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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진정 두려워해야 분!

by 분당교회 2021. 6. 20.

종일 군중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쉼이 필요하셨던 것 같은데 5장을 보면, 호수를 건너가자마자 군대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군중을 남겨 둔 채 예수님이 타신 배가 앞서가고, 다른 배들도 따라서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에 들이 치고, 배 안은 물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화산구에 고인 물로, 수면이 지중해 보다 200미터 정도 낮습니다. 갈릴리 호수 분지는 낮에 태양열에 뜨겁게 달아올라, 저녁이 되면 지중해의 서늘한 공기가 뜨거운 공기를 가진 갈릴리 분지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종종 큰 풍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 있어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날 일어난 바람과 물결은 감당할 수 없었나 봅니다. 배가 침몰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예수님은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풍랑 가운데도 잠만 주무시고 계실까요?

 

마르코가 풍랑 가운데 주무시는 예수님을 기록한 것은 초대교회 당시, 강력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반박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영지주의란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해 성육신을 부정합니다. 당연히 십자가와 부활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몸으로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도 목마르셨고 배고프셨으며 슬피 우셨고 오늘 복음처럼 고단해서 주무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심으로,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어부 출신들이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제자들이 부르짖었습니다. 38절,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오늘 1독서로 읽은 욥기를 보면, 야훼께서 욥에게 자신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권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욥기 38:1,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이 ‘폭풍’이라는 단어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람’과 같은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바다와 폭풍은 혼돈의 세력 곧 죽음과 어둠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마르코는 ‘바다’라는 단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혼돈의 세력인 바다를 통제하고 다스리시는 우주의 주관자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외침에 일어나신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하여 명령하셨습니다. 딱 두 마디입니다. “고요하라. 잠잠하라.” 이 두 말씀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실 때 하느님의 영이 혼돈의 바다 위를 운행하셨고,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생명들이 창조되고 우주에 질서가 잡혔습니다.

 

풍랑 가운데도 피곤에 골아 떨어져 잠만 주무시는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모든 피조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성찬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을 제 안에 모시기를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지금의 상황을 믿음의 문제로 보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고 두려워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예수님을 우주의 주님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같은 4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에 연결됩니다. 풍랑과 같은 외적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비유 중에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습니다. 4:16-17, “16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초대교회와 같은 외적인 박해가 없는 우리와 같은 자유 국가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18-19, “18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참된 믿음이란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주신 주님을 신뢰하며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씨앗을 품고 견디어 마침내 열매 맺는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 서신은 사도 바울로의 모습을 통해서 그 믿음을 보여줍니다. 고후 6:4-5, “4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냈고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잘 겪어냈으며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 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냈습니다.” 

 

“잘 참아냈고... 잘 견디어 냈습니다.” 이것이 죄로 깨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제자들이 지녀야 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 마르코 4장은 이 질문으로 끝납니다. 41,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마르코복음을 읽은 이에게 예수님이 바로 바람과 바다까지 잠잠케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가 아직까지 온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통해,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성령강림의 사건 등을 겪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가 심화되고 온전해질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은 제자들처럼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38절,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욥기에서 하느님이 어디서 말씀하셨다고요? 폭풍 속에서, 즉 환란 가운데 주님을 만난다는 겁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드림으로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간증은 풍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고 알아가게 되면서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느님 야훼만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 모두의 믿음이 이렇게 자라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품에”

 

1 주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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