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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여성선교주일

by 분당교회 2020. 9. 6.

2020년 9월 6일 가해 23주일, 여성선교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제 1독서: 열왕기하 5:1-14

제 2독서: 갈라디아 3:21-28

복음말씀: 마태오 28:1-10

 

길었던 장마, 코로나19 재 확산, 그리고 계속되는 태풍 등으로 힘들게 여름을 보내면서 맞이하는 가을, 9월의 첫 주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 한 주도 잘 지내셨죠? 

 

새로 맞이한 9월에는 정다운 귀뚜라미 소리 하나로도, 진한 향 듬뿍 담은 국화 한 송이로도, 시원한 바람 한 줌으로도 넉넉하고 충분하여,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성장을 멈추고 성숙을 향해,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향해 길을 바꾸는 성찰의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대면 언택트라는 뉴 노멀 시대지만, 지혜를 다해 서로 충분히 사랑함으로, 행복한 9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올라오는 태풍이 그래도 비껴간다니 다행이지만,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기도드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나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공회는 예수님의 탄생,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력으로 예배드리며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도록 합니다. 그런데 가끔 특별한 의향으로 예배드리는 주일이 있습니다. 

 

6월 첫 주일에 드리는 환경주일, 8.15 전후에 드리는 평화통일주일, 추석 전후에는 희년실천주일, 그리고 오늘 여성선교주일 등입니다. 이 밖에 청년선교주일, 관구주일, 교회일치주일, 성소주일 등 여러 주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 의향으로 주일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지금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고, 그에 따라 하느님 나라 운동 공동체인 교회가 어떤 내용으로 선교를 해야 하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성선교주일입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에도 현실에서는 많은 차별과 위험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이 영화화되어 큰 주목을 끌었었습니다. 제목이 ‘82년생 김지영’입니다. 김지영은 여자 아이들의 흔한 이름으로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됩니다. 소설의 몇 장면을 소개 해 드립니다.

 

주인공 김지영은 언니가 있고 남동생이 있는데, 그녀가 태어나고 난 1년 후에 엄마가 임신한 아이가 여자라서 낙태를 당합니다. 몇 년 지나 아들을 낳습니다. 집에서 밥 먹을 때 아빠, 아들, 할머니 순으로 밥을 퍼주는 것이 당연했고 국민학교에서 앞 번호는 남자 아이들이 차지해서 급식도 남자 아이들부터 진행됐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복장 규제가 더 엄격했습니다.

 

주인공은 대중교통에서 성희롱을 당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스토킹 하는 남학생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는데, 아버지는 피하지 못한 딸을 꾸중하며 이중 고통을 줍니다. 대학교에 진학했더니 남자 선배가 헤어진 커플의 여학생을 ‘씹다 버린 껌’이라고 말하는 성희롱을 듣습니다. 취업 면접에서는 중년 남자 이사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거래처 상사와 미팅을 하는데 신체 접촉을 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결혼 후 줄곧 출산을 강요받습니다. 임신을 했고 부부 중 한 사람이 퇴사하고 육아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퇴사를 합니다. 영화는 정신과 전문의 시선으로 열린 클로징을 하게 됩니다. 김지영과 상담한 의사는 안과 전문의였던 아내가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 둔 일을 기억합니다. 그런데도 막상 병원에서 일하던 상담사가 임신하게 되어 퇴사하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미혼으로 뽑아야 겠다.’고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이 겪는 차별과 불이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공감하게 됩니다. 이 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했던 故노회찬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자가 최고의 스펙인 대한민국의 많은 제도, 문화, 관습을 깨기 위해서라도,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도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여성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별과 성폭력의 문제가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여성 성직 안수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천주교나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중에 보수적인 교단은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성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공회는 일찍이 여성 성직을 허용했습니다. 여성들이 최고 리더십인 주교 역할을 하는 외국 성공회들이 있습니다. 미국성공회는 전 의장이었던 쇼리 주교가 여성입니다. 지금 마이클 커리 의장 주교는 흑인이구요. 여성과 흑인이 미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주류 교회의 최고 수장을 한다는 것은 그 존재들 자체로 그 사회에 대한 선교적 메시지인 것이죠.

 

우리 대한성공회에도 여성 사제들이 활동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 내부에 있는 장벽이 높아 보입니다. 서울교구 어떤 교회이야기인데요. 보좌사제로 여성 사제가 있었는데 성찬예배 집전은 못하고 설교만 했습니다. 이유인즉 여성이 주는 성체를 받지 못하겠다는 교인들의 여론이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제반 활동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는 성가 가사 그대로입니다. 마르다 처럼, 애찬, 바자회, 등 교회의 제반 선교활동에 대부분 여성들이 묵묵하게 담당해 왔습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 여성들 대부분은 봉사자로만 머물고, 기획하고 결정하는 논의 구조는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선교 정책의 결정 구조 - 관구상임위, 교구 상임위, 제반 선교조직들의 구성원들이 거의 다 남성들입니다. 서울교구 상임위 – 평신도 상임위원 6명, 성직자 상임위원 6명, 감사 2명으로 구성되는데 여성은 단 한 명뿐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해서 돌아가신 송준영(그레고리) 회장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신부님처럼 고참이 올 줄 몰랐다. 우리 분당교회는 여성 사제를 모시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는 모범이 되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분당교회이니까 가질 수 있는 좋은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세상 속에서 드러내는 대조 대항 대안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존중받고 여성들의 위상과 역할이 드높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그 일을 펼쳐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성경 말씀에 비추어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올바른 성서 해석으로 여성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성직을 허락하지 않는 보수 교단에서는 근거로 성서를 말합니다. 대개 고전 14장 34절을 인용합니다.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토 교회가 여러 문제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사를 받은 여자들이 무질서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그 상황에 맞는 지침을 준 것이지요.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서 여성 안수를 주지 않습니다. 

