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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새로운 존재!

by 분당교회 2021. 6. 13.

지난 주간에도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었습니다. 광주 재개발현장에서 철거하던 빌딩이 무너져 버스 정류장을 덮치는 바람에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공기를 단축해 돈을 벌고자 안전을 도모하지 않은 참사였습니다. 

 

언제나 돈보다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카톡으로 전해드렸지만, 엊그제에는 지난 4월 25일 교회창립기념주일에 견진성사를 받은 새가족 이강훈 안드레아 형제의 모친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며칠 전 9차 항암을 마치고 댁으로 돌아오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하던 지요? 

 

별세하신 이강훈 형제의 어머님께서 주님 품에 안식하시길, 유가족들에게는 주님의 위로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어제는 방랑 식객 요리연구가 임지호님이 65세 나이이신데 심방 마비로 별세하셨더군요. 

 

연이어 죽음의 소식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게 된다는 3가지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3가지 질문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고 많은 종교와 철학이 생겨난 것 이구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여정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지요? 

 

이 질문들이 생각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오늘 서신을 보았더니, 사도 바울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그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서신에서 사도 바울로는 육체를 떠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하며, 실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빨리 죽어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입니다. 고후 5:8,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든든하며 오히려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죽는다고 누구나 다 하느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후 4: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용서하시는 사랑의 주님이 아니라, 심판하시는 정의의 하느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를 알라고 합니다. 11절,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죽음은 심판주이신 예수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그 심판을 통과해 주님과 함께 살고픈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9절의 말씀처럼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고후 5:9,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이 고백대로 사도 바울로는 평생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이 구절을 개역성경으로 읽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자신의 신분을 감격스러워 하는 사도 바울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보라!”라는 표현입니다. “이전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보라! 내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어떤 존재로 변화되었는지를!”

 

사도 바울로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벌을 지닌 스팩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신념으로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필립 3:5-6, “5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로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을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고후 5:14,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리스도 한 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셨으니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임을 알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니,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고후 5:15,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으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정체성은 삶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자신의 존재가 변화한 것에 대한 감격으로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그 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26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 30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공적인 삶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마르 1:14-15,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시고자 제자들을 부르셨고 옆에서 보고 듣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두 가지의 그림 언어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해 주십니다. 

 

첫 번째, 씨앗을 품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땅입니다.

 

오늘 복음 전반부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4장 앞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연결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그 씨가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좋은 땅이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었습니다.

 

좋은 땅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는 가운데, 사탄을 이기고, 세상의 환란이나 고난도 이기고, 세상의 유혹이나 근심 걱정을 이겨내, 마침내 말씀이 그 삶에 열매로 맺어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추수 때에 결실을 거두는 농부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 됩니다. 마르 4: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 을 알고 곧 낫을 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도 그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됩니다. 그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두 번째는 겨자씨입니다. 

 

겨자씨는 0,025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땅에 뿌려지면 작게는 1.8미터에서 크게는 5미터까지도 자라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라나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여 쉬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새들이 상징하는 것은 이방민족입니다. 오늘 1독서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확장 되는 비전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이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는 오늘 1독서에 나오는 백향목처럼 크고 세력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낮은 자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되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의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인도 캘커타의 어느 좁은 골목에서 한 수녀가 땅에 금을 그어 ‘학교’라 하고 빈민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온 세상을 묶는 ‘사랑의 고리’로 자라났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이 땅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좋은 땅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겨자씨들이 땅에 묻히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공회 분당교회에도 하느님 나라가 꽃 피고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성공회 분당교회는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품은 새로운 존재입니다. 씨앗을 자라나게 하는 좋은 땅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기도하고 헌신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고 있습니다. 힘에 닿도록 구제하고 나누며,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날,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날에,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원한 안식을 허락 하실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소망으로 인내하며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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