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타락한 성전은 파괴되어야 했다!

by 분당교회 2021. 11. 14.

공지해드린 바와 같이 교회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예배 회복을 위하여 오늘부터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으로 나누어 격주로 성당대면예배를 드립니다. 격주라도 오전 11시에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다음 세대에 신앙이 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협조 바랍니다.

 

어제 11월13일은 1970년에 기독청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날이었습니다. 그분의 희생 덕분으로 한국의 노동현실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산재로 죽임을 당하고 있고, 특별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전태일 거리를 걸으며“라는 시를 읽어 드린 후, 설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청계천 전태일 거리를 걸으며 기도한다

단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는 내가

배부른 나를 위해 늘 기도하다가

단 한 번이라도 남의 배고픔을 위해 기도한다

 

청계천 전태일 거리를 걸으며 질문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살아왔는가를

단 한 번이라도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적이 있는가를

 

침묵은 항상 말을 해야 한다고

침묵은 진리의 말을 할 수 있어야 침묵이라고

정의는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사랑이라고

첫눈 오는 날, 

청계천 전태일 거리의 버들다리를 건너며

 

누가 버린 신문 한 장을 줍는다

서울역 염천교 다리 밑에서 

신문 한 장을 덮고

엄동설한의 잠을 자던

초승달처럼 웅크린 그의 희망을 생각하며

 

청계천 전태일 거리를 걷는다

별들이 땅에서 빛난다

함박눈이 땅에서 내린다

인간을 위해 목숨을 버린 인간의 불꽃이

고요히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교회력으로 다음 주일 11월 21일은 한 해를 마감하는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그 다음 주일 11월 28일은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절입니다. 올 해 나해 연중주일 마르코복음을 듣는 것은 오늘로 끝나게 됩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가이사리아 필립보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한 긴 예수님의 여정을 보면서 제자도에 대해서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성전파괴 예언을 듣게 됩니다. 

 

성전파괴 예언이 나오는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13장은 종말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 마르코의 소묵시록이라고 불립니다. 오늘은 그 내용까지 다 다루기는 어렵고, 성전파괴 예언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그날 일요일이 됩니다 성전을 들러보고 나오셨고 다음 날 월요일에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화요일에 다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예수님께 항의하면서 토론이 시작되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시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화요일에 성전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고, 저녁이 되서야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을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성전 방문이었습니다. 

 

그 때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성전이 얼마나 웅장하고 볼 만합니까?” 감탄을 쏟아 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보는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대제가 건축한 성전입니다. 헤롯 대제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기원전 2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9년 만에 성전의 본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부속 건물을 포함해서 전체 성전은 서기 63년에 가서야 완성되었습니다. 

 

헤롯 성전은 이전의 제 2성전인 즈룹빠벨 성전보다 두 배나 큰 거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성전에 사용된 돌 하나의 크기가 가로 3-5미터, 세로 2-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돌들을 목재처럼 아구를 정확하게 맞추어 쌓아 올렸으니 그 건축술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보는 이가 감탄할 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의 말을 들으시고 이내, 성전 파괴를 예언하신 겁니다. “2 예수께서는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전을 빠져 나오신 예수님은 성전과 마주한 올리브 산에 앉으셔서 성전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성전파괴를 예언하고 성전을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로 알려져 있지만, 건축일 하는 석수이기에 저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려야 했는지 생각하셨을 겁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이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입니다. 돌을 새기기 위해 수많은 노동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위대한 건축물들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의 폭압에 죽어가며 일했던 노예들의 피땀으로 쌓아진 것입니다. 

 

주님은 거대한 돌들로 만들어진 성전을 보시며, 민중들의 피땀을 보셨을 것이고 그 화려해 보이는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죄악을 직시하셨을 것입니다.  월요일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키시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1:17,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성전은 누구든지 와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오늘 1독서에는 아들이 없어 서러움을 받는 한나가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제사장 엘리가 보기에 술 취한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아들이 없어 서러워 부르짖던 한나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갈 하느님의 사람이 없어 슬퍼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았고, 눈물로 간구해서 얻은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 사무엘이 되게 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한나의 기도가 위대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성전은, 하느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뉘우치며 자신을 대신하여 동물을 잡아 바치는 희생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 예배를 통해 죄 사함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느님의 집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열심히 성전 제사를 바치는데도 이스라엘 안에는 공평과 정의가 무너지고 불의와 부패가 판을 쳤습니다. 이사야 1장입니다.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것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17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바치는 기도와 예배가 형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복을 받으려는 탐욕에 우상인 바알을 섬기면서도, 하느님께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느님은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하여 구원의 감격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으로 세상 속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합니다. 

 

예수님 당대 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나 원로들 등 성전계급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성전 제사를 이용했습니다. 성전세를 바치는 동전으로 바꿔주면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동물을 팔면서, 엄청난 이윤을 남겨 자신들의 배만 불렸습니다. 

 

추수감사주일로 지킨 지난주 나해 연중 32주일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거룩한 척 하는 율법학자들을 비판하신 후, 성전 헌금궤 앞에 앉아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바라보셨습니다. 많은 돈을 헌금하는 부자들 뒤에 렙톤 두 닢을 헌금하는 과부를 보시고는 ‘부자들은 넉넉한 데서 얼마를 봉헌한 것이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순전하게 헌금한 과부의 돈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종교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면서 성전에 와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은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남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성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성전정화 후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9,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십자가와 부활로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께 나가는 새로운 성전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2독서 히브리서는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을 만나는 새로운 성전이라고 증거 합니다. “12절,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오직 한 번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제물로 받으신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16 “‘그 날 이후, 내가 그들과 맺을 계약은 이것이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그들의 생각에 새겨줄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17 그리고 나서 “나는 이제 결코 그들의 죄와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하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 어떤 희생제물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 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사제가 계십니다. 22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으로 하느님께 나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는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셨던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선교의 비전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2독서 히브리서 10장  24절이 말하는 “사랑과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좋은 일!

 

사도 바울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에페 2: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선한 생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5: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착한 행실!

 

사랑으로 행하는 좋은 일, 선한 일, 착한 행실이란 성공회 선교정신 5Marks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와 선교구제헌금, 또 절기헌금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헌신함으로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는” 세 번째 선교정신을 실천합니다. 

 

우리 교회는 땅의 가치보다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도록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고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네 번째 선교정신을 실천합니다. 

 

오늘 오후 ‘성공회생명기후연대’를 결성하는데, 우리교회가 선교정신 다섯 번째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생명 회복과 유지에 헌신”하는 녹색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2독서 히브리서 10장 24절, “서로 격려”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서로를 권면하면서, 공동체가 함께 제자공동체로 서가야 합니다. 이것이 선교정신 두 번째 내용입니다. “새 신자를 가르치고 세례주고 양육하기”

 

서로 격려하는 제자공동체로 서 가기 위해서 25절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더욱 열심히 모여”, 하느님께 전심으로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격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세상에 드러내며 선교정신 첫 번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교구 표어 - “친교의 신앙으로 선교하는 제자공동체!” - 가 담고 있는 내용이 이것입니다.

 

성공회 분당교회는 “친교의 신앙으로” - 하느님과 친교하는 예배로, 성도 간에 격려하는 코이노니아로, “선교하는” - 5Marks를 실천하는, “제자공동체”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