 

그 해석대로라면 주일학교에 여성 교사도, 여성 구역장도 임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문자적으로 적용하자면, 고전 11장에 ‘여자는 머리를 가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말씀 그대로 개신교 교회 여성들도 다 미사보를 써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건 또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자기 모순입니다.

 

머리를 가리라고 한 건, 당시 여성들이 다 머리를 가렸고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성들은 대개 몸을 파는 여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고 자유해지니까 여자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음으로 창녀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성서는 여성을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당시 여성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배워야만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토라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여자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여자는 그저 재산 목록일 뿐입니다. 아버지는 딸을 팔수 있었습니다. 결혼지참금을 받는다는 것은 고상한 표현일 뿐입니다. 심지어 노예로도 팔았습니다. 여자의 위상이 그랬습니다. 

 

그러니 여성은 증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가 예수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성을 내세웠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역사적 팩트 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당시 가치관을 뒤집어 놓은 혁명적인 것입니다. ‘여성도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이다!’ 대항공동체인 교회의면모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많은 여성 리더십들이 있었습니다. 당대 문화적 한계로 12제자가 모두 남자로 소개되었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바울로의 동역자들이 소개되는데, 가장 먼저 소개되는 사람이 페베입니다. 1절, “켄크레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교우 페베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그리고 3절에 브리스카와 아퀼라가 등장합니다. 부인이름이 앞에 있습니다. 6절에 마리아, 7절에 유니아 등등 많은 여자들이 소개됩니다. 

 

초대교회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선교의 주역으로 활동하여 세상과 대조되는 대안 공동체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갔음을 기억합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복음의 능력, 말씀의 능력이 우리 교회 안에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여성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1독서에 전쟁 포로가 되어 이방 나라에서 노예로 사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나아만에게 당당하게 발언합니다. 왕하 5:3 그 어린 하녀가 자기의 주인에게 일렀다. "주인어른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그가 나병쯤은 쉽게 고쳐주실 텐데요." 

 

저는 이 어린 하녀를 보면서 묵상했습니다. 주인은 자기를 포로로 잡아온 원수입니다. 나명이라고 걸려라고 저주할 만 합니다. 그리고 나병이 걸렸다니 속으로 잘 됐다고 쾌재를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소녀는 장군에게 자기 조국의 예언자를 만나기만 해도 좋겠다고 말하고 그로 인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소녀의 이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저는 어린 하녀에게서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봅니다. 포로로 잡혀와 노예로 살고 있는 처지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다. 어떤 처지와 환경에서도 하느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하느님께만 구원이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오히려 나아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나아가 하느님 사람인 예언자를 자랑하는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이 사랑이 모든 차별을 맞서고 견디며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교회는 비로소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존귀한 인간으로 대하고 섬기는 바른 선교를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세계성공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 공동체로서 이 사랑을 마음을 가지고 안전한 교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세계성공회협의회는 ‘안전한 교회(safe church)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이를 성공회 공동체에 적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성공회는 각 나라별, 관구별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회 개혁 운동과도 같은 일입니다. 교회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소속된 신자들, 특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시선을 멈추지 말자는 이 선언이 세상의 논리와는 무척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대하고 엄청난 이슈와 주제들이 교회를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작은 자에게 돌리는 시선’에 집중하는 성공회의 영성과 선언은 성공회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곧 다가올 전국의회에 ‘세계성공회의 <안전한교회 가이드라인>’으로 비준안을 상정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성평등위원회는 이 안을 지난 2년간 준비해 왔고, 이 안이 무리 없이 잘 통과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 특별히 사목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폭력 예방 뿐 아니라 폭력이 일어난 현장에 대한 치료와 처리 절차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이 노력은 신자들 서로가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믿음으로 일구어 낸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교회도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 끝에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성공회가 세계적으로 개신교 가운데 가장 큰 교단이기에, 이러한 선언과 운동으로 조금이나마 어려운 이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 원주교회 여성 사제 이쁜이 신부의 글)

 

우리 성공회 안에서 여성이 존중받고 그 지위와 역할이 합당하게 세워지는 만큼, 이 세상 안에서 여성 선교를 펼쳐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바른 성서 해석에 기초한 믿음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서신 갈라디아서의 말씀 한 구절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칩니다. 3:28,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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