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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축복의 통로가 된다

by 분당교회 2020. 8. 2.

2020년 8월 2일 가해 18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마태 14:13-21

 

오늘 복음은 다섯 개의 떡과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 그러니까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기적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오병이어 기적이야기!

 

오병이어 기적이야기는 4복음서 전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이루어진 풍성한 잔치를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나라를 잔치로 비유합니다. 천국잔치하고 하죠! 그래서 복음서는 자주 식탁의 교제를 나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이루러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줍니다. 매주일 감사성찬예배와 함께 애찬으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했던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그립습니다. 

 

특히 마태오는 그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를 모세와 견주어 모세를 능가하는 구원자임을 드러냅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 남자 아이들이 살해당했듯이 예수님이 탄생할 때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또 모세 오경이 있듯이 마태오복음서 안에 다섯 편의 설교모음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만나를 먹였다면 예수님은 빈들에서 오병이어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여 주십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12광주리가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고자 12지파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곧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1독서에서 이사야는 하느님께 나갈 때 누리는 하느님의 나라의 은총을 선포합니다.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 2 그런데 어찌하여 돈을 써가며 양식도 못되는 것을 얻으려 하느냐? 애써 번 돈을 배부르게도 못하는 데 써 버리느냐? 들어라,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맛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름진 것을 푸짐하게 먹으리라. 3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로 오너라.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가운데,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이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들은 ‘이 말’이란 세례 요한이 참수형을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족보상 예수님의 육촌형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그에게 가서 물세례를 받았고 그 때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외치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본격적인 전도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개한 회개 운동을 계승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도 육촌 형 요한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어두운 시대에 등불 같았던 하느님의 사람을 잃어버린 비통감이 컸을 것이고 또한 하느님의 사람을 참수시키는 권력에 대한 분노도 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자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한적한 곳이란  빈들, 광야입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하느님을 깊게 만나는 거룩한 장소를 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소명을 알게 되는 성소가 광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건을 마주할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님을 따라 광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몇 주 전 말씀드린 대로, ‘꽃을 피우는 씨앗의 힘은 멈춤’에 있습니다. 녹록치 않은 인생 여정에서 열매 맺는 인생이 되게 하는 힘은 하느님 앞에 멈출 때 솟아납니다. 야고 5: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그런데 한적한 곳을 찾아 온 예수님을 수많은 군중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물세례를 받으며 회개했던 사람들입니다. 요한이 메시야가 아닐까 기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요한의 죽음을 들었으니 얼마나 두렵고 애통했을까요?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이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도 힘들지만, 이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까?’ 세례자 요한을 잃고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자신의 계획을 뒤로 하고 군중들이 데려온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는데, 마태오는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만 그립니다. 함께 아파하시며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회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 주님의 마음을 영어로 compassion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우리말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더 와 닿습니다. 어두운 시대와 그 가운데 고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마음, 아비의 마음을 지닌 사제이기를 기도합니다. 교우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죠? 기도하실 때 무엇보다 “목자의 마음으로 양들을 섬기는 사제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사제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만인제사장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부름 받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필립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교회가 이 마음을 품을 때, 그 시대, 아파하는 이웃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가난으로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정신적인 연약함으로 신음하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소수자로 살아가며 차별 속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돌아보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주님의 손과 발이 교회입니다.

 

애간장이 녹는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감사성찬예배가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마음을 채우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코로나19로 감사성찬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지 못하는 교우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움이 큽니다. 제 마음이 오늘 2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로의 심정 같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군중들을 흩어 제각기 음식을 사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여러분은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복음 속으로 들어가 주님의 마음,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묵상법을 복음관상기도라고 합니다. 익나시오 영성 전통에 따른 묵상법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제자들의 심경을 헤아려 보십시오. (1분 침묵)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불만 섞인 한탄일까요? 아니면 우리도 그리하고 싶지만, 가진 게 이것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묵상할 때 더 깊게 속으로 들어가 주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마음에 담아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제자의 대답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묵상 중에 참 가진 게 적은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 됐습니다. 성공회 교단이 참 작고 가난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분당교회는 아주 가난한 교회에 속합니다. 사택도 대출로 마련했고 자가 성당도 없이 월세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주교님과 면담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월세는 잘 내고 있어? 이사했다는데 어떻게 이사했어?’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올 해만 해도 대출금을 2천만 원을 갚았습니다. 월세 관리비 이자 등을 거뜬히 감당하면서도, 매달 선교구제비를 플로윙하고 코로나 기금을 조성해서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다. 

 

작고 연약한 우리 교회가 이렇게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자, 예수님은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그것을 가져가 나눠주니 남자만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하느님께 드리어 하느님의 나라를 여시는 구원의 이름이 되셨듯이, 그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고 주님이 축복하시면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영적 원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님 손에 들려지고 주님이 축복하시면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거룩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작고 가난하지만, 주님 손에 들려진 교회이고, 주님이 축복하시는 교회이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배움 정도가 어떠하든지, 재산 정도가 어떠하든지, 지금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주님께 드려지고 주님이 받으셔서 주님의 축복하시면 사람들을 살리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가운데 떠오른 성경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칩니다. 눈을 감고 들으시며, 들으실 때 성령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야고 5: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필립 2: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에페 3: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마태 14:19-20,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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