풀릴 때 이번 생애에서는 포기한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이번 생애에서 멋진 몸매는 포기야.

이번 생애에서 결혼은 포기야.

이번 생애에서 집 사는 건 포기야....”

 

이 젊은 친구들에게 과연 멋진 연애와 명문대, 결혼과 집이 주어지는 또 다른 생이 있을런지요? 실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 외에 다른 왕국, 다른 생애,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과연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통치될까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1:13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 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찾고 있던 고향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대한성공회, 성공회대학교는 모두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사신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분들은 대부분 자기네 나라에서도 최고 엘리트였으나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해서 낯선 땅 조선에 와서 목숨까지도 바쳤습니다. 이들에게 선교자금을 모아 준 것은 그 나라의 평범한 신자들이었습니다. 오래 전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께서 밥을 지을 때 성미를 떠서 헌금했듯이,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 바친 선교헌금에 의해 이 땅의 선교가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으나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정신적으로는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왕국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지상의 왕국이 아닌 하느님의 나라를 믿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왕국, 똑같은 개념입니다. 우리는 지상의 왕국이 아닌 다른 왕국이 있음을 분명히 압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헌법을 초안할 때, 조선왕조를 더 이상 잇지 않고 공화주의를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왕 대신 헌법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

벌써 5년 전이네요.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비상식적인 소문들이 뉴스가 되고,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자격이 없는 사적인 관계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거리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뒤덮었습니다. 그때 많은 국민들이 헌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하느님 나라의 헌법은 어떤 내용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내용이 헌법 제 1조와 11조입니다.

 헌법 제 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느님 나라 헌법을 제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1조 ①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성령의 감동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②이 나라의 주권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①이 나라에서는 누구든지 아무런 차별 없이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 받는다.

이 나라의 시민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사신 권한이며, 이 나리의 시민은 그 어떤 죄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을 수 있으며, 영원히 구원받을 권리를 갖는다.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을 맞아, 우리는 다함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음에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는 이 지상에서는 나라의 법에 따라야 하고 돈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매일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또 다른 왕국, 하느님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헌법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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