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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도를 부르신 주님의 목적

by 분당교회 2021. 8. 1.

폭염과 코로나로 힘든 가운데 어느덧 8월이 되었습니다. 전세계가 델타 변이로 확진자가 폭증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코로나로부터 자유롭게 될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기억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리두기 4단계 방역지침을 잘 지키시며 이겨 가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고생하는 방역당국과 의료진들에게,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힘주시기를 기도합니다.

 

8월에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행사가 많습니다. 14일 토요일 오전 10시30분에는 ‘성평등한 우리 교회’라는 주제로 대한성공회 여성국에서 진행하는 강의가 있습니다. 줌 링크를 교회 단톡방에 올려 드릴 테니 여성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8월14일과 21일 두 주 토요일 저녁 7시에는 ‘강남교무구 학생회 연합 온라인 수련회’가 있고요. 8월 22일, 29일 주일 오후 2시에는 ‘온라인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합니다.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의 협조를 구합니다. 

 

여성국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세계성공회 자문위원회 ACC(Anglican Consultative Council)가 2년 전 홍콩에서 17차 회의로 모여 세계성공회에 제안한 “안전한 교회 만들기”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강좌입니다. 

 

ACC 세계성공회 자문위원회란 3년마다 모여 세계성공회가 공동으로 펼쳐가야 하는 선교 아젠다를 정리하여 제시하는 모임입니다. 16차 회의에서는 Intentional Discipleship and Disciple-Making ‘제자도와 제자삼기’를 제시했었습니다. 

 

이번 성공회신문 사설이 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도입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세계성공회는 “제자도와 제자삼기”를 이 시대 교회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전 세계적인 불평등과 기후의기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이것은 제자도를 살아내지 못한 교회에 책임이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문제의식은 코로나19로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사설은 시대가 요청하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Intentional, 목적의식적으로 신자를 제자화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작년 2020년 서울교구 표어가 ‘신자에서 제자’로였습니다. 

 

‘신자에서 제자로’라는 표어는 교우들이 신자와 제자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 주변에 군중이 있고 제자가 있습니다. 요한 6:24, “그런데 군중은 거기에서도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오늘 읽은 독서를 통해 보게 되는 군중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출애 16:2-3, 2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3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요한 6:26,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어떤 특징이 발견됩니까? 자기의 육체적인 필요 때문에 주님을 찾는다는 겁니다.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지난주일 복음을 보면, 필요가 채워지니 필요를 채워주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했습니다. 요한 6:15, “예수께서는 그들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만 불려줄 알라딘의 요술 램프 동화에 나오는 요정 지니로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군중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필요했기에 하느님은 광야의 여정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러면서 군중들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하신 말씀을 봅니다. 요한 6:26-27,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 즉 하느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의 기대였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발생되기를 바라셨기에 군중들이 그 앞에 모여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여러 가지로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육체적인 필요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군중이라면, 제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서신이 그것을 알게 해 줍니다. 제자들은 하느님이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에페 4:1,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오늘 서신 에페소서를 살펴보면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신자 개개인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3절,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성숙한 인간”이라는 표현이 제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제자가 바울서신에서는 온전한, 성숙한 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됩니다. 

 

성숙한 사람, 제자란 예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고(에페 4:2,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 진리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에페 4:14, 그 때에는 우리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인간의 간교한 유혹이나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자 개개인이 가져야 하는 신앙의 목표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온전하게 되면서, 즉 예수님의 인격으로 자라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자기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라나게 됩니다. 에페 4:16,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라난다’는 말을 양적 성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양적 성장으로 이해한다면, 엄청난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되어 쇠락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난다’는 말은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구어가는 선교공동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바로 선교정신 5Marks입니다. 이 역시 ACC 세계성공회 자문위원회가 정리하여 1990년에 발표한 선교지표입니다. 

 

오랜만에 함께 외워봅시다. 1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한다. 2 새신자를 가르치고 세례주고 양육한다. 3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한다. 4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며 모든 폭력에 도전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노력한다. 5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 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한다.

 

신자 개개인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교회가 5Marks를 실천하는 선교공동체가 되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고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제자도입니다. 

 

하지만 신자에서 제자로 성숙하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에페 4장 12절을 보면,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개역개정에는 “온전케 되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말은 “탈골한 뼈를 맞추다”는 정형외과 용어입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이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하고 가나안땅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지만, 40년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노예근성을 벗어내는 광야를 통과해야 가나안에 들어가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이스라엘이 될 수 있듯이 신자들도 말씀으로 생각과 마음을 바뀌는 훈련을 받아야만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어로 제자는 Discipleship이고 훈련은 Discipline입니다. 훈련 없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올림픽의 영광을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피나는 훈련을 합니까?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선교공동체를 세워가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 꾸준하고 성실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훈련되어 준비가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다시 12절을 보면,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준비되면 봉사활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예수로 성숙해 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를 세우고 일상의 삶 가운데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여러분은 군중으로 머무르고 싶습니까? 제자로 자라나고 싶습니까? 제자로 자라나고 싶은 교우들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준비되어야 합니다.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라고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우셨습니다. 에페 4:11,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목자와 교사’ 앞에는 정관사가 하나입니다. 목자이며 교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부르심이 여러분을 준비시키는 ‘목자와 교사’입니다.

 

물론 이 일은 저 혼자의 일만이 아닙니다. 아까 읽은 12절을 우리 교회 버전으로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은 주교로, 어떤 사람들은 사제로, 어떤 사람들은 신자사역자로, 어떤 사람들은 교회위원, 또래모임 섬김이, 교회학교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교회에 세우신 직분자들과 잘 준비하여 올 가을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신자에서 제자로 성숙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을 가지고자 합니다. 

 

성공회신문 사설의 끝 부분을 읽어드리고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 교회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거듭 “제자삼기”이다. 대면이 어려워 제자삼기가 불가능하다는 핑계를 될 수 없다. 하느님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비대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도구들을 준비시켜 주셨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예배, 기도회 뿐만 아니라, 일대일 양육, 소그룹 성경공부, 특강 등이 가능하다. 몇몇 교회들이 온라인을 통해 소그룹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몇몇 교회여서는 안 된다. 대한성공회 전(全) 교회에서 전(全) 성직자들과 전(全) 교회위원들이 제자로 살아가며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해야 할 때이다. 제자도와 제자삼기는 의식적(Intentional)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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