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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by 분당교회 2020. 8. 23.

2020년 8월 23일 연중 21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 16장 13절-20절

 

전국적으로 2단계 방역 조치가 내려지고 서울에서는 3단계에 준하는 조치가 내려진 엄중한 시기입니다. 하여 교회는 지난 18일부터 비대면예배로 전환하였습니다. 영상으로 예배드릴지라도,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린다면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주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런데도 일부 교회들은 방역 당국의 비대면 예배 지침을 거부하며 현장예배를 강행한다고 합니다. 부산기독교총연맹은 현장예배를 강행하겠다고 입장문까지 발표했다 군요. 교회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이런 만평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시는데, 교인들은 예배당에 예배드리러 들어가는 그림입니다. 그림 한 구석에 적힌 글귀가 이렇습니다.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이 시대 교회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제 오늘 집콕하고 계시죠? 생활방역에 최우선순위를 두시며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애쓰시는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이 위기를 통과해 갈 줄 믿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아주 먼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최북단 헬몬산 가까이에 있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는 도시입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40킬로 떨어진 곳이라니 긴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여정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 도시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무대가 되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도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분봉왕 헤로데 필립보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재건한 도시입니다. 원래는 ‘바니아스’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바니아스, 파니아스’라는 이름에서처럼 목동의 신인 ‘판’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헤로데 필립보는 이 도시에 로마 황제인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지어서 헌정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문화와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고 아울러 판으로 대표되는 우상이 가득한 다신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다신을 숭배하고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이 있는 제국의 도시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13절,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14절,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통해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에게 직언하다가 참수형을 당한 예언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모두 예언자이죠. 오늘 1독서 이사야도 예언자이죠. 예언자란 당대의 죄악을 고발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백성이 하느님께 돌아왔을 때 다시 언약이 실현되는 희망을 선포한 하느님의 대언자들입니다. 

 

예언자의 예레미야의 외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 9:22-23, “22 나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현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마라. 용사는 힘을 자랑하지 마라. 부자는 돈을 자랑하지 마라. 23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뜻을 깨치고 사랑과 법과 정의를 세상에 펴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일이다. 야훼의 말이다”. 

 

  개역개정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현대인들처럼, 당대 사람들도 권력과 물질을 좋아했습니다. 이를 얻을 수 있다면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예배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불의와 부패로 가득해졌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외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 하느님이 공평과 정의를 땅에 행하는 분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큰 오침으로 울립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을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공평과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공평과 정의, 미슈파트와 쩨데크가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로 이스라엘을 세우시어 열방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선포는 일찍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창세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정의, 미슈파트)와 공도(공평, 쩨다크)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개역개정판)

 

당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런 예언자들과 같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사자와 어린 양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순한 어린 양 이미지만 알고 있습니다. 하여 암묵적으로 강요된 순종적인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사자와 같은 이미지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보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강한 신앙인의 면모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15절,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이 질문을 하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류의 스승, 4대 성인 중의 하나라고, 기독교의 창시자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6절,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12제자들의 대답에 예수님은 흡족해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대답은 다신을 숭배하는 도시 한 가운데서 여러 우상들은 실제 죽은 것들이고, 하느님만이 살아 계신 참 신이라는 고백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한 존재이듯이, 예수님이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대신하는 하느님과 같은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황제에게 붙여지던 존칭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 당신은 로마제국과 대조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열어갈, 로마황제에 맞서는 왕이라고 고백한 지극히 정치적인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표현한 겁니다. 지난주일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고백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다 민족의 희망이 강력하게 담긴 표현입니다. 그 희망이란 예수가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을 다윗왕국 때처럼 독립된 통일 왕국으로 회복할 군사적 정치적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워갈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정치적 체제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랑 헤세드로,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샬롬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의 답은 50점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제 비로소 앞으로의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으로 읽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워질 교회를 말씀하십니다. 18절입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이 반석”이란 베드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도 믿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도들의 믿음을 말합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문자적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시민들이 현안을 숙의하기 위해 모이는 민회를 말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카알’이라고 합니다. ‘회중, 공동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통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구체적으로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치하는 참 이스라엘, 열 두 제자들을 통해 세워지는 하느님 나라 백성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에게 부여되었던 하느님의 나라 선교 사명의 수행할 새로운 주체입니다. 

 

필립보 헤로데가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이방 도시를 건설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갈 주님의 교회를 건설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의 이 비전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비전대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선교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3가지의 “대”가 되어야 합니다. 대조! 대항! 대안입니다. 교회는 다른 여타 인간 조직에 대조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언자의 전통과 사자와 같은 예수님의 이미지를 따라 불의에 대항하고 인간다운 사회로 변혁해 가는 대항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내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대안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비전을 이루어 가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느님 나라 백성 공동체를 제시하시면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교황도 주교도 목사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주인이 되는 교회가 많습니다. 재벌처럼 세습하는 교회들이 많은 것은 한국 기독교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 목사의 탐욕과 목적에 따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목사들의 개인 사업체 같은 것이죠. 코로나 19로, 주님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교회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겨자씨처럼 작더라도, 예수님이 주인 되어 대조 대항 대안 공동체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교회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오늘 서신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개역성경버전으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직장과 가정 등 사회 속에서 몸으로 수고하며 생활하는 삶이 거룩함이고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이 질문을 드립니다. 감사성찬예배가 개회예식,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파견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4가지 구성 요소 중에 가장 긴 예배는 무엇인가요? 파견례입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나가서 주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나가서 주님의 평화를 이룹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파송 받아 6일 동안 세상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이루며 복음 증거자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생활 예배자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되도록 오늘 서신은 계속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주님의 뜻을 바로 아는 새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현장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랑의 모본이신 예수님을 따라, 서로가 본이 되면서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여 세상의 조직과는 대조가 되는 공동체를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를 나의 비전으로 품고, 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며,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세상의 불의와 부패에 대항하며,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 갑니다. 

 

성령의 은사로 지체들을 섬기며,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이런 교회가 하느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 주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성공회가 이런 주님의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성공회 분당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대조공동체, 대항공동체, 대안공동체가 우뚝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 19 비대면 뉴노멀의 시대이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도우시고 이끌어 주시어 하느님 나라 운동 공동체로 우뚝 세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기도합시다.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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